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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적인 ‘아동인터넷보호법’

비상식적인 ‘아동인터넷보호법’ [한겨레]2003-07-04 01판 20면 1334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지난달 23일 미국 연방 고등법원에서 불미스런 판결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표현과 정보 접근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갉아먹을 수 있는 악법이 재차 옹호됐기 때문이다. 이 법은 각급 학교와 공공 도서관 컴퓨터들에 음란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하고, 만약 이를 따르지 않으면 연방 보조의 기금이나 할인 등 지원과 혜택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해놓았다. 이것이 2000년 12월 의회를 통과해 제정된 일명 ‘아동인터넷보호법’의 내용이다.자나깨나 질서 확립에 목숨 거는 정치인들과 일부 걱정 많은 학부모들의 궁합에 의해 태어난 이 법의 표적은, 인터넷에 떠도는 ‘음란’ ‘아동 포르노’ 혹은 인종 편견 등과 같은 ‘소수자들에게 해로운 정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음란 쓰레기 정보로부터 막아야 하는데 무슨 이견이 있겠는가? 하지만 방법이 어설프다. 그렇게 말 많고 온갖 결점들이 두루 거론된 필터링 기술이 고작 이 법이 내세우는 어린이보호의 핵심이다.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있던 날 재미있는 보고서가 함께 나왔다. 온라인 인권단체 ‘전자프런티어재단’과 ‘온라인정책그룹’이 공동으로 바로 이 필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공립 학교들의 인터넷 정보 접근도를 상세히 살펴 주목을 받았다. 조사에는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노스캐롤라이나 3개 주의 의무 학습교재 내용을 검색의 기초자료로 활용했고, 대중화된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 ‘서프컨트롤’과 ‘베스’가 깔린 컴퓨터들에서 검색엔진 구글로 100만개의 검색 결과들을 분석했다. 결과는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필터링 프로그램의 오류를 거론하던 수준을 넘어선다. 교육적으로 볼 만하거나 봐도 되는 정보를 막는 과잉 차단은 물론이요, 정말 막아야 할 것은 아예 방관하는 과소 차단도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프트웨어 차단 수위를 가장 엄격히 적용해도 음란정보 차단율이 최대 70%를 넘지 못하고, 그도 명확한 차단 범주들에 의거해 필터링이 진행된 결과는 고작 1%대다. 대개가 부정확한 근거에 의해 잘못 분류되고 봐야할 정보들을 마구잡이식으로 잘라냈다. 올바르게 쓰여야 할 필터링이 학생들의 정보 접근권과 교육 기회를 이렇듯 심각히 억압하고 사전검열의 잣대로 쓰인다면 정보보호법의 존립 근거는 없다. 이미 지난해 지방 법원에서의 승소로 인터넷보호법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위법임을 밝혔던 미 도서관협회나 관련 시민단체들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번 상급 법원의 결정은 한참 비상식이다. 그럼에도 재정난으로 허덕이는 대다수 지역 공공 도서관들이 연방 지원금을 버리느니 무식한 소프트웨어를 눈 딱 감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우한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이광석/ 〈네트워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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