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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논쟁 ⑬] 당연한 '포괄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까닭

 

 

 

특별기획 | 불붙은 세금논쟁 + 오마이경제
세금이 무엇인지, 국민이 가르쳐 줄 때가 됐다
[세금논쟁 ⑬] 당연한 '포괄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까닭
텍스트만보기   윤종훈(ydh001) 기자   
▲ 10년전 만 해도 세금은 조롱의 대상이었을 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이러 저러 해서 세금을 빼먹었다'는 말은 군대이야기와 함께 술좌석에서 좋은 안주거리였다. 탈세는 곧 권력과 똑똑함의 상징이었으며, 오히려 탈세 못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변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 달 전 소득세 포괄주의 도입여부에 대하여 언론에서 한참 설왕설래 하다가 재경부가 공식적으로 "포괄주의 도입 계획 없다"고 발표하여 잠잠해졌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언젠가 다시 공론화될 수밖에 없다.

세법체계는 열거주의와 포괄주의로 나뉜다. 열거주의는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항목에 대하여만 과세할 수 있는 법체계를 말하며, 포괄주의는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소득이 발행되었다고 판단되면 과세할 수 있는 법체계를 말한다.

참여정부에 들어서서 상속세법이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바뀌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열거주의의 맹점을 이용하여 변칙증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법에 명시되지 않은 신종금융상품을 이용하여 증여를 할 경우 열거주의 체계 하에서는 과세하기 곤란하다는 약점을 이용한 것이다.

세계 금융중심지인 월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에 곧바로 수입된다. 정보가 빠른 부자들이 이를 이용하여 돈을 벌어들일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세를 과세하기가 곤란하다. 우리나라 소득세법은 열거주의 체계인데, 수없이 쏟아지는 신종금융상품을 법률에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렇다면 당연히 포괄주의로 바꾸어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이 문제가 학문적 논쟁으로 들어가면 꼬이고 만다. 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소위 '조세법률주의' 때문이다.

형식적 조세법률주의의 맹점

조세법률주의는 세금을 거두려면 법률에 그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중세시대에는 국가의 소유권이 궁극적으로 왕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에 세금도 왕이 마음대로 거둘 수가 있었다. 그러던 중 시민계급이 성장함에 따라 왕의 과세권에 항거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물로서 조세법률주의가 태어났다. 조세법률주의로 인해 세금은 왕, 귀족, 평민이 참여하는 의회에서 정해진 법률에 의해서만 거둘 수가 있게 되었다.

중세 시대의 세금은 왕과 귀족이 백성을 수탈하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조세법률주의는 왕과 귀족으로부터 백성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내었다.

'포괄주의는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되므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직도 '조세법률주의=국민의 재산권 보호'의 등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로 그러한가?

상속증여세법 포괄주의 논쟁 때 포괄주의를 반대하던 학자들은 '포괄주의가 도입되면 국세청의 재량권이 커지므로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포괄주의로 국세청의 재량권이 커지는 것은 맞다. 그런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변칙증여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없게 된 일부 재벌이다. 변칙증여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포괄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득세법 포괄주의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열거주의 하에서도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월급쟁이들은 포괄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돈이 넘쳐 숨길 곳을 찾느라 헤매는 부자들에게만 상관이 있을 뿐이다.

재벌과 부자들도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다! 맞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보호가 다른 국민들에게 피해로 돌아와서는 안된다.

세금은 주어진 크기의 파이다. 따라서 누군가 내야 될 세금을 안내면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서 채우는 수 밖에 없다. 열거주의의 허술한 세법체계로 재벌과 부자들이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으로 세금을 안내게 된다면, 결국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세수부족분을 메꾸는 수 밖에 없다.

한편 '포괄주의=위헌' 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지금의 세법체계를 부정하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 법인세법이 포괄주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법인세법은 위헌이므로 당장 그 효력이 정지되어야 한다. 법인세법의 효력이 정지되어 법인세를 거두지 못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필자가 조세법률주의 자체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원칙은 없다. 어떠한 원칙이든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중세기적 개념의 형식적으로 엄격한 조세법률주의를 모든 거래형태가 빛과 같은 속도로 바뀌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 뿐이다.

