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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자인] 배니버 부시의 하이퍼텍스트 이후

배니버 부시의 하이퍼텍스트 이후 하이퍼텍스트의 역사적 가치 하이퍼텍스트의 기획은 어떻게 나왔을까? 좀 지루한 연보를 끄집어내보자. 1945년에 미국 과학연구개발국 국장인 배니버 부시(Vannaevar Bush)는 미멕스(memex)란 기계 장치에 대 한 유명한 논문을 썼다. 그의 문제 의식은 엄청나게 증가하는 정보에 대한 통제력의 부재로 부터 비롯되었다. 부시가 보기에 인간의 경험은 놀랄만치 확장되고 있는 반면에, 현실에서 중요한 정보들은 쉽게 유실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는 미멕스를 통해 정보를 서핑 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보 압축, 새로운 감각 인터페이스, 하이퍼미디어 시스템 등의 다 양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물론 실현되지 못한 이 장치의 핵심은 인간 정신을 확장하는 도서 관 혹은 링크의 기능이었다. 부시의 청사진은 68년에 이르러 더글러스 잉겔바트(Douglas Engelbart)에 의해 만들어진 확장(AUGMENT)이란 시스템으로 현실화한다. 동시에 그의 '확장' 개념은 인간의 모션을 컴퓨터에 연결시키는 가상현실(VR)의 기초를 이룬다. 특히, 60 년대 '하이퍼텍스트'란 용어를 최초로 고안한 테오도르 H. 넬슨(Theodor H. Nelson)은 자신 의 재너두(Xanadu)란 시스템의 기획을 통해서 앞서 두 사람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발 전시켰다. 어쨌거나 부시의 미멕스는 이른바 개인의 정신적 도서관이지만, 이는 현대의 다양한 정보 형태, 즉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클립 등의 사이버공간이 가지고 있는 멀티미디어 요소와 결합하여 확장된 디지털 문서고를 지칭한다. 이미 하이퍼텍스트는 단지 문서들간의 상호 링 크뿐만 아니라 보다 폭넓은 하이퍼미디어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터넷이란 거대한 사고의 도관(conduit)을 통해 이미 이러한 의식 확장에 대한 과학자들의 염원을 일상적으로 쉽게 체험하며 살고 있다.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혹은 개별 네티즌에 의해 구성된 웹상의 하이퍼텍스트 구조는 이용자들의 새로운 의식적 체험을 불러 왔다. 하이퍼텍스트는 이전과 다른 분명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설계물이다. 이는 타인의 의 식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그리고 무한히 열려있는 텍스트들의 연결 구조를 지칭한다. 하이 퍼텍스트의 특성은 고도로 상호작용적이며,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공간적 이동의 자 유로운 능력을 토대로 한다. 이 글은 45년 배니버 부시가 인간의식의 확장으로서 바라보았 던 하이퍼텍스트의 가치를 현재의 인터넷 구조 속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으며, 그 의미들 이 현재에 이르러 어떤 식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종합적 사고, 그러나 공허한 링크, 링크.... 우리는 이미 컴퓨터를 사용하여 문서를 작성하면서 사고와 글쓰기의 변화를 겪고 있다. 스크린상의 따붙이기와 즉각적인 수정 등을 통해 반사적인 글쓰기에 쉽게 길들여진다는 지 적도 나온다. 마찬가지로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먼저 사고의 변화를 겪는다. 특 히 사물을 모아서 보는,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프로그래머는 전체의 얼개를 고려하고 프레임을 따진다. 각각의 프레임은 연결 문서들을 고려하고, 그것이 아이콘이든 텍 스트 형식이든 전체 화면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연결 고리를 항상 만들어 놓는다. 