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공짜로 가질분 있으세요??

2010/06/11 00:13

 

 

 

 

그날이 오면 에서 잘때 볼 책을 두권 샀습니다.

 

 

하나는 ' 김예슬 선언'

 

하나는 ' 이십대 전반전'

 

 

'이십대 전반전'은 5명의 20대 여학생들이 자신이 느껴온 삶이라는 것에 대해 함께 수필

 

같은 문체로 쓴 글이구요.

 

 

객관적으로 좋은 책들이지만,  제가 소장하면서 계속 볼것 같지는 않아 더 유용하게 보실

 

분들께 드립니다.  ( 교환해 달라고 하려니 좀 미안하더군요.)

 

 

신림동 녹두거리로 와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댓글 달아주세요.

 

 

사견으로는 저자들이 이십대 전반의 연령이다보니 비슷한 상황으로 향해서가는(?)

 

연령대의 분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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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리영희

2010/06/07 02:57

 

 

 

 

 

1. 방자전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영화를 보러 신림역에 나갔다.

 

 그냥 가볍게 보기에는 방자전이라는 영화가 좋다는 추천이 있어서 그걸봤다.

 

 ('유령작가'에도 약간 마음이 끌렸지만)

 

 

 이 영화보면서 여배우들은 참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염한 베드신을 연출하기 위해서 꼭 저렇게 적나라하게 신체를 노출해야 하나 싶었다.

 

 베드신도 베드신 나름이라는 생각이들었다.

 

 배우간의 호흡이나 감정전달보다는 배우의 신체만 주욱 흝어내리는 그거 좀 불편하다.

 

 그냥 한번보기에 부담없는 영화였다.

 

 자기희생적인 순수한 순정남들이보면 큰 공감을 할 영화였다.

 

 

 2. 고집센 리영희

 

 나는 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사실 리영희선생이 큰 영향을 끼치던 훨씬 이후에

 

 20대를 보냈다.

 

 리영희 선생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지해서, 그냥 옛날에 시국선언하고 운동좀 하시던

 

 나이든  언론인 출신 교수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김산의 '아리랑'  의 서문에 리영희 선생이 '7년간의 소모적인 군대 복역을

 

 강요당하고 나와서 방황할때 아리랑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라는 소개글을

 

 써놓으신것을 보고서 어떤 일생을 살아온 사람인지 그 인물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었다.

 

 

 그날이오면 에서 잠안올때 보기위해 리영희 의 '대화' 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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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전, 한국전쟁전에 이미 젊음을 겪으신 분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당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90%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독립운동가는 안창호, 안중근, 김구 요 세사람만이 대표격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다.

 

 우파적 지식인의 대다수는 일정말기에 변절을 했고 사실상 좌파들만 실제적인

 

 독립운동가로 남았다.  그리고 그들은 월북해서 출세한 사람들도 있지만 북한에서도

 

 많은 이들이 정쟁에 휘말려 김일성에게 축출되었고 남한에 남은 사람들은 변절하지

 

 않은이상 굉장히 힘들게 옥살이를하거나 하며 살다가 비참하게 돌아가신분들이 대부분

 

 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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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후부터 한국전쟁전까지, 정말 우리나라는 개판중에서도 상개판의 상황이었다고

 

 리 선생은 말한다.  이승만은 자주적인 국가관은 눈꼽만큼도 없었고 기회주의자에

 

 일제출신 부정부패 관리들 대다수가 남한사회를 장악하고 있고 민중들은 밥한술

 

 구하기 힘들어하며 들끓는 이와 벼룩속에서 살았다.

 

 

 아는 얘기인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직접 말해주니 더 실감이 나는 부분이다.

 

 그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조금 써보자면

 

 1) 리 선생의 가족이야기

 

  리 선생은 고향이 평양이다. 그러나 중학교부터 경성에서 다니고 해서 평양에서

 

  보낸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평범한 관리였고 어머니는 대지주집안 딸이었는데, 돈과

 

  신분이라는 것을 맞바꾸는식으로 정략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선생이 생각하기에도 별로 존경할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묘사한다.

 

 (할아버지가 자기부모를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 신선했다.)

