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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DJ 화해 단초는 '대연정'에서 비롯됐다

 

 

YS-DJ 화해 단초는 '대연정'에서 비롯됐다
[정치 톺아보기 107] YS가 위문전화 걸기까지, 그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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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 병문안을 한 것이 정가의 화제다. 두 사람의 화해가 현재의 정치구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현재의 정치질서가 87년 이른바 '양김'의 분열로 인한 90년 3당합당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6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 병문안을 했다. YS는 병문안 전화를 한 뒤 측근들에게 "(DJ가) 병원에 입원도 하고 했다던데 가보지 않다가 (통화를) 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소회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YS는 또 조만간 직접 동교동을 방문해 병문안 하는 것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70년 '40대 기수론'을 기치로 내걸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맞선 이후 지난 35년 동안 선의의 경쟁과 반목을 되풀이했던 두 사람의 관계 복원에 관심이 쏠린다.

물밑 주선 김상현·정대철과 숨은 주역 신상우·박지원

두 김씨의 관계 복원은 동교동과 상도동으로 상징되는 반독재·민주세력의 화해와 통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범여권에서 세(勢)를 확대하고 있는 '민주개혁세력 대통합론'과 연결짓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런 관측의 배경에는 두 김씨의 화해를 물밑에서 끈질기게 권유한 '중매장이'들이 두 김씨와 가까우면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정치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자리잡고 있다.

두김씨와 두루 가까운 '마당발' 김상현 전 의원과 '적이 없는' 정대철 전 의원, 그리고 특히 주도면밀하게 '화해공작'을 펼친 신상우 전 국회의장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숨은 중매장이들이다. 물론 먼저 전화하는 '결단'은 YS 본인이 직접 했지만, 그런 환경을 조성한 것은 중매장이들의 몫이었다.

특히 신상우 전 부의장과 박지원 전 실장의 숨은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순조롭게 풀리기보다는 닫힌 세월의 앙금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더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이자 후원회장을 지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연초에 동교동에 신년하례를 갔을 때부터 '참여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두 김씨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화해공작'을 준비했다.

신 부의장은 일단 DJ에게 안부를 전하고 평통 수석부의장 지낸 경험을 살려 남북문제에 대한 대담을 하면서 "두 분이 악수 하시죠"라고 슬쩍 운을 뗐다. DJ는 묵묵히 신 부의장의 얘기를 주로 듣기만 했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서 비롯된 화해의 단초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지난 6월에는 민주계 출신의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과 YS 비서 출신의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 그리고 동교동계 출신의 한화갑 민주당 대표 등으로 구성된 '민족대통합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이 '민족·지역·국민 통합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며 두 김씨의 화해를 위한 중재에 나서 공개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지적한 대로 '직관과 단행의 지도자'인 YS가 토론회나 세미나에 의해 마음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정작 나중에 YS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DJ의 입원이었다.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결국 두 사람의 문제를 풀 사람은 YS 본인이었다. 그러나 주위에서 '손 잡으라'고 건의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들을 YS가 아니었다. 그 계기는 엉뚱하게도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신 부의장은 처음에는 대연정을 반대했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에 상당히 집착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역통합 화두가 다시 퍼뜩 떠올랐다. 신 부의장은 YS를 찾아가 "대연정의 의미는 지역통합에 있다"면서 "이제 그만 DJ와 악수 합시다"라고 말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할 것을 다시 권유했다.

그리고는 YS의 차남 현철씨와 DJ의 복심인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만나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두 분의 화해를 시키자"면서 호텔 같은 데서 두 김씨의 식사를 주선하는 각본을 짰다. 이에 대해 박 실장은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두 분 사이에 앙금이 워낙 크다"며 크게 자신은 못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신 부의장은 YS와 DJ, 그리고 노 대통령과의 화해를 위해 8·15 광복절에 현철씨를 사면복권 시켜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현철씨는 사면복권 되면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로 약조를 받았다.

갑자기 터진 X파일 사건, '화해 이벤트' 연기 불가피

외면 지난 2월 24일 빌 클린터 전 미국 대통령의 출판기념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축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앞을 지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난데없이 불법도청 X-파일 도청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장 현철씨는 사면복권은 커녕 출국금지까지 되는 일이 생겼다. 또 안기부와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점에서 도청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전직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도청 사건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이미지가 훼손된 상황에서 '화해 이벤트'는 연기가 불가피했다.

그런 상황에서 DJ가 지난 8월 기력저하 등의 이유로 갑자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당시 휠체어를 타고 퇴원했던 DJ는 지난 9월에도 폐부종과 고혈압 증세를 보여 재입원을 했다가 퇴원했다.