인터페이스는 하이퍼텍스트와 하나가 된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불분명하면, 하이퍼텍스 트의 기능은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쉽게 웹서퍼(web-surfers)를 미아로 만든다. 인터페이 스가 분명해질수록 하이퍼텍스트는 그 기능을 적절히 수행한다. 다시 말해 인덱스 얼개와 하위 페이지의 구조 전체가 하이퍼텍스트의 기능 안에서 하나의 종합적인 순환 구조가 된 다. 웹서퍼가 미아가 되지 않도록 고려하면서, 프로그래머나 웹마스터는 사이트의 얼개를 짠 다. 그들이 원하는 사고나 의식의 완결된 구조가 하이퍼텍스트의 기능을 통해 총괄된다. 하 이퍼텍스트는 이처럼 사물을 보는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사고를 기른다. 분석적 사고가 사물 을 떼어놓고 보는 반면, 종합적 사고는 사물을 모아 관찰한다. 이제 우리는 멀티미디어, 하 이퍼텍스트를 통해 상호 링크와 결합의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의식을 표현하고 강화한다. 한편 하나의 사이트 안에 존재하는 하이퍼링크들과 문서들은 항상 자신 내부의 연결 페이 지들만을 지칭하거나 연결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이퍼링크는 웹마스 터에게 상세한 참조와 설명을 위해 혹은 이용자의 또 다른 서핑을 위해 외부의 링크 페이지 를 요구한다. 물론 부시가 바라보았던 하이퍼텍스트의 진정 열려진 구조는 궁극적으로 이에 기반한다. 자신의 사이트를 벗어나 새로운 외부의 링크 페이지를 연결하는 것은 인간 의식 의 새로운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인터넷 이용자의 폭발적 증가와 연결된 노드수의 증가는 인간 의식의 확장을 극도로 향상시켰다. 링크에 의한 정보 탐색과 끊임없는 링크의 연쇄는 하이퍼텍스트의 궁극적 모델로 평가받을만하다. 그런데, 웹마스터와 달리 웹서퍼는 종합적인 사고보다는 분열적인 사고 과정을 겪는다. 끊 임없는 참조와 상호 링크는 자신이 찾아 헤매는 정보들의 질(qualities)에 의문을 제기하게 끔 만든다. 하나의 단어나 문장은 다른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되고, 이 단어나 문장은 또 다른 의미를 찾아 떠돈다. 어떤 때는 중간에 지나쳤던 정박지에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열려진 하이퍼텍스트의 끝없는 상호 참조의 구조로 말미암아, 사용자가 찾고자하는 의미는 지속해서 다른 페이지나 링크로 미끄러진다(incessant sliding of meaning). 무엇이 진정 참 다운 정보인지 혹은 진정 확신할 수 있는 정보인지에 대한 분별력이 흐트러진다. 수많은 링 크와 참조는 결국 네트의 항해자들에게 현기증과 멀미를 선사한다. 일면 인터넷이 마련한 하이퍼텍스트적 구조가 사고의 확장을 위한 틀로 기능할 것이란 예측과 달리, 그 안에는 궁 극적 지식없는 단지 끊임없는 정보의 연결된 흐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터넷 정보의 풍 요와 더불어 하이퍼텍스트의 현기증과 궁극적 의미의 부재가 더욱 강화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정보의 풍요가 찾고자하는 지식을 거저 주는 것은 절대 아니며, 이런 상황에서 사이버링크들의 확대/장은 웹서퍼에게 멀미만을 안겨줄 수 있다. 열린 하이퍼텍스트와 그 적들 칼 포퍼란 사회학자가 열려있고 개방되어 있는 사회를 가로막는 적들에 대해 침튀기며 비 판했던 것처럼, 비슷하게도 개방적 하이퍼텍스트 구조를 가로막는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인 기법들이 존재한다. 이는 앞서 본 것처럼 하이퍼텍스트가 성장하면서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 에 없는 상호 링크의 의미 상실의 증상과 함께, 새롭게 하이퍼텍스트의 열린 가능성을 막는 징후들이다. 1. 자동 이동과 팝업 자동 이동과 팝업(popup) 메뉴는 웹서퍼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음의 페이지로 연결시켜주 거나 새로운 창을 띄우는 간단한 기법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웹서퍼 자신의 의도된 검색의 경로를 가정하지만, 자동 이동과 팝업은 말 그대로 페이지 관리자의 강제적 권한에 속한다. 