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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 강제출국되었습니다...

오늘은 전화가 안 오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09.10.23 21:35 http://cafe.daum.net/free-minu/FwvK/12 

 

미누가 결국 강제출국 되었습니다

함께 수감되어 있던 이주민 동료 말로 5시 경부터 안보이기 시작했다고 증언을 했고

이주노동자의방송 등 다른 동료와 4시반경 이후로 전화연락이 없었습니다

 

기자나 변호사 쪽 통해서 알아본 결과

출국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추후 대응일정을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구나.

 

26일 오전11시, 규탄집회가 있다고 한다.

 

그 전에

미누의 일기글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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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의 편지  

 

여기는 매일 매일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이 나갔다 들어온다.

그 사이 짧은 만남이지만 정든 친구들도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나라도 다르지만 여기서는 우리모도가 잡혀온 외국인으로 통하는 것, 서로 형제와 다름이 없다.

하루 종일 밥 먹고 자는 일 밖에 없다.

나는 키가 작다. 내가 나무라면.....

그래서 여기 안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나와 같이 운동을 좋아하는 몽골 동생도 있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개구쟁이 친구도 있다.

어딜 나 꼭 이런 사람은 있기 마련. 태국,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친구까지..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좋은 만남이다.

각자 어떻게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부터 각 나라 상황의 이야기 까지 토론 제목도 가지가지다.

무거운 마음을 달래주는 우리의 대화는 밤늦게 까지 계속 된다.

감시실 반장이 잠을 자라고 경고 할 때 까지 계속 된다.

아 ....  여기는 말로만 듣던 군대와 같다..  친구들도 괴로워한다.

잡혀 들어오는 것도 억울한데 말도 못하고 답답해한다.

이런 우리의 심정을 그들이 알길 없다.

자자. 수위자우.. 굿나잇.....

지금 시각 12:30 PM.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가위 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잡혀온 베트남 친구였다.

아직 말을 못 나눠 봤지만 그의 얼굴이 너무나 어두워 보인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그래도 이 친구는 더 힘들어 보인다.

아마 꿈에서도 도망치고,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맘이 무겁다.

오늘 아침에 변호사랑 이야기 하고 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밤새 고민 고민 하다 내린 결정이다.

나는 내 문제를 가지고 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속의 겁에 질려 돌아간 영혼들이 나를 통해 대답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2003년 농성장에 걸려있는 사진 속 그들이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잘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 그래 참 잘했다 미누야” 나 혼자 말을 해본다.

나에게 힘을 주는 선배, 후배, 친구,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영적,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을 얻는다.

“힘내라 미누야  힘내자!”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3 

 

 

오늘 아침에도 면회가 시작되었다.

예전에 수유너머에 있었다가 지금 다른 곳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동생들이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오늘 기자회견이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동생들을 만나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면회 끝나고 나는 기자회견 분위기가 궁금해 졌다.

누가 오고 어디서 오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전화를 걸었다.

많은 분들이 와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지자들도, 단체들도.. 동료들도...

안에서 듣기만 한 나는 와주신 분들 뿐 아니라  시간과 여려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가운데 여기 안에서 나는 여권 신청하라고 독촉을 받고 있다.

나는 ‘새로 발급 받은 여권이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럼 언제 가지고 올 건지 확답을 바라는 출입국 여직원......

‘변호사와 상의 해 결정하면 된다’고 했더니 

여직원은 어디론가 불쾌한 얼굴로 전화를 건다.

한참 후 내 담당자 김호준 실장이 ‘출입국규정상 여권이 여기 있어야 한다’고 하며 빨리

가져 올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출입국) 신청 할 거다’라고 말을 했다.

‘아저씨는 다른 분들과 경우가 다르니까 강제로 보내지 않을 거다‘ 말을 하면서

큰 죄를 지은  죄인 같은 기분 이었다.

오늘 있었던 기자회견 이야기, 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전화로 들었던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나는 감격과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6 오후 1:00  

14일 출입국 관리소 앞 기자회견 후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가 되는 것 같다.

경향신문 1면에 나오고 다른 신문에서도 나와 관련된 기사를 보도해 주었다.

다음 메인에도 뜨고 .. 잘(많이) 보도 되어서 많이들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오셨다.

수유너머 식구들이 큰 박스에 가득 채워 보내주신 과자, 음료수, 김, 차, 초콜릿 등등 ...

덕분에 보호소 안에 친구들 하고 작은 과자파티를 열었다.

우리 방에 있는 18명, 옆방에 있는 친구들 까지 나누워 먹었다.

기분이 좋다. 잠시나마 여기에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더 감동 받은 것은 토마토 주스다. 

내가 3년째 아침마다 토마토를 먹고 있다.

보호소 에서는 일주일째 먹지 못했는데 과자 박스 안에 토마토도 들어있었다.

