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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대학원신문]: 엔트로피의 전자적 파장을 높여라!

엔트로피의 전자적 파장을 높여라! 이화여대 대학원신문 (98년 12월 게재) 이광석 네트의 디지털 정보가 여러 개의 조각들(packets)로 쪼개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소지를 찾아다니다 결국 하나의 정보로 합쳐지듯, 광통신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정치적 주장과 논쟁의 경합(flame wars)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전자게시판에서, 뉴스그룹에서, 채팅공간에서 이합집산하며 꾸물꾸물 전자조직을 구성한다. 물리적/물질적 공간이 주던 지역적 한계는, 전자공간의 네트워크적 속성으로 말미암아 그 틈새가 메워지고, 그 외연을 비트로 확장시킨다. 전자네트워크로 인해 전세계의 내노라하는 비정부기구들(NGOs)의 활동 폭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범지구적으로 집단과 집단, 조직과 조직의 연대와 연합의 활로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권력과 자본이 새롭게 직면한 문제는 이같은 네트워크형 조직들을 재흡수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NGOs의 힘을 확장하는 비트적 공간이란 바로 이 굳건한 현실에서의(on the ground) 투쟁을 대체하기 보다는, 현실의 투쟁을 가시화하고 이를 엮어내는 전자적 격자인 셈이다. 대 항 집단들이 시도하는 아래로부터의 횡단적 연결이, 그 수위에서 ''가상코뮨''(virtual commune)이나 붉은 기가 휘날리는 ''제 5인터내셔널''(fifth international)의 이상적 전망으로부터, 마을공동체의 신화에 사로잡힌 비트적 연장물, 즉 가상공동체라는 조금은 철부지한 영토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이와 같은 미래적 전망은 실천 주체들이 가늠하는 구체적 현실과의 목적의식적 결합 속에서만 가능하다. 어쨌거나 네트 문화정치의 미래 기획에 있어서 이 모든 동적인 실천의 움직임들이 현재 정보자본주의를 배회하는 유령임에는 분명하다. 네트워크 공간에 대한 디지털적 해석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수많은 그룹들이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극소전자혁명에 의한 ''비트뱅''(Bit-bang)의 파고가 좀 더 특이하게 네트행 동주의에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로는 맨 먼저 사빠띠스따의 정보 게릴라전을 꼽을 수 있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은 지구촌의 이름없는 남부 멕시코 치아빠스(Chiapas) 지역의 라깡도나(Lacandona) 정글에서 나와, 최근 20여년간 지속된 멕시코 정부와 해외 다국적자본의 억압과 침탈에 분노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의 유명세에는 매체에 비친 부사령관 마르꼬스의 인텔리적 카르스마도 한몫 했으나, 기실 그 근저에는 기술적으로 글로벌 투쟁의 촉매제가 되었던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수많은 정보 네트워크의 확장 능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지배력에 대한 국지적인 물리적 저항과 실천 활동과 함께, 전세계적인 전자 게릴라전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그들은 지배의 약호를 교란하는 각 집단들의 해방적 디지털 약호들이 미시적 정치 투쟁의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고, 이 흩어진 해방의 약호들을 엮을 수 있는 힘은 네트를 통해 거둘 수 있음을 우리 모두에게 인지시켰다. 즉 그들은 조직화의 주요 매체로써 인터넷이 갖는 속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현실의 게릴라전과 말과 이미지의 정보전을 동시에 병행하는 방법을 시사했던 것이다. 이것이 한 이름 모르는 치아빠스 지역을 보편적인 실천 사례로써 짚어보게 만드는 근거이다. 두 번째 사례로써 버클리 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정치토론을 통해 만들어낸 배드 서브젝츠(Bad Subjects)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지식인들이 전자공간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적절한 실천 지침과, 21세기 지식인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BS는 새로운 사이버영토가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를 제거하기 보다 실천의 엘리트 영역으로 남아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온라인 실천을 통해 유용한 정치 조직체 건설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현재 또 다른 좌파적 냉소주의 혹은 주변화에 다름 아니라고 얘기한다. 