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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떠날 날을 상상해서일까.
고요한 방안에 들어서도 빽빽한 먼지 입자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부엌과 방.
문턱도 없이 대개는 열려있는 문 하나가 경계를 표시할 뿐인데도 이렇게 다르다니
신기할 뿐이다.
내 방에는 도대체 어떤 입자들이 어디서 이렇게 몰려와있는 것일까.
내가 방출하는 생체 먼지와 생체 가스들을 제외하고도 내 몸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
익숙치 않은 냄새들이 난다. (혹 저 익숙치 않은 냄새들도 내몸에서 나온 것인가? ㅡ,.ㅡ;;)
방에 있는 것이라곤 옷가지와 책들. 이불과 나무 가구들.
이것들도 호흡을 하겠지.
비어있다고는 하나 이 방은 어떤 흔적들과 그것들의 부패한 흔적들로 가득하다.
내 위장처럼 저 방도 이런 저런 흔적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녹이고 분해하고 발효시켜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저 방에 살아있는 한, 저 방은 계속 조금씩 무너지며 쌓여지며
그렇게 살아있을 것이다.
2. 어제, 꿈속에서 무너진 담장을 보았다.
무너진 담장은 희부연 시멘트 벽돌로 되어있었고
가까스로 서 있는 잔해는 내 키만한 높이에 두 팔 벌린 정도의 폭이었다.
나는 그 앞에 주저 앉아 울었다. 흐느끼다가 소리 내 엉엉 울었다.
현실에서 나는 무너진 담장 앞에 주저 앉아 울어본 적이 없다.
무너진 담장들을 본 적은 있지만, 그 중에 희부연 시멘트 벽돌로 되어있는 것이 있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침에 깨기 직전에 꾼 꿈이어서 오전 내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무슨 의미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이 고요함과는 분명 다른 냄새였다고 기억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사람이 떠난 빈방에는 가구들이나 옷가지, 책들이 있었지만
내 방보다는 눅진하거나 한결 가벼운 냄새가 났던 것 같다.
나무 가구들은 실제로 썩어가고 있었고 벽지와 책의 낱장들은 곰팡이들이 서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낡고 쓰러져가는 집이라도 사람이 들어가 살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가만 생각해보니, 시멘트 벽돌로 된 무너진 담장은 많이 봤을 것도 같다.
언제나 재개발로 몸살인 도시, 서울에 살고 있으니까.
3. 꿈속에서 통곡을 한 덕분인지,
어젯밤 스트레스로 터져버릴 것 같던 심정은 한결 잠잠해졌다.
내 뇌는 영민하게도 나의 의식이 잠드는 동안 격렬한 꿈을 꾸게 해,
고통의 분자들을 토해놓게 하고 기억의 농도를 엷게 희석시켜버렸다.
최근 몇일동안 꾸었던 잔혹극같은 꿈들에 감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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