 

  리 선생의 대지주였던 외가 집안은 선생이 태어날때쯤 몰랐했는데 그 이유는

 

 '충직한 머슴'  이 독립운동군이 되어서 운동자금을 내놓으라고 선생의 외할아버지

 

 와 다투다가 할아버지를 총으로 쏘아죽인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생의 외삼촌은 한술 더떠서 동경유학후 빨간물 들은 지식인이 되어 돌아와서

 

 사회주의의 무상분배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고 집안의 재산을 주변의 소작인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 선생님은 결과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면서 열심히 공부만하는

 

 '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학생이어서 열심히 공부만 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때에는  중학생이면 ' 굉장한 지식인' 으로 대접받아서

 

 (워낙 학생이 소수다보니) 정세에도 민감하고 모여서 집회나 토론을 하는것도 빈번

 

 했는데 리선생은 그런것에도 별로 적극적인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경성에 유학하며 주린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방이 너무 춥고 비위생적

 

 이어서 이와 빈대를 때려잡느라고 잠을 도저히 잘수 없었다고 한다.  학생이면 대단히

 

 존중받는 계층이었지만, 그래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살았다는 거다.

 

 

 재밌는 부분은,  평양에는 이미 상업이 발달하여 있었기 때문에 남한같은 반상의 뿌리

 

 깊은 유교적인 계급문화가 별로 드세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남녀 평등하여 남자들이

 

 부엌일을 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일이 아니었고 (그래봤자 얼마나 했겠냐만) 육체노동

 

 을 하는이들을 당연히 천시하는 풍조도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해방후 인민위원회들이 행정적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을수

 

 있었던 하나의 요소가 아닌가 하고 얘기하고 있따.

 

 

 전쟁에서 강제로 7년이나 통역장교로 복무한후,  지식인으로서 활동가로서 크게 눈떠

 

 가던 시절 합동통신사에 근무하게 됬는데,  이때 결혼을 했다 , 그런데 리 선생은 별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 내가 운동가이니까 가족을 꾸릴처지가 안되서'

 

 라기보다는 ' 두 사람이 만나서 마음으로 합일을 이루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자신에게

 

 는 불가능할것 같아서'  였다고 한다.  그 세대이면 좌우파 막론하고 그냥 결혼해서자식

 

 낳는것을 당연하게 여겼을텐데 나름대로 그런 회의가 있었나보다. 그러나 어쨌든 결혼

 

 을했고, 평생동안 부인이 리선생때문에 고생하며 세 자녀를 키운것은 다른 활동가들과

 

 별로 다를바는 없다.  근데 늙어서는 생각보다 부인과 자식들에게 큰 미안함을 가지고

 

 계신지 자식들과 부인에게 ' 죄송하다' 는 표현이 책에 많이 보였다. 뭐 말이야 누군들

 

 못하겠냐만, 그 나이세대는 운동가들이 가족이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평생 당연히

 

 여기지 않았을까 싶은 점에서 조금 신선했다.  박정희 정권때 투옥되어, 군대간 장남에게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써달라'  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  솔직히 엄격하고

 

 밖의 일만 하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다' 라는 아들의 답장을 받고 많이 울었다고

 

 써있다.  (부인은 천상 꼿꼿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인거 같은데, 나이들어서 리 선생이

 

 가정적이 되어서평생 가정을 돌보지 못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손가락만큼은

 

풀렸다고 한다.)

 

 

 자녀중에 딸한명만이 아버지의 길을 따라 격한 노동운동가로 12년정도를 살았다는데

 

 지금은 거의 중년일텐데 뭘하고 살고 계신지 모르겠다.  조금 궁금했다. 

 

 

2) 운동하는 학자로서 리 선생

 

  형식적인 의미로 논문을 한편도 쓴적이 없다고 한다.  대학졸업장외에는 학위도 없다고

 

  한다.  물론 그 세대에 그런 교수가 없는건 아니지만, 형식적인 논문쓰는데 시간 허비하고

 

 싶지 않고 그 시간에 현실적으로 정세를 분석해서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

 

 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연구를 할때 각주를 많이 다는 형식의 논문을 쓰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는

 

 데, 자신이 쓴글의 대부분이 인용인 글보다 자신은 철저하게 본인이 직접 1차적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자기것으로 소화하여 자기 사상으로 소화하는 글을 쓰고자했기 때문에

 

 자신의 글에는 각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건 공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말도안된

 

 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인용의 출처를 밝히는 유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발표

 

 된 학자들의 문헌과 연구에만 의존하여 그것을 변형하고 분석하는 형태의 논문만을 쓰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인것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다른사람의 프리즘을 한번 거쳐 나온것

 

으로만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있는 학자들의 속성을 비판한것 같다.

