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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어울림의 문화와 소리바다

어울림의 문화와 소리바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햇수로 벌써 십년이 다 되가는 미국의 유명한 사이버문화 잡지가 하나 있다. <와이어드 Wired>란 이름의 월간지인데, 비록 우파적 기술맹신론의 냄새가 그득하지만 그래도 한 세대를 넘도록 초지일관 정보기술 실험 사례들의 발굴과 그 속에서의 문화 형성을 관찰하는 노력에 절 로 존경이 들만한 잡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십여년의 공력이 <와이어드>의 바깥세상 보는 시 야를 키웠던 모양인지 얼마전 이 잡지의 8월호 특집에 "세계의 게임수도, 서울"이란 제목으로 우리의 정보 현실이 크게 소개된 적이 있다. 속된 말로 요새 한창 '잘나가는' 우리의 대외적 이미지를 감안하면, 서울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 연결된(wired) 곳"이란 극찬을 받고, <와이어드>발행 처음으로 한국의 정보 문화를 다룬 일 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줄곧 우상향의 쾌속 곡선을 그리는 국내 경제, 한국의 정보 인프라에 대한 국제 통계 지표들의 후한 점수, 월 드컵 축구에서 보여진 우리의 강렬했던 집단 응원문화 등 최근의 매력적인 인상들이 국제적인 시선 집중의 촉매제로 기능했던 까닭이 크다. 그럼에도 기술론자들의 경전처럼 떠받들여지는 한 유명 잡지가 우리의 온라인 문화를 처음 대서특필한 점은 어쨌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와이어드>는 우리의 정보문화 성장의 동력을 인구 밀집의 장점에 의한 기간망 설치의 비용 절감 효과, 사회 정보 능력을 보강하는 게임방들의 대중화, 값싼 정보 이용료 등 지리·경제적 장점들에서도 찾지만, 다른 무엇보다 한국인의 독특한 국민성과 연관짓고 있다. 한마디로 한데 뭉치고 어울리고 사교적인 국민성이 '상호작용'(interaction)의 인터넷 문화와 궁합이 잘 맞았다 는 평가다. <와이어드>는 그 구체적인 국내 사례로 온라인 게임문화의 발전을 지적한다. 미국 과 일본 등 게임기 콘솔이 지배하는 문화와 달리 한국에서 유독 피씨(PC)가 게임의 직접적 플 랫폼이 된 이유에는, 개별적인 게임 즐기기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한데 어울리고 상호 접속하고 픈 개방된 국민성이 깔려있다는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인다. 상호 역할 분담을 통한 서열이 존 재하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의 자율적 통제가 이뤄지는 온라인 역할 게임을 통해 상호 소통하면 서 만들어나가는 문화 형식들이 우리 네티즌들간의 새로운 집단 경험을 키운다고 본다. <와이어드>는 이렇듯 우리의 독특한 온라인 문화를 부러워한다. 이른바 '정보 강국'의 설익은 외관에 비해 우리의 '친사회적'(hypersocial) 문화의 본성에 주목한다. 이 잡지의 연륜과 경험상 끊임없이 개인간 상호 소통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자율성을 키워 스스로의 규칙을 만드는 문 화적 본성이야말로 인터넷의 자유로움과 일치하는 덕목임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잡지의 특 집기사는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을 쫓다보니 정보 현실의 전체적 조망과 평가에서는 실패했다. 우리가 지닌 정보화 수준이 오직 온라인게임을 통해서만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온라인 게 임 인구 팽창, 게임의 전국민 스포츠화, 세계 초유의 온라인 게임 방송중계, 젊은이들의 자유분 방한 게임방 이용 모습 등 파편화된 이미지들로 수도 서울을 게임천국으로 만든다. 냉정하게 우리의 정보 현실을 찬찬히 살펴보기보단 이국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려 든다. 마치 상호성이나 자유로운 어울림의 온라인 문화가 우리 인터넷 정책과 현실 어디서든 투명하게 관찰될 수 있다 는 오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얼마전 불행하게도 음악파일공유 사이트인 '소리바다'가 법원의 음악복제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기술적으로 소리바다와 같이 인터넷상에서 중앙의 상급 서버나 관리자 없이도 많은 정 보들을 서로 함께 어울려 공유하는 체계를 일대일(P2P) 교환 시스템 구조라 부른다. '소리바다' 도 우리의 온라인 게임문화마냥 친사회적이고 상호 접속을 바라는 문화적 특성아래 성장했다. <와이어드>가 높이 샀던 부분은 바로 소리바다처럼 자유로운 상호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온라 인 문화에 맥락이 맞닿아 있다. 그런데, 자유로운 공유와 상호소통의 문화가 한국의 온라인 문 화의 기초라고 추켜세운 이 해외 잡지의 평가에서 그 숨통을 막는 사례들은 전혀 주의를 끌지 못했다. <와이어드>가 적어도 소리바다의 폐쇄와 같은 국내 정보 현실의 후진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우리의 온라인 문화에 그저 찬사만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지만 잡지가 국내 네티즌들의 친사회적 문화를 막는 빈곤한 우리의 정보 현실 조건을 감잡 았다면, '게임천국'이란 말보단 검열/단속 천국이란 제목으로 바꿔 달 법도 했다는 얘기다. 바다건너 남들의 좋은 평가에 젯밥을 뿌리자는 의도는 절대 없다. 외부인들의 평가를 내 식 으로 고쳐보자는 의도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긍정적 평가가 뭔지 근거를 따져 이에 부응하 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다른 이가 갖지 못한 문화적 장점을 우리가 가졌다면 이를 북 돋지는 못할망정 의도적으로 막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의 인터넷 발전이 친사 회적 어울림의 문화에서 왔다고 보는 한 외국 잡지의 평가에 한발 앞서 우리 현실이 조금이라 도 이런 견해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소리바다의 폐점 휴업은 면했을 일이어서 그렇다. (200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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