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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7박 8일간, 제주도 여행 다녀왔다.

 

어제 오후  목포항에 도착해 도시락을 까먹는데 

아흑, 이 정겨운 매연냄새-

M군이 버스 터미널에서 한겨례 21을 사왔는데

간만에 보는 세상 이야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역시 육지 것들은 육지에 살아야 혀--- "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어쩌다보니, 일찍부터 계획했던 여행이 피난처럼 되어버렸지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달군의 명언처럼

그야말로 빡센 일정이었다.

 

그래도, 제주도의 티끌 한자락 만지작거리다 온 기분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텐트, 침낭, 옷가지를 빨래하고

버너 코펠을 정리했다.

이런 저런 짐정리를 하다보니, 정말로 집에 돌아온 기분.

아직까지 붕 뜬 마음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하룻밤 더 자고 나면 내 하루가 또렷해질 것이다.

 

떠나고 나면

머릿속에 우글거리던 것들이 차곡차곡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하루 하루 아름답고 놀라운 풍광 따라 몸이 초주검이 되도록 돌아다녔더니

몇 가지 명제들이 남고

낯선 이로부터 받은 갑작스런 질문들이 남고.

또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마지막 일몰 광경이 남는다.

다랑쉬오름을 글으며 움푹 패인 오름의 안쪽을 들여다볼 때의 아찔함,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달릴 때, 우리를 멈추게 한 해안의 여러 무늬들,

티격태격 싸운 것이나 오른쪽 무릎 안쪽 근육이 찢어질 듯 땡기던 것이나

길 잘못들어 여러 차례 오르막을 오를 때 났던 신경질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얼마나 약해져있는지, 또 얼마만큼은 지혜로워졌는지 순간 새로 깨닫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갈급해하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또 물었지만

남는 건 제주도 날씨만큼이나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다.

 

김영갑갤러리에서 본 사진들은

모든 사물들이 영원하지 않음으로써 찬란한 한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누군가 내게 질문한 그것,

지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이 순간이라고 말할 수밖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가장 흔한 클리셰라 할 지라도.)

 

 

내 생일이었던 어제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

마지막 일몰을 보다가 소식을 들었다.

오늘 저녁엔 제주에서 사온 한라봉차 한 병을 들고

우연이 만들어낸 새 인연을 보러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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