 

이건 내가 공부해보지 않은 입장이라 옳은 의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의도로

 

저런 지적을 한것인지 봐야할 것 같다.

 

 

 

60-70 년대에 사회주의와 대미관계, 북한, 중국들에 대해서 대단히 왜곡된 시선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대중이었고 실제로 학자들도 별로 그것에 관해서 많이 연구하는 바가 없었는데

 

 자신이 세계적으로 비밀정보 자료들을 발로 뛰어다니며 수집하여 그것을 기초하여 글들을

 

 썼는데, 그것들은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음을 토로한다.  학자의 의견을 거치기보다는 현실

 

 자료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객관적 분석의 틀을 만들려고 무던히 애를 쓴결과 나온책들중

 

 대표작이 ' 전환시대의 논리'  ' 8억인과의 대화' 인데  전환시대의 논리야  이미 유명한저서

 

 이고, 8억인과의 대화도 중공을 분석한 글인데 지금봐도 흥미로울것 같았다. 

 

 

 3) 엄격한 생활자세, 따지는 피곤한 습관의 리영희

 

 

   리 선생은 술은 사실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는데, 담배는 흡연욕구에 얽매이는 것이

 

 스스로를 옥죄고 한심하게 만들것 같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피우

 

  게 됬다는;) 포커나 오락등 잡기는 하나도 할줄 모르는데 그 이유는 그런것에 시간

 

 낭비하는 것이 아깝기에 중요한 일에 시간을 집중하고 싶고,  다만 악기하나 다룰줄

 

 아는 것이 꿈인데 배울시간이 없어서 늙어버린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도

 

 별로 좋지 않아서 게임을 하면 자꾸 질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등소평이

 

 브릿지 게임의 명수였다고 하는데,  그것도 리선생이 등소평을 좋지 않게 본 이유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남들은 혁명하느라 고생하는데 외국에 유학가서 그런거나 배워왔다고.

 

 그리고 등소평이 정쟁에서 항상 가라앉았다가도 부활하여 자신의 권력을 장악하는

 

능력이 너무뛰어난 처신도 처세술이 별로 없이 고집만 센 자신과는 너무 판이하여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리 선생은 한가지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 끝까지

 

 파고들어 따지고 들어서 주위사람을 약간 피곤하게 하는 성격이라고 대담자인 임헌영

 

 이 얘기하는데, 리 선생은 그런 평가에 민망해 하면서도 자신은 그럴수밖에 없는

 

성격이라고 답한다.   나처럼  정말 재미없고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 이런 사람도 존재의의가 있어, 하면서 공감했다.

 

 

 그밖에 리영희라는 분에 대하여 재밌는 부분도 많고, 인물적인 요소말고도 이승만시대

 

 박정희시대에 대한 분석과 진술 평가가 새로운 부분도 있고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지만

 

 지금은 바빠서 그냥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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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평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숭배하는 경향을 앞세우기 쉽기 때문에

 

 나는 인물 평전에 너무 큰 관심을 갖는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냥 요즘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복잡한 글은 읽기 쉽지 않고, 나름대로 일생을 열심히 의미있게

 

 살아온 사람에 관해서 읽으면 나 스스로도 힘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인물

 

 평전을 가끔 읽는다. 

 

 

 한때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평전이 유행해서 마오쩌둥, 체게바라, 김산, 로자 룩셈

 

 부르크 평전등이 화제가 되고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읽는 자신에

 

 대해서도 비판과 점검의 날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런 행위들은 그냥 ' 유명하고

 

 뛰어난 지도자들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한 숭배차원'  에서 끝날것이다. 막말로

 

 체게바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디 체게바라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는사람들이 다수인가.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큰 관심도 없으면서.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소위 혁명가들의 평전을 읽는 나를 경계한다.

