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 알기만 해'

2007/06/01 01:26

  

    어제 노동법시간에 교수가,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경우, 가난한  노동조합에 청구하여도 효과가 없고 노조지도부에게만 청구하여도 천억대의 배상을 받을 수 없으니 단지 노조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조합원에게 모두 책임을 물을수 있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 집하고, 재산, 월급 다 가압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 여러분 취업할 때 신원보증하죠? 신원보증한 아버지, 형제들 집하고 재산까지 다 가압류합니다. 그러니까 자살하죠. 이런 일 일어나면 몇명씩 자살하는 거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흔히있었던  일입니다. 훗~" 

 

 라고 그 특유의 단호하면서도 시니컬하게 학생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투로 얘기를 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하악~  어머....어머......" 하면서 놀라면서 경악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역시 모르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막상 1600억대의 손해배상액을 150명 남짓에게 나누어 청구하여 한사람당 10억이상씩 배상판결을 받고 자살했을 조합원들의 얘기를 들으니, 최근에 FTA체결로 인하여 자살한 한 동지의 얘기를 들었을때도 느끼지 못했던 가슴이 꽉 매이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작년에'단순히 쟁의행위에 참가했다고 해서 노조나 노조 간부들과 함께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진다고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근데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마치 전혀 몰랐다는 듯이 경악하는 소리에는 약간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없었다. ' 너네는 그럼,  그런일이 있었던 걸 전혀 몰랐냐? 순진하기는.... 풋'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단지 학점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학구적인 열성도 부족함이 없는 아이들이 의외로 과에 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향학열은 매우 편향된 쪽으로 치우쳐 있었음을 이런 사례에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법을 공부하면서도 맨날 경제신문하고 조중동만 보지  민중언론 참세상, 하다못해 프레시안이나 한겨레같은 곳은 한번도 들여다 본적 없겠지.  그러니까 저런 얘기가 너네한테는 놀랄 일이겠지. 난 이제 별로 의아해 하지는 않아.  사람이 배웠다고 해서 배운대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문제사안을 보고서도 해결책을 내리는 것은 각자의 머릿속의 가치판단에 따른것일 테니까.

 

 그 교실에 앉아 있는 이들중에 몇명은 판사가 될 테고,  그들이 과거에 노동법 시간에 이런 얘기들을 듣고 깜짝 놀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해도 " ....... XX에게서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기에 단체협약 체결의무또한 인정할 수 없다. 고로 XX에게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물리적 압력을 행사한 피고에게는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어쩌구..... " 하면서 한 천억정도 배상금을 때리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것이다.  그들이 배운 '법적 안정성'  에 대한 맹신과 위의 상사인 판사들이랑 충돌하지 않고 무난히 승진해야 할 이유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요즘 더욱더 생각하는 건 단지 알기만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386들, 공부를 안해서 그리됬나? 오히려 요즘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맑스이론, 철학, 역사 빠삭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에서 선택하는 정치적 경로는 희한한 것이다.  정말 아는 것만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에 식자는 정말 많다. 아는 건 금방 잊혀지고 생각만 하는 것은 별로 가치있게 남지 못한다.  이건 아주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느끼기만 하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더,  지속력도 없고 힘도 없이 아무런 가치도 변화도 낳지 못한다. 

 

 친구가 매우 걱정되면 백번 머릿속으로 걱정만 해주기보다는 한번의 전화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실수했다고 생각하면 백번 머릿속으로 죄책감느끼면서 잘못을 곱씹기보다는 한번 뉘우치고 다시는 안하는 것이 훨씬 깔끔할 것이다.

 

사랑한다면 백번 머릿속으로 그리워만 하지말고 한번 만나서 너를 그리워했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것이고 

 

맘에 안들면 왜 저사람이 맘에 드는 지 안드는지 백번 곱씹고 판단하기보다는 그냥 관계를 끊고 안보거나 신경을 안써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누가 불쾌한 말을 하면 저 말이 불쾌해야 할 말인지 아님 불쾌해하는 내가 이상한건지 백번 고민하지 말고 기분나쁘니까 너 맘에 안든다고 말을 하던지 아님 똑같이 불쾌하게 해주면 된다.

 

자신이 맘에 안들면,  나는 왜 이럴까 백번 분석하고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맘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면 된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건 그냥 없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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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오징어땅콩 2007/06/01 01:3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감지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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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oreaone 2007/06/01 02:47

    잘 보고가요...감사해요- 제 블로그도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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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EM 2007/06/01 03:37

    재밌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특히 386 부분.
    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 어쩌면, 그 사람들이 우경화된 것은, 자기가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음.. 이렇게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뭔가를 알긴 알았는데... 그걸 어떻게든 실천으로 연결시키려다보니 결국은 그 "실천"이란 것이 "개량적"으로 나간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이런 경우라면, 문제는 실천이 아니라 앎입니다. 즉 그들이 알았던 것, 또는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거죠.
    따라서... 오징어땅콩 님께서 "알기만해"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일 가능성도 큽니다. 아니, 사실은 잘 아는 것도 실천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생각해요.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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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땅 2007/06/02 11:43

    코리아원/ 감사하실것 까지야...서로 자주 오가도록해요^^
    em/ em님이 하신 말씀을, 다른 사람도 저에게 한적이 있는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겉뿐이고 실은 별로 잘 알고 있지 못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행보를 걷는 것이 별로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저 또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자신과 이해관계가 직접 닿아있지 않은 경우라면 결국 그 앎을 져버리는 것도 매우 쉬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말을 하게되는 군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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