이후 DJ는 광주 DJ컨벤션센타 개관식 등에 참석하며 건강을 과시했으나 11월 3일로 예정된 영남대 강연 및 명예박사학위 일정 등을 취소하자 정치권에서는 DJ의 건강이 몹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추측들이 쏟아졌다.

때마침 정대철 전 의원이 출소한 것을 계기로 신 부의장은 김상현 전 의원과 함께 상도동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세 사람은 YS에게 "그러지 않아도 국민들이 기쁜 일이 없는데 두 분이 말년에 친하게 지내면 국민들도 즐거워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화해를 권유했다.

3인은 또 "1987년 대선 때 양김 후보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지역감정이 심화됐다"며 "도의적 책임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나 화해한다면 한 국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의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권유했다.

이전 같으면 일언지하에 말을 잘랐을텐데, YS가 그때는 웃기만 하고 가타부타 말을 안했다고 한다.

또 다음날에는 이수성 전 총리가 재임 시절 장관들의 모임인 '민우회' 회원 장관 10여명과 함께 YS를 찾아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자리에서도 DJ의 건강문제가 화제가 올라 "두분 중에 누가 얼마나 장수할지 모르지만 두분의 화해는 본인들의 문제를 떠나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말들이 오갔다.

이와 관련 신 부의장은 "민주화세력끼리도 화합을 못하면서 어떻게 대연정을 하고 북한을 껴안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런 권유에 대해 YS는 "그래?" 하고는 별다른 말이 없었으나, 대만 방문에서 돌아온 다음 바로 DJ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민주화세력끼리도 화합 못하면서 어떻게 대연정 하고 북한 껴안을 수 있겠냐"

그런데 '기분파'인 YS의 마음을 움직인 데는 최근 노 대통령의 1천억원 발언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10월 30일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강삼재 전 의원이 무죄판결을 받은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과 관련 YS를 '멋진 사람'으로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

"그 이전에는 선거잔금 다 감춰놓고 더 걷어서 감춰놓고 해서 사고가 나고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 그 돈(1천억원) 선뜻 당에 쓰라고 내놓은 것만 해도 훨씬 다르잖아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엄청난 정치자금이지만 그 시점에서 보면 멋진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우리 역사가 발전해온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28일 대연정을 제안한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90년 3당 합당 이전의 정치질서로의 복귀를 강하게 주장했다.

"저는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폭력배들에게 테러를 당해가면서까지 공정선거 감시활동을 한 보람도 없이 지역대결 때문에 군사정권이 연장되는 현장을 지켜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13대 국회 1년을 지나고부터는 정치를 포기한다고 마음먹고 야당 통합운동에 나섰다. 그러다가 90년 3당합당 이후부터는 반독재 투쟁하던 심정으로 지역주의에 맞섰다. … 지역구도 극복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다.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명령이다. 3당 합당으로 헝클어진 정치질서를 복원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13대 국회 당시 YS의 민주계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90년 3당 합당으로 거대여당이 된 민자당에의 합류를 거부하고 통일민주당에 잔류했다가,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DJ 진영에 합류했다. YS는 노 대통령에게도 독설을 퍼부어왔다.

그런 점에서 YS가 DJ에게 건 한통의 전화는 두 김씨의 화해보다는 문민·국민·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전·현직 대통령 3인의 화해로 범위를 넓혀보는 시각이 오히려 더 정확한 진단일 수 있다.

문민·국민·참여정부 대통령 3인 화해의 의미

노 대통령과 DJ 지난 200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2005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 대통령과 YS 지난 2002년 4월 30일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노무현 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 상도동 자택을 방문, 김 전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면 정국의 풍향에 밝은 '연청' 출신의 염동연 의원이나 학생운동권 출신의 임종석 의원 등이 최근 '민주개혁평화세력의 대통합'을 내세워 민주당과의 통합과 한나라당 일부 개혁세력을 흡수하는 '헤쳐 모여'를 주장하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두 김씨의 화해가 민주개혁평화세력의 '헤쳐 모여'식 정개개편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상우 부의장은 "처음부터 결단은 YS의 몫이었다"고 전제하고 "YS가 동교동으로 병문안도 곧 가실 것"이라며 "두분 사이의 '골'이 메워지면 정치가 한 단계 더 성숙하는 쪽으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것이 또한 노 대통령이 바라는 3당합당 이전의 정치질서를 복원하는 '결자해지'라면 정치적 상상력이 너무 나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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