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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사장과 몇 가지 담판을 짓고 일주일.
그러니까 카페에 취직한 지 일주일만에 사장과 독대를 요청하였더랬다.
사장이 사람들 불러다 골뱅이에 소주, 양주 먹고 담배꽁초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홀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채 아무말 없이, 오픈하는 내가 치우도록 내버려두고 가는 일이
6일 중에 2일이나 그랬으면 말 다한 거 아닌가.
사장은 이런 문제제기에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손님 없는 매장에서 일하면서 그 정도 설거지 하는 것이
시급4500원짜리 노동력에서 왜 아쉬운가 싶은 거였다. 4천원 줄 거를 그래도 올려준건데?
이런 저런 일들은 나 못하겠다, 앞으로도 서로 불편할 것 같은데 일찌감치
다른 데 알아보겠노라 했다.
건조하게 웃으면서.
오픈과 마감이 명확한 곳에서 바리스타 수업 제대로 받고 싶다고
나 나이도 적지 않고, 내 전망에 맞는 곳 얼른 찾아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점잖케.
나름 명확하게 얘기한 것 같다.
그렇게 말은 잘 한 것 같은데
마음은 편치 않다.
일주일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해서 한 주가 흘렀는데
그 사이에도, 저번처럼 엉망은 아니었지만
사장이 밤늦게 손님 데리고 와 술 먹고 대충만 치워놓고(분명 저번 사건을 의식한 것처럼 보이긴 한다)
간 일이 두 번.
어제 사장이 왔기에, 저 어떻게 할까요? 하니, 자기 사정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아
논조를 일부러 흐리는 듯도 했지만, 나도 막 캐묻고 따지지 않고 그냥 있었다.
사장 입장에서야, 누굴 또 채용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고
카페를 곧 접을 수도 있는 어정쩡한 상태니 어물쩡 넘어가고 싶을 것이다.
그 수작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나는 오늘도 카페에 갔고, 사장 손님들에게 커피를 타냈다
나가기 싫으면 그냥 안 나가도 될 분위기까지 만들어놓고 그냥 나가고 일을 했다.
뭔가 심경만 복잡.
사장도 가고, 손님들도 나가고. 쉬는 시간에 이력서를 고쳤다.
두세 군데 카페에 다시 이력서를 넣었다.
이상하게도 내겐 이전의 간절함이 없다.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연락이 오지 않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쳤다기 보다는, 더 복잡한 그물에 걸린 것 같다.
다른 일이래야 학원일을 한 게 전부이긴 하지만
이렇게 투덜대고 짜증내며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툭 쏟아내곤 가끔 함께 사는 친구들에게 민망하다.
새로 자른 앞머리와 뱅 스타일의 머리를 맨날 아이롱으로 말면서
또 화장하면서
밥 먹으면서 화장실 가면서 옷 입으면서.
매일 아침, 식사를 함께 한 친구들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내주던 시간도 기쁘지 않고
한동안 어찌나 드립이 안 되던지.
적응기라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영 적응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발에 한 치수 작은 구두를 신고 내리막을 내려가는 것같은 기분이다.
어쨌든 지금 일하는 카페는 곧 정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 이력서 넣었는데 마음이 울적한 것은
정말 손님도 많고, 제대로 카페일을 시키고, 가르쳐주는 곳에 가더라도
왠지 작은 구두 신고 내리막 내려가는 기분은 안 없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하다.
다른 카페라면,
커트머리 하고 가도 되나.
화장 안 해도 되나.
매장에서 밥 먹어도 되나.
새로 이력서를 쓸 때마다, 안경끼고 가면 싫어할까 따위를 고민하는 것이
이전에 학원에 알바구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데에선 하루 일하는 직원2명이 식비 5천원을 나눠 쓸 수 있게 되어있고
7시간 일하는 내가 그 돈을 다 쓰고 있지만
그 7시간 동안에는 '밥'을 못 먹고 있다. 커피, 차, 빵,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을 수는 있지만.
도시락을 쌌다면 좀 달랐겠지.
그치만 식비 5천원은 어떻게든 썼을 것 같다. 11시쯤 아점먹고 출근하면 1시,
사실 난 그때부터 배가 고파서 뭘 먹고
5시쯤 되면 배고픈데 그때부터 손님이 좀 있기 떄문에 일하다가
7시쯤 되면 진짜 배고픈데 몸이 쳐져 뭘 만들어먹기도 싫고.
김밥을 미리 사간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하루 종일 그 김밥 한 줄을 다 먹지 못하고 집에 가져와야 했다.
나 혼자 지키고 있으니
손님이 언제 부를지 모르고 또 손님이 언제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김밥 한 알을 씹을 때 최대한 빨리 씹고,
연속해서 먹지 못하고 하나 먹고 홀과 바깥쪽 눈치 한 번 본 다음
이빨에 혹시 뭐 꼈을까 한 번 혓바닥으로 이빨을 훑어준 다음
또 배고파서 거의 본능적으로 한 알 집어먹고, 냄새 안나나 신경쓰고
이러고 앉아있으려니 반 줄 겨우 먹고 허기를 떼우게 되더라.