원하지 않던 원하든간에 새로운 페이지를 보거나 다른 창들과 대면해야 한다. 특히 연속적 인 팝업은 하이퍼링크를 향한 이용자의 열망을 무력화시킨다. 또 다른 연결된 링크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아예 한 곳에 매어놓는 부비트랩과 같은 팝업된 창들도 존재한다. 시스템의 속도를 저하시키고, 결국엔 창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는 과정을 통해, 하이퍼텍스트의 열려진 구조를 향한 서핑 자체가 중도에서 쉽사리 포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이동과 팝업들 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그 심각함은 배가된다.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의 링크와 그 곳에서 맞닥뜨리는 끊임없는 창들의 쇄도는 디지털 텍스트가 지닌 개방성에 역행한다. 2. 위장된 링크들 웹에서 하이퍼텍스트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화면에서 마우스 커서의 표시가 화살표에서 손 가락으로 바뀜을 뜻한다. 웹서퍼가 원하는 정보에 대한 링크 페이지는 보통 텍스트, 아이콘, 그림 등의 기호적 인터페이스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를 클릭하여 원하는 정보를 캐어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하이퍼 기능의 상식을 교묘히 위장한 지뢰들이 산재하고 있 다. 하이퍼링크를 교묘히 위장하여 다른 계열의 링크와 헷갈리게 한 후에, 서퍼가 원하는 정 보로 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법이다. 주로 상업적 동기 에 의해 출발하는 위장된 링크들은 서퍼가 원하는 링크의 방향을 철저히 막고 엉뚱한 곳으 로 유도한다. 최근 웹서퍼들은 링크를 세심히 두드려보고 누르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위 장된 지뢰를 밟지않기 위해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주소를 탐색하는 노력도 벌어진다. 이 들 위장 링크는 하이퍼텍스트의 개방성을 심각히 훼손한다. 곳곳마다 쳐진 함정들이 열려진 하이퍼텍스트의 자유로운 서핑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이러한 함정들에 걸리면, 자동이동과 팝업이 동시에 합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하이퍼텍스트의 개방성 에 도전하는 위험한 적이다. 3. 모핑의 해체 문화 모핑(morphing)은 새로운 디지털 문화 현상이다. 모핑 안에서 변화하는 이미지들의 연쇄 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 속에 이어진다. 주로 모핑의 기법은 광고나 뮤직비디오에서 흔히 관 찰할 수 있다. 일례로, 얼굴형이란 공통의 일관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백인의 얼굴이 흑인이 되고, 남자가 여자로 변하고, 동물 면상이 인간 얼굴이 되는 등의 모핑의 과정을 바라본다. 서로 전혀 닮을 것 같지 않은 낯선 얼굴들의 이미지 흐름이 이상하게도 하나의 틀 안에서 동일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반면 하이퍼텍스트는 사고의 연관성과 아이콘의 연상 작용 을 중시한다. 하나의 개념에 다른 참조된 개념이 링크되거나 추상적 아이콘에 그에 연상되 는 내용이 링크되는 경우가 그렇다. 모핑은 이런 하이퍼텍스트의 원리를 이용한다. 그러나, 연결된 이미지의 흐름인 모핑 과정은 서로 상관없는 것들도 연결시켜 닮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디지털의 이미지 조작 능력은 무관한 화면들을 링크하는 모핑 과정 에서 극대화된다. 다시 말해 모핑의 과정 안에 놓여있는 각 이미지들간의 하이퍼링크 기능 은 상호 연관이 없는 개념이나 텍스트, 이미지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묶는다. 이는 하이퍼텍 스트가 마련한 끊임없는 링크들의 공허함만큼이나, 자의적인 링크 과정들에 의한 놀이이다. 