나는 원래 생 토마토를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그 어떤 토마토보다도 아주 귀한

토마토 주스이다. 다른 주스와 과자 등은 모두 나누워 주었지만 3통의 토마토 주스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나는 토마토에 욕심이 많다.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수유너머 식구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답답했던 속이 뚫린 기분이다.

두 통이 남아 있는데 실은 혼자 먹을 수가 없다

내일 같이 나눠 먹어야지 ^^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4

 

 

벌써 일주일이 넘우 9일째이다.

오늘은 16일. ... 내가 같혀 있는 화성 보호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기자회견과 문화공연이 1.2부로 나눠 열렸다.

서울에서 화성까지 정말 먼 길인데....

‘아침 일찍 서둘러 여기까지 오느라 다들 많이 고생했겠구나’ 생각하며

오신 모든 분들에게 어떤 말로 감사해야 할지......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머물러 있는 방까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화장실 창문에 귀 기울이면 간신히 들리는데 안에서는 보고 있는 TV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 때문에 아쉽게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난 해결이 되었다. 전화기로 듣는것이었다.

동료들은 진행 상황을 모두 핸드폰으로 들려줬다.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눈을 감고 구호를 마음으로 외쳤다.

 

“석방하라 석방하라” “(특별체류허가증명서) 발부하라 발부하라” “ 합법화하라 합법화하라”

 

행사 1부가 끝나고 권영국 변호사와 특별면회가 이루어 졌다.

면회 하는 중 우리노래가 계속 흘러나온다. 여기서는 잘 들린다.

면회 중 에 권변호사님이 여제와 오늘 경향신문 1면에 나온 신문 2개를 펼쳐 주시면서

기사를 보여주셨다.

나는 그 신문은 가져가 안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다들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오늘 (보호소)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사진을 보고 나를 보고 “신문에 있는 사진 네 사진이야?” 라면서 나에게 물었다.

내가 들어올 때 친구들이 “공장에서 잡혔어?” 사장 돈 다 주었어? 라고 물었을 때도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들은 ‘언제 여기서 석방 되냐?’ 그 후 계속 묻는다.

나의 싸움이 힘든 싸움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도 몰라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리고 잘 될지 안 될지 그것도 몰라요.’라고 말을 했지만 친구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고 속이 상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후 5시쯤 기자회견 풍경이 있는 사진과 큰 용지에 적혀있는 동료들의 사랑과 용기의 편지를 받고 나는 또 다시 큰 감동을 받았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쓰여 있던 글들... 내 사진 배경으로 사직 찍었던 동료들 사진들... 나는 보고 읽고, 또 보고 읽고, 도 보고 읽었다.

사진 속에 있는 동료들의 표정 하나 하나가 그렇게도 사랑스럽고 나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보호소에 같이 있는 친구들도 보았다.

친구들이 ‘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애정을 가진 한국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복 많은 놈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정말 복 많은 놈이라는 것을...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시바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들이여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라고 나는 작은 기도를 올린다.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6

 

 

내가 묵고 있는 방 번호는 93번이다.

다른 방 보다 조금 큰 편이다. 방 평균 17명이 생활한다.

일 이 아직 해결이 안 돼서 길게는 3-4개월 째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다. 보호소 선배들이다. 새로 들어온 친구들에게 친절하게도 자리를 배치해 주고, 필요한 것을 알려주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내가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호소 처음으로 들어오는 친구들은 많이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뭇 충격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선배들은 챙겨주고, 가족처럼 대해주어 내가 그랬듯이 처음 온 친구들도 많이 위안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선배는 이란 선배이고 한 선배는 파키스탄 선배이다. 두 분 다 항상 웃고, 사람을 재미있게 해준다.

이란 선배는 독특하기도하지만, 말을 재미있게 하여 대화하기가 편하다.

이란 선배는 일을 하다 손가락 하나가 없다. 엄지 다음 손가락이다.

선배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선배가 어느 한 가게에 갔는데 구입할 물건을 가리키며 가격을 물었는데, 가게 주인은 갑자기 화를 내면서 ‘다시 해 봐!’ 그러는 것이었다.

이유는 선배가 물건을 가리킬 때 가운데 손가락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선배는 엄지손가락 다음 손가락이 없어서(검지손가락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을 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웃으며 말을 했다. 다들 깔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하나도 재미없었다. 나는 선배 손을 잡고, 손가락을 잡고, 만지고 또 한참을 만졌다.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7

 

 

오늘은 일요일 면회가 없는 날이다.

오늘 아침부터 몸도 마음도 이상하게 무겁다.

기분을 풀기위해 카드놀이로 운을 보기로 했다.

몇 번 카드를 펼쳤지만 잘 풀리지가 않았다. 기분이 두 배로 무거워졌다.

유치하다. 믿을 걸 믿어야지. 언제부터 이런 것을 믿었다고.

