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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산업 부추기는 사회

공포 산업 부추기는 사회 [한겨레]2003-05-28 01판 20면 1302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미국 〈엔비시방송〉은 얼마 전부터 〈피어 팩터(fear factor)〉란 충격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제목에서 풍기는 바대로 외부의 공포에 대한 인간의 극한을 시험해 이를 통과한 자가 이기는 리얼리티 쇼다. 수천마리의 바퀴벌레 속에 머리를 들이밀거나, 정체불명의 동물 내장을 입안 가득 삼키거나, 악어가 헤엄치는 물 속을 지나치거나, 수백마리 들쥐와 유리상자 안에서 동거하는 등 기괴한 공포 기법들이 고안되어 스턴트 지원자들을 강도 높게 실험한다. 대개 승리는 공포와 무관할 정도로 반쯤 미쳐야 가능하다.이 프로그램은 마치 9·11 동시다발테러 이후 외부의 가상 적으로부터 받는 심리적 공포에 대비해 전국민을 유격훈련시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만큼 미국민들의 의식에는 소위 ‘두려움의 문화’가 체질화하고 있다. 게다가 국가는 날마다 테러 경고 지수로 전국민들을 일상적 공포 체제로 몰아넣는다. 이를 두고 한 논자는 “공산주의를 무서워하던 1950년대 정서는 지금의 공포 심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부 업자들은 그 흐름을 타고 침체된 디지털 경제의 주류로 득세한다. 최근 디지털 전문잡지 〈비즈니스 2.0〉은 두려움의 문화로 먹고사는 부류를 주목해 아예 ‘공포 사업’이라 칭한다. 잡지는 침체된 경제 상황에도 50여 굵직한 벤처자금이 유입될 정도로 외부 적에 대비한 보안·감시 관련 사업이 호황이라고 전한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단기성 수요에 응할 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 기술 발전의 중장기적 흐름을 새로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포 산업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대대적인 자금 지원 등을 고려하면, 이것이 그저 반짝 특수나 열풍만은 아니란 추측이다. 실리콘밸리 새흐름 주도 공포 사업의 종목은 테러대비 공항 보안 장치, 각종 모니터·위성 감시 장비, 독가스 등 맹독성 화학물질 식별기, 벌과 식물 등을 이용한 폭발물 감별, 컴퓨터 보안 체계 및 네트워크 구축 등 수없이 많다. 가상의 적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권 침해와 일상 감시의 첨단 방식들이 대거 고안된다. 9·11 이전에 민간용 기술 개발을 하던 업체들이 경기 침체를 맞아 필사적으로 벤처 자금 마련을 위해 공포 기술 분야로 업종을 바꾸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두려움과 공포의 문화는 끊임없이 적을 주조해 근거 없는 불신과 적대를 조장하고 끝내는 책임 못 질 파국을 스스로 재촉한다. 집밖의 불안과 공포를 막겠다며 총기를 소유한 미국인들이 오히려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듯, 또 한번 공포 기술은 외부 세계의 적보다 그들 스스로를 옥죄는 무서운 흉기들로 돌변할 공산이 크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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