현재 사이버공간이 비록 이윤의 장으로 활용된다 하더라도, 현재 진행형의 새로운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이기에, 반자본주의적 경제 공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이버공간에서의 정치적 잠재력의 추동이 최종 목표가 아니며, 그 공간을 현실세계의 사회변화를 위한 추진력으로서 활용하는 것을 그 궁극에 둔다. 이들은 현재 인터넷 웹상의 잡지, 즉 웹진을 40호까지 발행하면서, 신좌파적 기획, 다양한 의사소통로, 체계적인 웹진 발행 등등으로 인해, 그리고 사이버공간에서 대중적이고 진보적인 입지를 확보한 그룹이라는 점에서, 어느 웹진 보다도 중요한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 운동의 새로운 징후로 해커 전위대와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을 들고자 한다. 이들은 20세기의 막바지에 등장한 새로운 실천 부류들이다. 또한 어느 개인 혹은 단체들보다도 훨씬 기술적 이용에 능숙한 전문가 부류들이다. 10대를 중심으로 한 해커들은 그들 자신의 윤리, 즉 컴퓨터 접근권, 정보의 공개성, 권력의 분권화 등 그 진보적 측면을 지닌다. 문제는 이같은 해커들의 아나키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본성을 그들의 개별성과 계급적 특권에서 분리하여 사회적 저항으로 접합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편 권력에 의한 해커의 억압적 조건을 간파한 일부 지식인들이 전자 시민단체를 결성하게된 계기는, 1990년 미국에서의 일명 ''선데블 작전''(Operation Sun Devil)이라 불리는 디지털 지하세계에 대한 대검거 작전이었다. 이들은 해커들에 대한 정부의 과잉 검거, 수색과 압수가 부당하게 인권과 표현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바로 EFF는 이같은 해커사냥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시민자유론자들의 단체이다. 예컨대 검거 중 보여주었던, 컴퓨터장비와 데이터 압류, 출판 등의 표현물에 대한 제한, 부당한 폭력 등에 맞서, 그들은 기금 모금, 법적 행동과 후원 등으로 정세를 반전시켰다. 이같은 정부의 독단적, 억압적, 비합의적 월권에 반응하여, 네티즌들을 보호하는데 사법적, 제도적 투쟁을 거쳤던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다. 특히 그 구성원들의 명망성으로 이름을 날리는 EFF는 암호화, 표현의 자유 등의 주장을 통해 전자 시민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실정에서 보면 최근 도청, 감시카메라, 전자주민카드 등 시민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쟁점화하는데 요구되어지는 전문 시민단체들이 아쉽다고 볼 때, 이들의 사안별 공론화와 일정 부분 정책에 현실화시키는 입안 능력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눈여겨볼 점이 많다.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이같은 실험들의 밑바닥 정서에는 단수적 욕망이 자유롭게 발현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투쟁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실험은 다양한 공간에서 소수적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아 권력의 정보에 충돌시키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지배적인 스펙터클에 대한 ''교란'', ''단절'', ''중단'', ''전복''이다. 이는 공학적 저항이자, 소위 정보이론에서 얘기하는 엔트로피(entropy)의 요소들이다. 섀논-위버(Shannon-Weaver) 송수신 모델에 기초해보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엔트로피가 크면 클수록 전적으로 혼동된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증대한다. 송/수신 모델에서 송신자에서 수신자로 이르는 정보 전달과정이 위계적 질서 혹은 초코드화(overcoding) 과정이라면, 이를 흩뜨리는 파장이 엔트로피이다. 그렇다면 엔트로피는 정보/권력에 대한 다양한 도전적 소음/힘이다. 소음/힘이 증가할수록 정보/권력은 증가하나, 그것이 어느 임계 수준을 넘어버리면 정보/권력은 ''교란''에서 ''단절''과 ''중단''을 거쳐 정보/권력 모델 자체가 ''전복''되어 버린다. 소음/힘은 분자적 활동의 집합화이자 반(反)정보이며, 정보/권력은 대중매체 등에서 나오는 초코드들이다. 권력의 초코드화를 다양한 소음/힘들의 연합으로 전복하는 것이 이들 대안 기획의 핵심이다. 이제 90년대 새로운 엔트로피의 생성 가능성은 인터넷이 마련하고 있다. 인터넷은 다양한 소음/힘들의 흐름을 거대한 저항의 파장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열광하기 보다는 현실에 정초한 새로운 네트 저항 실험들의 발굴 작업과 동시에 인터넷 정치의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21세기 정치 지형속에서 엔트로피의 집단적 표현 형식에 대한 새로운 징후를 전자 저항 실험들 속에서 읽어내어 이론화하는 것과 이들의 집합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에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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