 

 유명한 ' 누구누구' 말씀은 이런데.... 하는 인용의 말을 자주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중적인 인기있는 지식인만

 

 살아있고 그들에 의해서 원동력을 얻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아니면

 

 얘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도 문제가 있다.

 

 

 리영희라는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들여다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지만,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누구 에 관한 상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활동

 

 을했다가는 지금 이런 현실에서 좌절하고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서 쉽게 포기해버리기

 

 쉽상일 테니까.  난 이렇게 지질라게 평범한데.

 

 하지만 ' 대화' 라는 책을 읽는 것은 참 즐거웠고, 요 몇달간 내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큰 위안과 자극을 받았다. 외롭지 않을수도 있다는 안도감과 든든

 

 함이랄까.

 

 

 리 선생이 지금은 많이 노령이어서 가끔 발언을 하시는 것외에 글도 쓰지 않고 개인적

 

 삶을 살고 계신것으로 아는데,  황석영, 김지하처럼 격동의 80년대가

 

 지난후에 뻘소리를 하는 그런 발언을 안하시는 것도  끝까지 정세에 대해서 객관적

 

 위치를 유지하려는 사고의 습관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든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시대보다 좋아지고, 자신이 염원하던 부분이 이루어진다면 냉철함을 잃기

 

쉬운것이아닌가. 

 

 사실 리 선생이 자신이 사상적으로 지도자격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인정하고 있고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에 도취되지 않고 그냥 할일을

 

 하면서 자신을 우상화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점때문에, [위에 열거한

 

 내가 재밌다고 한 부분들이 재밌게 느껴질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의 업적에 도취되어 '투옥한 경험, 가난하고 힘든

 

 운동가의 삶, 지도자격 입장에서 후진들에 둘러싸여 그 인맥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자신의 영향력과 인맥을 확인하는 형식' 으로 '대화' 라는 책이 쓰여져있었다면

 

 뭐랄까 참 식상하고 흥미가 안갔을것이다.

 

 그런점에서 리선생님이 동구권 사회주의에 대한 분석이

 

 나 그 분이 그리는 사회적 이상향이 내가 생각

 

 하는 것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지만, 그것과는 크게 상관없이 말년에 크게 이상해

 

 지지 않았다는 점만해도 그 분을 좋게 평가한다.  살아온 삶에서 배울것이 많은 분이라는

 

 점에서 아주 즐거운 자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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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2010/05/03 17:45

 

 

 

 

 

 1. 내 이름 검색

 

 오늘 여기 진보넷에 글을 쓰려고 들어왔는데, 싸이 검색어에 내 이름이 순위로 올라와 있었다.

 

 김복실' (예를들면) 이런식으로.  죄진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물론 그 검색어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축구선수이거나 아님 무슨 창의력전문가 인것

 

 같은데 기왕에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가 잠깐 검색해 보게되었다.

 

 청담동 쇼룸 실장, 축구선수, 중학생 ,  트롯가수 ,  쎄시 표지모델, 나훈아 부인, 

 

ktx부산열차승무지부장, 코 성형 재수술을 하고 싶은(?)이 등등...

 

 기표와 기의의 관계처럼 나의 이름은 나와 달리 지극히 평범하고 여성스런이름으로

 

 중학교때는 나 외에 성말고 이름이 같은 이들이 도합 5명이었다.  그들사이에 별다른

 

 관련성은 없었고 다만 그중에 한 아이 때문에 유독 약간 드세고 자신만만한 이미지처럼

 

 내 이름이 기억되기도 한다.   내 이름을 남의 이미지로 각인하다니 참 우스운 일이지만

 

 내 이름을 누가 부르면 난 흠칫놀란다.   이 이름을 가진 병신과 머저리라는 소설에 나오는 

 

 여자처럼 청아하고 남자에게 미련을 남길것 같은 예민하고 복잡한 이미지

 

 역시 나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름안에서 내 본질을 약간 숨길수 있다는 점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청아하고 아련한듯한 느낌을 주는 내 이름때문에 상대에게 경계를 풀

 

 고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게끔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고보니 정작 내가 생각하는. 내가 만들고 싶은 나란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란 인간이 형체라는 것이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2.  신림동

 

 

 의외로 이동네 살기가 좋다.

