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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둔한 폭탄 영리한 매파

아둔한 폭탄 영리한 매파 [한겨레]2003-04-16 01판 20면 1373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4월14일 접속시간 현재,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수 최소 1368명에서 최대 1621명.” 미국의 이라크 침략 덕분에 유명해진, 이른바 억울하게 죽은 주검들을 실시간으로 헤아리는 사이트 집계 내용이다. 중동과 서방 언론의 민간인 사망자 보도를 토대로 한 추정 수치이다 보니, 실제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들을 포함하면 사망자 수는 훨씬 늘어난다. 정황 증거는 없지만 미·영군의 바그다드 진격 3시간 만에 이라크군 2천~3천명이 몰살했을 거란 얘기도 들린다. ‘이라크 자유’ 특명이란 이름의 대가치고는 결과가 너무 혹독하다. 무해·청결한 스마트폭탄 1991년 침략에 이어 이번에도 자로 잰 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한 ‘외과수술식’으로 목표물만을 도려낸다는 스마트폭탄의 예찬론이 터져나온다. 살인 기술을 너무 과신했던 탓인지 10% 확률도 못 미쳤던 그때 그 시절을 접고, 그래도 이번엔 정밀 폭격이 68%로 향상됐다는 분석이다. 1만5000개의 정밀 유도체, 7500개의 비유도탄, 750개의 순항 미사일을 이라크 상공에 뿌려 목표물에 제대로 맞았던 비율이라 한다. 물론 영리한 폭탄이 잠시 눈이 멀거나 멍청해져 오폭으로 양민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면 군사용어로 불가피한 ‘인접 손상’에 해당한다. 살인의 첨단기술은 침략 전쟁의 잔혹함을 은폐하려는 호전론자들의 심리전적 수사들과 공존한다. 봐라, 군사적 목표에 대한 정밀 폭격은 살인과 무관하다. 폭격은 있어도 피흘려 죽는 사람들은 없다. 그래서, 스마트 폭탄은 무해하고 청결하다. 우리는 더블클릭으로 목표물이 정확하게 제거되길 원할 뿐이다. 첨단 폭탄의 인류애적 가치를 신뢰하라. 자못 현실은 다르다. 두 나라 군대를 지원하는 ‘우호적 폭격’은 간혹 같은 편을 적으로 오인해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언론에 발표되는 정밀 폭격은 전투 현장에선 무차별 ‘집중 폭격’으로 돌변해, 불행하게도 인접 손상치가 예상 목표물 파괴를 훨씬 웃돈다. 폭탄의 정밀함이 종종 다른 목적에 쓰이기도 한다. 영리한 폭탄들은 적의 목표물보다 연일 이라크와 아랍 민간 언론사들을 정밀하고 정확하게 날려보낸다. 미 국방부의 전시 동행취재 프로그램에 가담하지 않던 수많은 국제 기자들의 숙소가 영리한 폭탄의 사정권이 되긴 매일반이다. 펜타곤의 심리전을 방해하면 누구든 정조준의 대상이다. 살인기술 확률 시험된 제물 역시 영리한 것은 폭탄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매파들이었다. 10여년이 흘러 살인 기술이 첨단으로 바뀌어도 사람 죽이는 폭탄은 아둔하다. 저궤도 위성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온갖 첨단 장비로 무장해도 오인 폭격과 사고는 줄을 잇는다. 아둔한 첨단 폭탄을 위해 예나 지금이나 무방비의 선량한 양민들이 정밀 폭격의 오차를 줄이는 피의 재물이 돼주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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