대개 모핑하는 이미지들간의 하이퍼링크는 궁극적인 인과관계나 설명관계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다. 디렉터가 원하면 무엇이든 모핑의 연관된 이미지의 관계로 편입된다. 예컨대, 인간 의 얼굴과 돼지 머리가 연결될 수 있다. 모핑은 이를 용납한다. 마치 이는 사람 얼굴의 아이 콘을 클릭했는데, 돼지 엉덩이가 화면에 뜨는 것과 유사한 관계이다. 그만큼 자의적인 관계 를 상정한다. 물론 모핑은 하이퍼텍스트 구조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시각적 상상력의 기법이 다. 그러나, 인간 얼굴과 돼지 면상간의 링크를 무리없이 성립시키는 모핑의 착시 원리는 상 식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지식의 탐구 과정과 무관하다. 무엇이나 모핑 과정에 연결될 수 있고 무엇이나 상호 연관의 지위를 갖는다면 객관적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모핑의 하이퍼 링크적 상상력이 문제시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4. 플래쉬가 막는 것 하이퍼텍스트의 종합적 사고는 플래쉬(Flash) 프로그램에 와서 극대화한다. 무엇보다도 플 래쉬는 한 사이트 전체를 완결된 구조로 본다. 다른 배열에 비해 사이트 내용 중 일부를 첨 가하거나 빼려할 때 구조 전체를 들쑤셔야 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베이스의 지속적 업데 이트를 필요로 하는 페이지의 경우는 플래쉬가 적합하지 않다. 물론 방문자에게 플래쉬가 주는 세련된 페이지의 구성력은 로딩 시간의 괴로움도 감내하게끔 한다. 그러나, 페이지 내 에서 완결된 구조는 외부와 연결된 개방성을 떨어뜨린다. 플래쉬는 사이트 내부 페이지들간 의 독립적인 구조를 완벽하게 재현하거나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디자인 설계를 풍부 하게 만드는 반면에, 외부와의 하이퍼 연결 고리는 상대적이고 부차적인 지위에 머무르게 했다. 웹서퍼들이 대개 플래쉬로 만든 사이트에 들어가면 그 자체의 내부 프레임의 서핑에 만 몰두하는 경향은 이를 적절히 설명한다. 이는 하이퍼텍스트가 지향했던 의식의 확장이라 는 개방 지향성과 거리가 먼 사이트 구성의 논리다. 열려있는 하이퍼텍스트를 위하여 이 글의 기본 시각은 부시가 본 인간 의식의 확장으로서의 하이퍼텍스트 개념에 기대어 이 루어졌다. 크게 그 방향은 첫째, 하이퍼텍스트가 가진 필연적 부산물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그 자신의 개방성에 불구하고 링크된 텍스트들 상호간 의미의 빈곤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점, 둘째, 무엇보다도 최근의 하이퍼텍스트 테크닉의 일부로서, 그 자체의 개방성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 하이퍼텍스트의 기능은 인간 의식의 확장보다는 의식을 쓰레기더 미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속에서 기업은 상업적 가치를 앞세워 하이퍼텍스트의 개방적 가치를 악용하여 웹서퍼들을 덫에 걸려들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디지털 디자인이나 사이 버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표현되는 모핑의 과정과 플래쉬조차 논리적으로 무관한 것들 의 하이퍼링크를 강화하고, 무의식적으로 하이퍼텍스트의 개방적 넘나듦을 가로막는데 일조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링크와 하이퍼 기능을 통해 막힘없이 네트를 흘러다니면 서도, 거대한 인간 의식의 확장으로서 네트라는 도관을 통해 궁극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발 견하고 참조할 수 있는 부시의 미멕스 프로젝트는 제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웹디자인, 200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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