 

 신림2동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치안도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조용한 원룸에 저렴하고 신선한 생과일주스 전문점

 

 모든것이 갖춰져있는 생필품 할인점.

 

 

 돈만있으면 뭐든지 할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뜨악하기는 했지만

 

 나도 어제만큼은  내 마음에드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연두색의 쟁반과 일본우동집에서 쓸것같은 반짝거리는 단아한 우동그릇을 사며

 

왠지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리는 것 같은 산뜻하고 포근한 기분을 맛보았다.

 

 아무걸로나 마시고, 아무걸로나 먹고 그렇게 살았었던 시절도 있었다.

 

 냄비하나로 국을 끓인다음 그걸 그릇에 옮기고 거기에 다시 밥을 지었다.

 

 생필품은 디자인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싼것을 사고 빨래건조대 사는

 

 돈이 아까워서 방바닥에 빨래를 널었다.  교과서는 중고시장에서 뒤질만큼

 

 뒤지고나서 정 없으면 새 것을 사고 그랬다.  여름에는 티셔츠 두장 겨울에는

 

 90년대에나 입을것 같은 똑같은 떡볶이 모양코트 이렇게 지냈었다. 

 

 어리고 기운좋았던 시절에는 11월에도 반팔을 입었다. 파마하는

 

 돈 몇만원이 아까워 5년동안 파마 염색같은건 한번도 한적 없고

 

 생머리를 고수했다.  심지어 잘 자르지도 않았다.

 

 안경테는 무조건 제일싼걸로 브랜드 가방은 너무 아까워서

 

 학교 뒤 보세에서 별로 더 싸지도 않은 책가방 그나마 제일 싸다 싶어서 샀는데

 

 일주일 지나서 찢어지는 일이 매번이었다. 혹시 몇천원짜리 귀걸이를 사면 벌벌떨었다.

 

 

 내가 가난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등록금때문에 타박은 들었지만 어떻게 마련할지

 

 고뇌한적 없고 부모님이 내줬으니 참으로 배부른 형편이었다.  그런데 나는 등록금없어서

 

대출받는 친구들보다 더 안꾸미고 구지레하게 살았다.  나와 비슷한 형편인 친구들은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이 벌어서 그만큼 누리고 살기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다.

 

 

 진짜 없어서 절박하게 내몰려서 그렇게 소박(?)하게 산것도 아니니 자랑할것도 아니고 

 

 그렇게 안살고 싶고 용돈이 부족하면 알바를 할수 있었으니 그건 자신의 선택이고

 

 스타일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그렇게 살면서 은연중에 내가

 

 히피처럼 물질에 신경쓰지않고 소박하면서도 정신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것

 

 처럼 행동했다. 진짜 가난해본적이 없었으니 그렇게 행동하는 자태는 나름대로 편안하고

 

 멋스럽게까지 스스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면서 친구를 만날때는 밥값도 잘 내고

 

 잘 베풀면서 나자신은 남에게 잘 베풀고 나는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아량이 넓은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 인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내가 없으면 조급해

 

 하는 사람이고 남이 돈낼때 내가 못내면 자존심상해하는 사람이고  ktx탈 돈이 없어서 무궁

 

 화호를 타는 것을 항상 낭만만으로 여길만큼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세월지나

 

면서 점점 알게 되었다.

 

 

 

 그때는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빛나던

 

 순수하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이고 그랬던 시절이라서 그랬었나보다.

 

 

 

 

왠지 앞으로는 그렇게 한푼두푼 세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며 내가 속물다됬나 싶기도하고.

 

그냥 내가 바라는 건 큰 건 아닌데..... 역시 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했지만 동시에 따뜻한 나만의 공간이 정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엌에서 쓸 행주와 일회용 접시를 고르는 것, 커튼이 없는 창문에서 더울것 같아

 

 바깥창문을 여는 것, 새로산 티스푼으로 커피한잔 타마시는 일, 집에서 싸온 장조림에

 

 밥을 먹는 행위까지도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온다는게 놀라운일이다.

 

 

 저녁에는 s양을 만나서 그리던 인도음식을 먹었다.