그 후론 차라리 참았다가 끝나고 먹는 편을 택하게 되었다.
학원에서 일할 때는 밥은 알아서 밖에서 먹고 들어가도 되고
그만큼 틈도 있고, 아니면 교무실 같은 데에서 밥 시켜서 막 먹고 이빨만 닦으면 됐는데.
아니, 바쁠 땐 A학원에서 B학원으로 가는 길거리에서 햄버거 1분만에 먹어치우고
갈 때도 있긴 했다.
그건 이른바 '시즌'일 때. 그 햄버거 5천원짜리야 5분 떠들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인 그런 때는
1분안에 햄버거 먹는 것 쯤이야.
ㅎ 사실 그 일을 두고두고 남들에게 얘기하며 학원일 ㅈㄴ 힘들다고 말한 적도 많았다. ㅋ
하여간.
커피 프린스를 보면서도
식사하는 씬을 보며 불안해했었더랬다.
손님이 안 보이는 테라스 바깥쪽? 복도쪽? 암튼 그런 데서 김밥이랑
음료수로 대충 떼우는 것에서.
사실 은찬이랑 한결이의 러브라인을 관찰하면 족할 그런 장면이니까
내가 카페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신경 안 썼을 장면이겠지만,
난 정말 카페에서 밥 먹는 장면이 항상 그런 식으로 나와서 불안했었다.
그래도 거긴 탈의실은 있더만. 혼자 숨어 울 수도 있고.
여긴
휴게실이 없기도 하거니와,바 안쪽은 밖에서 들어오는 손님에게 훤히 보이게 되어 있고
주방엔 의자도 없어서 숨어서 뭘 먹으려도 서서 먹어야 하고
냄새나고 이빨에 뭐 끼고 립스틱도 지워지고.
휴게실이란 말을 하니까 갑자기 웃긴다.
바와 주방, 테이크아웃룸이 다 분리되어 있고, 싱크대도 70년대 스타일. 그야말로 최악의 동선,
이런 곳이 또 얼마나 숱하게 많을까.
또 이런 곳을 좋다고 오래오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 모든 걸 다 알고 왔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그래도 조용히 타이르고 푸쉬도 하고 카페를 살려놓으면
조금씩 뭔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잠깐 착각도 했더랬다.
솔직히 여기 저기 이력서 넣고 면접도 보고 그래도 아무데도 연락이 없어
나같이 경력은 있으되 실력은 없고, 특히 나이 많은 여자를 뽑아준 걸
잠시 잠깐 감사한 적도 있잖은가.
사장이 어지른 거 치우기만 하면 늘 혼자 있으니 시간 떼우기 딱 좋은 곳이다, 여긴.
물론 이쪽 페이는 나이도 경력도 안 묻고 거의 최저임금이고,
밥값과 차비를 빼면 카페에서 쫒겨나지 않을만큼의 깨끗한 옷과 신발 사고
계절에 맞게 머리를 손질하고 나면 남는 것 한 푼없는 수준이지만.
아,
욕나와.
이런 걸 뭐라 해야하나.
나는 내가
화장 하고, 옷 신경쓰고, 말투에 가식적인 친절 같은 것 달아도 그게 영 어색한 것을
계속 의식하면서 그렇다고 어떻게 고칠 수도, 고치기도 싫은 그런게 날 계속 불편하게 하고 있다고 의식하고 있었는데,
글쓰다보니 이건 참.
그냥 '기술'을 좀 익히고 매장 '경험'을 좀 쌓고 약간의 돈을 벌고 싶었던 건데
아마도 학원일을 할 때 못느꼈던, 이런 꽉 죄이는 느낌은
내가 그 전엔 노동자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노동자가 되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모든 삶과 노동의 조건들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마켓의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의자가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그런 종류의 조건들 말이다. 그러나 싸움 이후에도 마트엔 아직도 의자가 없고,
의자가 있더라도 실제 사용 못하는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난 그런 마트의 직원들 앞에서 물건을 놓으면서 마음으로만 불편해할 뿐이었는데
마음의 불편이란 말이 부끄럽고...
그래서 엄마가 내가 카페일하는 걸 그렇게 두려워한 것이겠지.
내내 호프집, 노래방에서 일해온 엄마의 고단함과 나에 대한 걱정, 기대, 이런 것들이 확 밀려온다.
그래서 복잡해진 머리로
그만 둘 준비를 한다.
바리스타
커피숍 직원
그런 말들이 화나고 슬프다.
치욕스럽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나는 이 곳을 나가면 갈 다른 곳이 있기 때문에 그만둘 수 있는 거겠지.
아니면 계속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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