세금이 국가에 의한 재산권 침해라고?

많은 세법전문가들은 세금은 본질적으로 '국가에 의한 재산권 침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출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금은 가능한 한 적을수록 좋고, 법의 맹점을 이용하여 세금을 안내려고 하는 행위(예를 들면, 재벌의 변칙증여)는 정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에게는 국가의 과세권을 제한함으로써 개인에게 세금을 안낼 여지를 많이 만들어주는 세법이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권력과 국민 개개인 간 1:1의 관계 속에서 세금을 거두는 측면만을 고려하는 경우에는 세금을 국가에 의한 재산권 침해적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자신의 납세의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게 해주는지 등을 고려한다면 세금이 재산권 침해적 성격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동창회가 있다. 동창회장은 동창회 유지, 회원의 경조사, 불우 회원 구제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회원들로부터 동창회비를 거두고 있다. 동창회비를 3개월 이상 미납한 회원들에게는 동창회장이 강제로 징수한다. 회비를 강제로 징수당한 회원과 동창회장의 1:1 관계만 본다면 동창회비는 동창회장에 의한 재산권 침해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내가 낸 동창회비가 동창회를 유지하고 나의 경조사에 혜택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과 내가 동창회비를 내지 않을 경우 다른 동창회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동창회비를 동창회장에 의한 재산권 침해적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세금을 둘러싼 국가권력과 국민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구멍가게 주인이 1000원을 받고 1000원 짜리 과자를 내주는 것 같은 즉자적인 반대급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낸 세금이 나로 하여금 도로와 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나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중학교 까지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혜택이 되어 돌아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세금을 단지 국가권력에 의한 재산권 침해로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세금을 안내려는 사람들에게 무임승차의 비도덕성을 비난해야 할 것이다.

불행했던 역사 속에서 불행하게 쓰여진 세금

중세 시대는 세금을 왕이 멋대로 거두고 자신과 귀족만을 위해 썼으므로 백성들에게는 세금이 권력자에 의한 수탈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세금은 복지의 수단이다. 실제로 복지국가의 표상인 북유럽에서는 높은 세금이 연대정신(solidarity)의 상징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금에 대하여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

조선후기를 특징짓는 삼정문란은 지금의 의미로는 세제세정의 문란을 뜻한다. 또한 삼정문란에 항거한 민중봉기는 조세저항을 뜻한다. 불행하게도 민중봉기의 정점인 갑오농민혁명이 일제에 의해 짓밟히고 우리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로써 왕실과 양반지배계급에 의한 수탈의 수단이었던 세금이 제국주의에 의한 수탈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해방으로 독립국가가 되었으나 독재정권하에서 세금은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재벌을 키우는 수단으로 쓰여 졌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세금이 서민들을 위한 복지로 쓰여진 적이 없으니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10년전 만 해도 세금은 조롱의 대상이었을 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이러 저러 해서 세금을 빼먹었다'는 말은 군대이야기와 함께 술좌석에서 좋은 안주거리였다. 탈세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었다. 탈세는 곧 권력과 똑똑함의 상징이었으며, 오히려 탈세 못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았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재벌들의 변칙증여,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가 사회문제가 되고, 2000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탈세 백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탈세가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적어도 탈세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드는 사람은 없어졌다.

2004년 총선 후에는 부유세에 대하여 70%의 국민이 찬성하였으며, 2006년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는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률이 각각 52.5%(한국사회여론연구소), 38%(KBS)를 기록하였다. 1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난 인식 변화이다. 앞으로 5년 후에는 어떻게 변할지 매우 기대된다.

▲ 윤종훈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전문가나 학자라는 사람들은 중세기적 개념의 세금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천자문 읊조리듯 고루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주로 학자들과 접촉하는 정치권은 이들의 생각이 국민 여론인양 착각하여 조세정책에 대하여 갈지자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이 나서서 소위 지도층이란 사람들을 깨우쳐 줄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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