 

 너무 기름진 느낌이어서 조금먹고 배불렀지만 s양은 난을 커리에 적시다 못해 닦아가며

 

 끝까지 다 먹었다.  s양은 항상 음식이 남는것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는 탄투리 치킨도 한조각 남기지 않고

 

 다먹었다.  인도스타일 휘날리는 쌀이 좋은데 그냥 한국식 쌀을 주어서 조금

 

 그랬지만 아무튼 좋았다.

 

너무 한국식이어서 인도 고유의 향과 풍취는 사그라든 맛이었지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편안히 이국적인 음식을 맛볼수 있다는 점만해도 안온하게

 

 행복했다. 이런 일상적인 행복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다음에는 진짜 뜨악할정도로

 

 인도 본토의 향이 톡쏘는 인도음식점을 이태원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ㅎ

 

 

 조용한 주택가를 걷고 운동하며,  잠깐이지만 이런 포근한 감정이 지속될수있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것부터 시작이다.

 

 

 

 

 

 

 

 

 3.죽음에 대해서

 

  

 

  언니가  몇번 어울린 아기 어머니 커뮤니티중 한분의 남편이 맞아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평범한, 그리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샐러리맨이었는데, 교통사고도 아니고 자살도 아니고

 

   직장동료와 다투다가 주먹으로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이미 의식이 없었고 곧 사망했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그 아내는 어처구니 없는 죽음에 오열하며

 

  " 이렇게 죽을줄 알았다면 알뜰하게 아끼면서 살지도 말고 하고 싶은것 다 하게

 

   해줄것을"  " 착하게 살아봤자 소용없다. 내 자식들한테는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안할것이다"    라고 한을 토해내며 때린 피의자를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고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건실하게 가계를 책임지던 남편의 어이없는 죽음때문에 먹고살길이 막막해지

 

 게 됬다.  첫째는 5살정도, 둘째는 7개월,  아내는 전업주부.

 

 

 

 제 3자이다보니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난 왜 그 때린 사람이 불쌍

 

 한지 모르겠다.  자신이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이렇게 엄청난 결말을 낳을줄

 

 정말 몰랐겠지. 

 

 

 남자들끼리 호기롭게 때리고 치는 문화에 익숙하게살아왔을테고

 

 군대에서도 열심히 맞고 때렸을것이다.  덩치좋고 힘좋은것 믿고 제 맘에 안드는

 

 직장동료 힘으로 한번 제압하며 분풀어보려다가 정말 인생 망치고 어린자식

 

 과 아내까지 고통의 인생으로 몰아넣게 생겼다.  최소한 5년이상은 감옥에서 썩을

 

 테고, 지금 자신의 철없는 행동때문에 찬 감방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하루 한건씩 터질 엄청난 결과들이 두려울 것이다.  재판, 형선고,  주변지인들의

 

 경악, 무엇보다 피해자 가족들의 폭풍과 같은 격분과 원한 그리고 그 뒤에 오는

 

 나같은 인간은 살필요도 없다는 도저히 벗어날수 없는 죄책감.

 

 

 그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그리고 피해자의 아내는 그 원한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그의 죄책감과 그녀의 원한을 생각하니 나 역시도 인간의 벗어날수

 

 없는 감정의 굴레에 대해서 무서워졌다. 

 

 타인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감정은 정말 자신을 좀먹는 것이다. 증오의 대상보다

 

 증오하는 사람이 훨씬 더 괴롭다. 정말 그 굴레에서 벗어날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스스로의 마음이 힘들고 지쳐 어느날은 다 잊고 용서할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쿨하고 관대한듯한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만족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것 같은 마음에 평온해질거다.

 

 그러다가 어느날 또 가라앉았던 분노가 스멀스멀 전혀 변하지 않은 형태로 멀쩡

 

 하게 솟아나올거다. 아주 선명하고 또렷하게.  몇번씩 그 행동을 반복하다보면 마음이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다. 조금씩 희망을 주었다가 다시 빼앗고,  다시 조금씩 희망을

 

 주었다가 다시 빼앗고 하면서 다시 재활 할수 없게 무기력하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된다.  왠만한 자극에는 희망을 품지도 않게 된다.

