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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제 항거할 때다

정보통제 항거할 때다 [한겨레]2003-03-19 01판 20면 1341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미쳐가는 세상 속에서 똑바로 정신 잡긴 힘들지/ 넘쳐나는 폭력 증오 적의/ 계속되는 살인 낮과 밤 가리지 않네/ 이제 우리가 비폭력 투쟁으로 맞설 때야.”3인조 랩 그룹 ‘비스티 보이즈’가 부른 노래의 일부 내용이다. 광기로 뒤덮인 현실에 대한 절규가 묻어난다. 미국 바깥에선 ‘집단 살인’의 현장을 텔레비전의 볼거리로 삼으려 하고, 안에서는 끊임없는 여론 공작과 시민 감시가 일상화한다. 위성의 눈을 통해 사람의 걷는 동작만 보고 신원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중이라 한다. 무심코 편도 비행기표를, 그것도 현금으로 구입한 여행객은 탑승길에 오르기보단 십중팔구 테러분자의 혐의를 받아 각종 고초를 겪는 시절이 온다. 기술이 한 국가의 보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다. 지난달 미국 상원에 의해 예산 집행이 잠정 저지됐던 국방부의 ‘종합정보인지’(TIA) 프로그램은 그 대표적 경우다. 개인 지문, 금융, 의료, 전화, 교육, 전자우편, 도서관, 신용카드, 여행, 운전, 총기 구입, 인터넷 이용 등 개인의 기록들을 한데 모아 분석해 모든 잠재적 위협 인자의 행동을 앞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달 들어 미국 항공국이 밀고 델타 항공사가 시범 운영 중인 ‘컴퓨터지원 탑승객 사전적격심사 시스템’(CAPPS II)도 마찬가지다. 패턴 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해 모든 탑승객들의 신상, 재정, 위험 평가 기록들을 수집·분석해 이를 토대로 세 분류로 나누고 자체 판단한 위험 인물들의 탑승을 미리 막겠다는 발상이다. 두 프로그램에는 정보 수집의 경로나 방식, 개인 신원 정보 저장의 기간 등이 불명료하다. 가상 위험 요인의 판단 또한 군수업체 록히드 등이 제작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기술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러다 보니 애꿎은 사람까지 테러분자로 몰릴 인권 침해, 정부에 의한 정보 오남용, 개인 사생활 침해 등의 확률이 높아진다. 이유조차 부정확한 우리 교육부의 ‘교육행정정보 시스템’(NEIS)이 이름만 ‘나이스’지 속은 ‘네트워크 에이즈’라는 조롱이 흘러나오는 것은 그 도입의 부작용이 효율성 논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의 사적 정보를 통합 관리하려는 의도는 합리성의 명목을 내세운 상시적 통제욕 외엔 없다. 이제 바깥의 살육이 시작되면 미국내 감시와 통제 기제들이 점점 살기등등해질 것이다. 며칠 전 로터스 프로그램의 개발자이자 인터넷 시민운동단체 전자프런티어재단의 설립자인 미첼 케이포가 종합정보인지 프로그램에 관계하는 한 프로그램 개발 회사의 이사진에서 자진 사퇴한 일이 있었다. 개인적 이유보단 정부에 의해 추진되는 감시 프로그램 개발과 통제 논리를 반대하는 용단으로 보인다. 이런 항거가 절실한 때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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