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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그리고 또 그려보렵니다...

0.

5월 4일에 대추분교 정문 앞에 앉아있다가 유치장에 잠시 다녀왔어요.

그냥 잘 다녀왔어요. 잠시 끔찍했고. 잠시 짜증이 났고. 그렇게 잠시와 잠시가 쌓이고 쌓여 오늘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하늘을 보았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고. 저도 그냥 그 중 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특별한 기억이 되지 않으리라 믿고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래요

그래도.. 이틀 내내 제 머릿속에 맴돌았던 몇 가지 생각만 남겨요.

 

0.5

유치장에서 늘어지게 잠만 자고 있을 때 밖에서 잠도 못자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생하신 분들에게 정말정말 감사하고 수고하셨단 말도 빼먹지 말기!!!!

 

1.

유치장은 처음 가보았어요. 처음이라고 걱정해준 분들이 많았는데.

감사해요. 덕분에 마음 든든히 잘 있다 나왔어요.

그런데 사실 많이 무서웠고 많이 긴장했고 그랬답니다. ㅋㅋㅋ

꿋꿋해야 한다고, 웃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는데 사실 종종

혼자 또 바보처럼 눈물을 훔쳤습니다. 헤헤헤~~ ^^;;;;;;

 

처음 몇시간동안 콘크리트 벽에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이유없는 고립감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온지라..

그래서 결국 면회온 사람들에게 계속 찡찡대고 말았지요. ㅠ.ㅠ (so sorry~)

 

2.

그냥  처음이었으니 그런거라 믿었고 조금 지나 나아졌답니다. 하지만 저를 정말 슬프게 한건.. 바로 화장실과 샤워였어요. 경찰들 책상을 중심으로 둥글게 판옵티콘으로 되어있는 유치장에 살짝 틈이 보이는 칸막이 화장실. 물도 안마시고 꾹꾹 참았지요.

물론 바깥 화장실을 이용하게 해주어 나중엔 괜찮았지만 그래도 혹시혹시 하는 마음에

이틀 내내 왠만하면 참고 또 참았지요.

 

화장실을 가거나 샤워를 할 땐 여경이 같이 갔답니다. 샤워를 하며 제 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여경을 보며 생각했어요. 몸을 이렇게 보여야하는 내 기분도 참 지랄맞고 몸을 이렇게 봐야 하는 여경 기분도 참 지랄맞겠구나..

 

그 곳에서 만난 여경들은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를 썼어요. 그 순간 저는 제 친구들이 생각이 났어요. 광주에 있는 친구들이...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은 사실 서울에 있는 대학생들보다 더 공무원 시험에 열심입니다. 생계를 위해. 서울상경을 위해.

 

지방대출신이라 취업은 더욱 힘들고. 정말 2~3년을 두문불출 공부하는 친구들.

경찰이 되어 올라온 친구들. 경찰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새벽부터 밤까지 피터지게 공부하는 친구들.

 

내 친구들이 그렇게 누군가의 사사로운, 개인적인 용변과 샤워를 감시해야 한다니.. 언젠가 또 다시 연행되어야 할 때 친구들을 만나야만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슬픔과 두려움이 엄습해왔어요

 

이런 생활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텐데. 안정적 직장과 상경의 희망만을 꿈꾸며 힘들게 힘들게 공부했고 공부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그려져 이 세상이 야속해지기만 했어요.

 

이 망할놈의 세상..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참 지랄맞게도 만드는구나 싶었습니다. 때리고 맞고 욕하고 분통터지고. 그 누구 하나도 즐거운 기억은 아닐테지요.

오늘 하루 참 지랄맞다 했겠지요.

(아! 그래도 폭력을 먼저 행사한 경찰들, 알몸수색을 자행한 경찰들은 정말 미워요. )

 

2.

저녁에 뉴스를 보며 참담하게 포크레인에 뭉개져 내려가는 대추분교를 봐야만 했어요.

할 말이 없었어요. 참담함과 슬픔만.....

 

갯벌을 매우고 직접 농지를 만들고 피땀흘리며 고생고생하여 자식들 교육을 위해 직접

돈을 내고 직접 지어올린 대추분교. 대추리. 황새울의 역사가 그대로 묻어있는 그 곳.

600여 일이 넘게 매일매일 저녁 운동장 한 곳을 밝히던 촛불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곳.

 

평화캠프의 비폭력트레이닝의 추억이. 시원한 여름밤 신나게 사물을 치며 발에 상처내고 땀이 나도 신난다고 웃고 뛰놀던 그 곳.

갑자기 몰려든 국방부 직원들과 대치하며 긴박하게 비폭력트레이닝을 고민하고 실천했던 그 곳이 이젠.. 정말 기억속에서만.. 사진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게 슬퍼졌어요.

 

이 신문 저신문 이뉴스 저뉴스 앞다투어 반미단체들의 악랄한 선동이라며 모든걸 매도해 나갈 때 비통함과 억울함만이 들었어요.

 

3.

15개월 정도를 감옥에 제발로 걸어들어가 살아가는 병역거부자들의 마음을 1/200만큼

이해하게 되었어요. ^^;;;;;;;;; 그래서 많이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많이 외로웠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많이 그리웠구나.

(이틀 갔다오고 정말 쌩쑈를 하죠? ㅋ그래도 정말 쪼금 알겠어요ㅋ)

 

때론 엄살부린다 매몰차게 몰아부쳤고. 때론 귀찮다고 답장하지 않았고.

때론 잊고 살았는데... 미안합니다.

 

4.

그냥 언젠가 한번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고.

각오하고 갔는데 각오한대로 된 것 뿐이라고.

이제 더 두려움없이 언제나 묵묵히 현장에 있는 사람이 될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 정말 제대로 열심히.. 해보아야죠. ^^

몸과 마음이 많이 다친 친구들과, 여러 분들이 빨리 추스리고....

언젠가.. 정말 황새울 들녘에서 다시 한 번 모여 손잡고 웃으며

농사지을 수 있는 그 날만을 그리고 또 그려보렵니다.

 

이제 정말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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