 

 

 그녀가 이러한 과정을 겪을것이라

 

 는 것쯤은 예상할수 있다. 그녀는 피의자가 진정으로 사죄하면 용서할수 있을까?

 

 용서해주는 것이 오히려 그녀를 위하여 좋은 일이겠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용서를

 

 강요할수 없다.  그녀가 준비되어 정말 내키게 되었을때 그녀가 가진 권한으로 용서

 

 해야 한다.  그리고 죽인 이는 그녀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것이다.

 

 진정한 사과란 자신의 죄책감을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고 부주의하기 때문에 타인을 불행에 몰아넣은 그 때린 이와 같은 이에게 깊이

 

 동조하고 있다.  나도 때로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는데 교육받은 것이 있어서인지 겉으로

 

 표출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정말로 격분하게 되는 상황이 있을때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하고 파괴적인 형식으로 표출하지 않을까 하는 잠재적인 두려움이 있다.

 

어리석다는 것 자체는 그렇게까지 잘못은 아니지만 그 어리석음의 결과는 어리석은 그에게도

 

 너무 엄청나고 잔인하기 때문에 그가 불쌍하다.

 

 

 그들이 세상을 살고 싶은 의지를 갖고 있다면 비난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만 일을 해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남편을 실수로 죽인이가 평생감방에서 썩었으면

 

 하는 아내의 마음이 다시 편안해지는 방식이 어떤것이든지,그녀도 그리고 죽인이도 궁극적으로

 

 말살해버리는 방식은 아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어디서나 예상치 않은 죽음을 맞이할수 있는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죽기전에 마음에 품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참 행복한 일일거다.

 

 거기다 플러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후회나 미련없이 살아왔다고 한다면

 

 더 행복한 일일거다.

 

 이 두가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일주일후에 죽는다고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죽을때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으면 좋겠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서

 

 죽음을 맞고 싶은지.  누구와함께 죽음을 준비하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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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과 안국동 거리

2010/03/31 00:06

 

 

 

 

 

 

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무언가를 완수한후에 미래에 새롭게 시작할것을 기다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평일, 거리가 붐비지 않는 시간에 인사동의 찻집에 들어가서 오래된 메모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그들의 정다운 추억을 되새기며

 

여유롭게 뜨거운 차한잔을 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길을 건너서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안국동 길 (안국동 길 맞나?)

 

을 천천히 걸으면서 정답게 동행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인도음식을 먹어보고 싶다.

 

난 을 소스에 찍어서 먹는 그 평범한 맛도 특별하게 느껴질거다.

 

지인 모씨한테 같이 먹자고 약속을 했는데, 맨날 공부하는 것도 아니면서 약속

 

을 못지키고 있다.

 

 

그리고 외대있는데에 부속고기 싸게 파는 인기있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나만큼이나 고기좋아하는 또다른 지인과 함께 가고 싶다.

 

아니, 꼭 그녀가 아니라도 좋다.

 

새로운 미래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무리가 없는 상대라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편안한 상태에서는 술상대로 나쁘지 않을거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차려입은것이 언제던가.

 

꼭 이성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도 좋다.

 

설레는 만남, 그 만남자체를 위하여 깨끗하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마음

 

그런 마음과 함께 새옷을 입고 외출을 하고 싶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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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이들이 불행함속에 죽어가고, 그리고 또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에 대해서 사실은 몇년간 그 슬픔에 함께 동조

 

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용산참사나 노동자분들의 자살에 대해서조차

 

말이다.  내 마음이 남을 생각하지를 못했다.

 

 

이번에 해군참사를 보며 진심으로 답답하고 그리고 슬픔을 느꼈다.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슬프다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왔는데

 

왜냐면 자기 인생에 대한 애착을 가질수 있어야 남의 인생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고

 

진심으로 슬퍼할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생애 대한 애착을 가지는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요소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지금와서 이런기대를 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종자중 몇명이라도 생존하여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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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대단한줄 알았다가도 우스꽝스럽고 허무하게 결말을 짓는 일들이 종종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그 어느것에도 쉽게  감동하지 않게

 

 된다. 꼭 홍상수 영화같다고나 할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그러면서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구만 하는 생각도 굳어지게 된다.

