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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12
    평화운동일기의 시작(1)
    현지
  2. 2006/02/12
    익숙해진 재판에서 울다....(1)
    현지

평화운동일기의 시작

 

0.

언젠가부터 '글좀 써야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뭔글을 쓰래?? -_-;;;

씨껍한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평화운동을 하고자 하는 나에게 운동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은 어쩌면 쉽게 주어지지 않는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정말 무언가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고픈 마음에 이 곳을 열었다. 사실 블로그에 매우

적응이 안되는 것이 사실이다. 불편하기도 하다. 아직은....

 

하지만 굳이 또 이 곳을 열었던 이유는 소통의 욕심일게다.

나도 한때엔 막내 특유의 기질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사람을 만들고싶어했고

인사를 안하는 사람이 있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관계가 쉬웠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쉬운 관계맺음은 생각보다 많은 아픔을 남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허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런 관계맺음의 즐거움은 그닥 즐기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아마도 그래서 관계는 쉽지않은 것이고

위대한 일인지도 모른다. 집중해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하고 신중해야하고.

물론 모든 만남이 그런 것은 아니다.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개XX 욕 한마디에도 모든 걱정과 격려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만남은 사절이다. 기력이 없다. ㅋㅋ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성장하는 활동가가 되는게 나의 목표였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어딘가를 나서는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만의 동굴에 움크려

앉아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날개 활짝 펴고 세상속으로 날아가 사람들을 만나는 준비를

하고있는 것이다.

 

1.

얼만 전에 아주 많이 괴로운 시간이 있었다. 예전같으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누군가를

찾아 매달려 엉엉 울고 그랬을텐데.. 언젠가부터 내 안에 쌓여가는 내공으로 몇분만 견디면

진정이 되는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혼자 달래게 되었다. 내 자신을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면

이제 정말 괜찮아진다.

 

어쨌든 내 자신을 다독이며 내 자신이 참 회색분자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내가 속한

공간들 속에서 잘 섞이질 못한다. 아니 어쩌면 너무 잘 섞이는데 색깔이 너무 다른 공간들

속에서 내 정체성을 상실해버렸는지도 모른다. 난 쉽게 나의 생각을 밝히지 않는다.

대부분 듣고 동의하면 그냥 그렇다하고 다른 생각이면 말을 안하고 만다. 논쟁하는게

귀찮기도 하고, 상대방의 고집이 전혀 변화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대부분 말하기를

포기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난 참 외로와진다. 정말 즐겁고 정말 힘이 되고 정말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공간과 관계들에 감사하면서도 쓸쓸해진다. 

 

담배나 다시 물어 하루종일 한숨이나 벅벅 쉬고싶어지기도 했는데 역시 그건 아니다.

(뭐 사실 여전히 내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면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땅에겐 미안하겠지만. 나무에겐 미안하겠지만. 아주 잠시라도....)

 

잃어버린 나의 색깔을 다시 찾고싶어졌다.  심호흡하고 부딪힐 다짐을 하였다.

무식함이 자랑스러웠던 그때의 나로.

그래서 모든 관계와 모든 일들이 즐겁기만 했던 그 때의 나로.

 

 

2.

저 멀리 훨훨 날아가고 싶다. 하늘내음 가득 내 몸에 담고 사람들을  만나고싶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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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 재판에서 울다....

2006년 2월 10일 금요일 상쾌, 맑음 

 

오랜만에 재판장에 갔다.(고동주 1심 심리) 몇 일전 오정록 재판에도 갔었지만 그 날은

선고만 있어서 사실 어떤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은 고동의 재판이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여유롭게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느긋하게 앉아 기다렸다. 고동이 나오고

재판이 진행되는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일까? 한 두 번 보는 재판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 재판이 지겨워질 때도 됐는데....

 

내가 재판에서 울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내 운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병역거부자들의 진심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지겹도록 만나는 얼굴들이

병역거부자들이었지만 사실 평소에 만나는 병역거부자들은 나에게 병역거부자이기보다는

 그냥 같이 일하는 남성!!!! 활동가들에 가까웠다. 아니 그냥 일상에서 만나는 별반 다를바

없는 남성들이었다.(물론 모두가 특별한 문제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다들

자신들의 남성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물론 일상에서 그들의 신념이나 진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의 영역이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관계에서는 다른 면들을 많이 보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의 남성성에 내가 익숙해져 갈수록 난 내 운동에 많은 회의감들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원래 다 남자다. 당연한 이야기다. 새삼스레 내가 그들의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나름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나만의 바람에서만

 끝날 문제가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이 항상 고민하고 가져야하는 마음이라고도 생각하는 것이다. 병역거부자들은 남성성의 문제에 있어 민감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하였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받아야하는

차별을 기꺼이 감수하고 국가의 비합리적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을 자신의 신념으로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식도 못할만큼

익숙해진 남성이라는 기득권 문제에 대해서 둔감해지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또한 더더욱 민감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군대라는 시스템을 통해 재생산되는 군사주의적,

남성중심적 문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군대에 가지 않지만 군대

못지않게 군대스러운 감옥에 다녀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옥에서 총은 들지않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는 강력한 군사문화에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적응하고 지내야만 한다. 그런 그들이 아무리 평화적 신념이 강하다 할지라도 감옥에서 출소한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그 문화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병역거부자들은 성인군자도 아니고 신의 아들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남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출소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을 군대문화적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난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병역거부를 결정하고 다짐하는 시간들 못지않게 항상 자신들이 가진 남성성에 대해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남성이고, 감옥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에 다녀오는 남성들은 자신들의 억압적 경험들을 조금은

과장된 그리고 많이 지나치게 썰을 풀어낸다.

 

병역거부자들의 감옥이야기도 공론화 이후의 짧은 병역거부운동의 경험과 감옥인권운동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되어지고 정리되어질 필요는 있지만 이것은 분명 단순 영웅담적 성격을 가져서는 안된다. 난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상처와 억압의 경험을 인정하고

치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또 군사문화에 젖어들지 않기 위한 한 가지의 노력이 될 수도 있다.

 

인정과 이해는 비슷하지만 큰 차이를 가지는 말들이다.

인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마음이란다. 그리고 이해는 같은 높이에서 서로 섞일 수 있는

마음이란다. 내가 누군가를 인정하는게 아니고 이해할 수 있을 때 관계의 평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난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군사적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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