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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 통신위의 ‘밀실행정’

미 연방 통신위의 ‘밀실행정’ [한겨레]2003-03-05 02판 20면 1365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한 미국 시민단체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0년까지 6년 동안 언론 독점체들의 향응 제공으로 약 1460명의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직원들이 뻑적지근한 여행을 즐겼다. 97년부터 4년 동안에는 315명의 의회 직원들이 비슷한 대접을 받았고, 93년부터 7년간에 걸쳐 민주·공화 양당 정치인을 상대로 약 7500만달러의 정치자금이 건네졌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거대 독점들의 갖은 로비에 구린 연방통신위원회도 답례할 필요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대적인 통신미디어시장 독점을 용인하는 소유권 법안 검토가 다시 시작됐다.마이클 파월 위원장에겐 지금이 단연 기회다. 이번에 그는 아예 시장경쟁의 최소한의 버팀목이던 언론과 통신에 대한 각종 독점규제 법안들까지 다 내던질 꿈으로 한껏 부풀어 있다. 절차상으로도 파월을 포함해 위원회 다수를 형성하는 공화계 위원들이 일사천리로 규제의 빗장을 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부반란이 벌어졌다. 지난달 시작된 통신시장 규제에 관한 위원회 투표에서 한 공화당 계열 위원이 제동을 걸었다. 반란의 주역인 케빈 마틴은 민주당 계열 위원 둘과 합세해 독점 전화업체들이 지역 경쟁사들에 저가로 전화 회선을 나눠 써야 한다는 독점 규제안을 지켰다. 이날 결정된 사안들로 봐선 독점체들이 소유한 광대역 전송망의 경쟁사 공유 의무 등에 대한 조항이 없어지면서 시장 독점을 더욱 키울 상황이 됐지만, 어찌됐건 그의 반란은 신선했다. 시장 합병의 기회만 노리며 이제까지 통신위원회의 활동에 어물쩍 침묵하던 거대 언론들이 마틴 변수만은 참을 수가 없었던지 연신 호들갑이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전화회사들의 주식이 바닥을 치고, 파월의 시장철학에 구멍이 생겼다고 법석을 떤다. 아쉽지만 사태는 쉽게 종결됐다. 마틴은 지난달 27일 통신위원회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목으로 마련한 공청회에서 파월의 열렬한 팬이 되어 돌아왔다. 안팎의 압력에 의해 반항아 마틴이 일거에 순화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틴의 일화는 미국 통신·언론 정책의 ‘밀실 행정’이 빚어낸 해프닝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공격적 로비, 이에 휘둘리는 위원들에 의해 이뤄지는 뒷거래, 의도된 사전 여론몰이, 그리고 비민주적 정책 결정 등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방송통신 정책의 미래가 갈리는 사안을 다루면서도 연방통신위원회가 단 한번의 공청회만을 열어 시민들에게 고작 한 시간의 발언시간 배당을 했다니 그 독단에 혀를 찰 노릇이다. 그 배짱이 결함투성이의 미국식 디지털 방송을 밀어붙이는 우리 정통부 담당 관리들과 어쩌면 그리도 빼닮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기왕에 예견은 됐지만 장차 줄줄이 처리될 미국내 독점관련 최소규제 법안들의 운명이 점점 어두워 보인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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