 

  꼬리를 빼면서 99%의 인간들이 하는 선택을 나머지 1%가 따라하게 된다고 해도

 

 그 사람을 특별히 비난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하리라는 의지를 갖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면보다는 그렇지 않다고 볼수 있는 면들이 내가

 

 보아온 삶에서는 은근히 발견되고 있다.  그 은근한 면들을 확장하고

 

 의미있게 만들어나가는 것 역시 내역량과 내 관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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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0

2010/03/20 15:38

 

 

 하이킥의 결말이 나왔다.

 

 꼬박꼬박 챙겨보진 않아도, 기사를 통해서 하이킥의 줄거리를 확인하고 있었고

 

 수요일, 목요일 회를 보고 마지막회를 아쉬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결말에서 세경이와 이지훈을 죽이다니 역시 그 피디 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하이킥을,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세경이와 지훈이로

 

 남기위해서 그런 결말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세경이를 죽게끔하는 것은 가슴아프지만 그야말로 어쩌면 취지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경이는 마음에 많은 슬픔을 담고 있는 인물이고 또한 행복을 희구하지만

 

끝없는 가난, 지훈에 대한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등으로 슬픔이 지워질수 없는 캐릭터를

 

갖고 있다. 또한 첫사랑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 준혁에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며

 

죽음으로서 준혁이에게서 사라지는 것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 충격이 되겠지만 그것이

 

준혁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길이기도 하다,

 

 

 

지훈이를 죽인 이유는 아마 세경이와 시간이 멈추면서 그 순간만큼은 둘이 영원히 함께

 

하게끔 하고 싶은 작가진들의 의도이겠지만, 그냥 내가 해석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죽음으로써 정음 이에게는 항상 자신을 조건없이 사랑해주었던 사람으로서 가슴에 남을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는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정음이가 취직을 하고 처지가 나아지면서 지훈이와 계속 사랑할수도 있겠지만, 두사람이

 

 결혼하여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사실 사랑이라는 것은 항상 변할수 있는

 

것이고 음식이 시간

 

 이지나면 변질되듯이 사랑이 변할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리가 피할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같다.  또한 서운대출신에 사기과외까지 한 정음이와  엘리트 의사인

 

지훈이의 결합이 스무스하게 이뤄지는것도  우리가 바라는 현실일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지훈이가 죽음으로서 정음이의

 

마음에는 항상 지훈이가 아름답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남을수 있게 된 것 같다.

 

 

 

 지훈에게는 정음이가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세경이에게도 마음을 열었던것 같다.

 

 지훈 역 텔런트 최다니엘이 그정도의 고난이도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아직 어려웠던건지

 

아니면대본이 열린 해석을 의도해서 애매모호해서 그런지 몰라도 지훈이가 세경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 다고보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어쨌든 지훈이 죽기직전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던것 같다.

 

 그러나 현실이라면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기에 죽었는지도.......

 

 

 나이들수록 드라마에 크게 감정이입을 하여 보게 되지 않는 경우가 나 같은경우 대부분인데,

 

 이것은 썩 마음에 들고 그리고 4명의 주인공 모두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수 있었던

 

프로그램인것 같다. 통념을 깨고 기존질서를 장난스럽게 흔들지만, 한껏웃고 기분좋게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잔잔하게 공감하다가 돌아서면 기억되는 소재들이 많아서

 

좋았던것 같다.

 

 혹자는 시트콤이 왜 이렇게 새드앤딩이 되어야 하느냐 라고 불만이기도 한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나는 ' 슬픈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경우가 우리에게 더 많고, 그 여운에

 

휘감겨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점에서 어느정도 공감되지 않냐'

 

라고 말하고 싶다..

 

 

 어제밤에는 왠지 이 결말이 내 현실을 자꾸 돌이키게 하여 이불속에서 많이 울었다.

 

 눈물이 자꾸 많아지는 것이 잘못은 아닌데, 밤만되면 눈물이 많아지다보니 나도 이런

 

 내가 조금은 두렵다.

 

 나도 마음약한 내가 안타깝고 많은 것을 마음에 담아두며 살고 있는 내가 꼭 좋은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도 않다.

 

 이런저런 마음약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 힘들더라도, 소중하게 생각될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만은 지켜나가고 싶은것이 나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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