어디 기댈 데가 없어서 카드한테... 실은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그간 아침, 점심 계속 면회 오신 분들이 있어서 하루 일과가 짧게 느껴졌는데, 그래서 심심풀이 감으로 한 것인데, 아침 시간만 몽땅 지나가 버렸다.

점심 먹고 동료들에게 전화를 건 다음 네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포카라에 있는 작은 누나와 카트만두에 있는 큰 누나에게 내가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한테는 아직 연락을 못하고 있다고 누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시니까 충격 받으실까봐 쉬쉬 했다는 것이다.

실은 누나들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가 전화로 걱정 말라고 해도 한국에 있는 아는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 ‘혹시 미누를 때리지는 않냐? 먹을 것은 주는지’ 등등 묻는다는 것이었다.

큰 누나보다 작은 누나는 마음이 약한 편이다. 통화하는 내내 우셨다.

내가 체포된 그 날은 네팔 최대 명절인 더사이 명절 기간이었다.

즐거운 소식을 주고받는 대신 이런 내 처지에 대한 연락을 하게 되어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내 상황이 지금 이렇지만 많은 동료들이 함께 있어서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 드렸다. 그때서야 누나들이 알았다고 하면서 통화를 끊었다.

오늘 MBC 9시 뉴스데스크에서 나와 관련된 집중취재 뉴스가 보도된다는 것을 여기 안에 있는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다.

평소에는 다들 자기 보고 싶은 프로를 보는데 내가 뉴스에 나온다고 하니까 다들 뉴스 시작하기 5분전부터 TV앞에 모여 뉴스를 기다렸다.

한국말이 안 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들 ‘언제 나와? 언제 나와?’ 계속 뉴스를 보면서 물었다.

나도 뉴스에 나온다고만 들었지 확실히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 없었다.

예전에 이주노동자 관련 뉴스 촬영해서 가지고 가지만, 보도 안 되는 사례들도 꽤나 많아서...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하면서 진정 시켰지만 ‘보도 안 되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갔는데, 그 때 화면에서 노래하는 내 사진이 보였다.

그때서야 ‘이거야!’라고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한국말, 글도 모르는데 지금 보호소 추리닝 입은 모습과 TV속 내 모습이 전혀 달라서 다들 멍하고 있었던 것이다.

MBC가 집중취재를 해주었다. 다행이다. 우리 말고도 옆방 친구들도 뉴스를 보았다.

한 조선족 아저씨는 ‘이런 사람을 왜 여기에 있게 하는 거냐? 빨리 밖으로 보내줘.’하면서 방 밖에서 TV를 보던 출입국 직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직원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도 아저씨는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셨다.

벌써 일주일 넘게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냥 지나간 인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과 여기서의 만남은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젠가 어디에서 어떤 일로 만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요한 존재로 여기면서 이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힘든 순간들도 있겠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참 행복한 순간이다. 여기에서도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진 친구들이 생기다니 감사하다.

‘지금 여기에서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더 힘차게, 행복하게 남은 삶을 꼭 사세요.’라고 속으로 나는 밤에 친구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서 말한다.

여기는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지만 일단 들어온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걱정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해서 내 자신을 작아지게 하는 것은 안하려고 노력한다.

또 걱정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니까.

이런 내 삶 또한 나를 가꾸고 더 열심히 잘 살아가는데 좋은 지도가 되는 순간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한다.

안 된다는 생각보다 된다는 상상을 많이 한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방식이기도 하니까.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8

 

 

무슨 심판 받는 느낌이다.

18년간 세월동안 살아왔던 한국은 이제 살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심판...

누군가를 해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은 이 기분이 몹시나 깊게 느껴진다.

실은 오늘 상담하다가 담당자인 김호준 실장이“미누씨는 여기 짧게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뒤에 “대사관(네팔)쪽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압력 받고 있으니 상황이 좀 그렇다”

도전 메시지 같았다.

역시 약한 나라일수록 자별과 무시가 밥 먹듯이 반복 또 반곡 하더군.

완전 무식한 행동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던, 죽던 내 삶의 걸리는 문제인데...

나에게 아무런 배려 동의 없이 이런식의 행동의 반복은 다시한번 생각해야 한다.

18년동안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왔는데 당신들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런 인간 이하의 행동 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한국을 비하하는 거다.

욕하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행동이다.

한국이 걱정된다.

어쩌면 사랑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되면 어쩌지?.....

차별, 무시 아픔을 담고 돌아간 많은 이들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 할 건가?

그냥 깡그리 무시해 버릴려는 건가?

아님 모른 척 할 것 인가?

그렇게 그냥 세월 속에 묻어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천만에 말씀!

반드시 책임질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주민들의 역사를 이런 사건들만으로 치부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간 힘들게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했던 것들이 한국을 돕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이것이 여기서의 마지막 편지 일지도 모른다.

http://cafe.daum.net/free-minu/FpyV/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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