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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신뢰 상실의 인터넷

신뢰 상실의 인터넷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언제부터인가 남 속이는 맛에 쾌재를 부르며 사는 세상이 돼버렸다. 날마다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벌이는 쇼 프로에서는 서로들 속고 속이며 마냥 즐거워한다. 개인의 사생 활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지만 감쪽같이 속이는 맛에 시청자도 덩달아 쾌락을 느끼는 몰래 카메라, 정말 진짜를 찾기 위해 꾸며진 수많은 가짜들의 배역과 연막들, 방청객과 함께 짜고 상대팀을 속이기위한 온갖 거짓말들. 어디 쇼프로뿐인가. 오늘 검찰에 출두하며 목에 핏대세 우며 모르쇠로 일관하던 수많은 비리 연루자들이 내일이면 들통날 사실을 손바닥으로 하늘 을 가리며 국민들을 속이는 세상이 아니던가. 가만보면 인터넷도 사람 드나드는 곳이라 자연히 남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필 자는 인터넷에서 사기 구걸 행각으로 돈을 모으는 등 남 등치는 신종 파렴치범들에는 별 관 심없다. 그보다는 현실처럼 속고 속이는 문화에 적응해가는 네티즌 문화의 전반적 경향에 대해 우려한다. 요즘 누구든 스팸메일로 골머리를 앓는다. 어떤 이는 스팸메일을 견디다 못해 자신의 메 일계정을 폭파시키는 극단적 방법을 쓴다. 어떻게 알고들 날아오는지 처음에는 수신거부를 일일이 하려고 시도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광고성 편지들에 나중엔 포기하고 그저 지우는데 급급해져간다. 여기에도 종종 속임수가 등장한다. 마치 아는 사람의 글처럼 스팸메일의 제목 을 일반편지로 둔갑시키거나 수신거부도 형식적으로 만들어 이도 기능이 불가능하게 만들기 일쑤다. 그도 습관이 되면 수신자들 또한 능숙해져 제목만 봐도 대번에 거짓 광고편지임을 눈치채기 마련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페이지 한번 잘못 들어가 끝없이 자동으로 열리는 새 윈도우 창들로 두들겨 맞는 일도 다반사다. 호기심에 접속 속도 불량의 컴퓨터로 포르노 사이트를 열람하 려다 이런 경우가 생기면 십중팔구 시스템이 다운되고 혹 누구라도 지켜본다면 본의아니게 큰 낭패를 맛본다. 겉보기에 멀쩡하다고 의심없이 네트를 거닐다가 뒤통수를 맞거나 누군가 의 보이지않는 촉수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요즘엔 그저 지뢰밭을 거닐 듯 의심하며 슬금슬 금 다녀야 속지 않고 시간 절약하며 공간이동할 수 있다. 초심자들은 두 번 생각하고 클릭 하는 안전 요령을 인터넷에서 터득해야하는 시대가 왔다. 인터넷의 신뢰 상실의 주범은 주로 경제 영역에서 비롯한다. 교묘한 상술과 여기저기 숨 어서 속일 태세만 취하는 능란한 장사치들의 거짓 사탕발림에 순진한 네티즌들은 대번에 걸 려든다. 이들의 속이는 강도가 높아지고 수단이 교묘해질수록 네티즌들의 마우스는 수시로 멈칫거린다. 여긴 무슨 함정이 없을까, 이 광고 배너를 누르면 창이 몇 개나 연거푸 떠 시스 템을 괴롭힐까, 이 편지 제목은 과연 친구로부터 온 것일까 광고메일일까, 이 회사의 경품잔 치에 응모하는 대신 내 개인 정보만 홀랑 빼주는 것이 아닐까, 검색엔진의 결과에 나온 주 소 결과를 클릭했는데 왜 얄궂게 관계없는 상업 사이트로 자동 연결되는 조화는 뭘까 등등. 주춤거림이 늘고있다는 것은 의심이 많아지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네트에서 약아간다는 얘 기다. 이렇게 속는 횟수가 늘고 속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스스로의 판단에서도 진실과 거짓 의 경계가 흐려지고, 종국에는 진실의 가치마저 등급 보류된다. 나중엔 진실도 거짓처럼, 거 짓도 진실처럼 헷갈리는 것이다. 이렇듯 최근 네트에 불순한 속임의 문화가 번성하는 반면, 우리에게 선의의 속임수가 인 터넷 문화 발전의 촉매제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은 현실보다 속임이 자유롭다. 네트는 개개인에게 자신의 외모, 신분, 성, 나이 등을 덮어 감춘 채 자유롭게 상대와 커뮤니케이션 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이런 속임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한 사회가 약자에게 주는 불평등의 관습과 제약을 네트의 특성을 이용해 타인에게 속일 수 있고 풀 수 있다면 이는 분명 그 사회에 긍정적인 배설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면서 동시에 진실의 자리를 대신했던 권위를 무너뜨린다. 이 둘의 경계짓기로 기득권을 누렸던 권위의 존재 가치가 점차 힘을 잃고, 하잘 것 없이 여기던 것들의 명예를 회복시킴으로써 정보간 평등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결국 속임에 있어 선의와 불순의 경계는 현실이나 온라인 모두 타인을 속이려는 목적과 이유에서 갈라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목적과 근거를 갖고 속이려드냐에 따라 약이 되 거나 독이 된다. 쉴새없이 네티즌들을 놀려먹으려는 업자들의 얄팍한 상술에서 나온 온갖 속임수들은 네트에 독이 되는 경우다. 약이 되는 네트의 기술적 장점들을 독으로 용도 변경 하는 몹쓸 짓이 늘수록 네트에서 인간끼리의 신뢰지수 또한 현실만큼 자연 감소한다. 정감 어린 비격식의 전자우편이 이젠 정말 짜증스러운 통신수단으로 느껴진다면 네트의 미래가 그만큼 팍팍해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현실적으로 스팸메일을 제거하고 네트에 활개치는 사기꾼을 단속하려는 강제력도 중요하 지만, 근원적으로 지금같은 네트의 신뢰 상실은 우리의 발디딘 현실에 기댄바 크다. 글머리 에 언급한 것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창궐하는 거짓 즐기기와 속이기가 인기를 얻어 갈수록 불순한 현실이 인터넷의 초창기 순수했던 측면을 쉽게 감염시킬 확률이 높다. 이것이 정직한 인터넷의 미래란 현실의 변화없이는 막연하고 갑갑할 수밖에 없는 이 유이며, 세계 최장의 인터넷 이용시간과 초고속 인터넷 종주국이란 보기좋은 때깔에 드리운 불안한 그늘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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