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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혁신과 창의력의 코드, 0+1

혁신과 창의력의 코드, 0+1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구체적인 작동 원리는 몰라도 디지털이 0과 1의 이진 코드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산다. 따져보면 1이 받쳐주기 전에 홀로 선 0은 '무'(nothing)의 숫자 다. 무는 부정과 없음을 지칭하기보다는 '존재'(being)의 근원을 설명하는 열린 수치다. 그래 서 혹자는 "무가 존재를 배회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즉 겉으로봐선 말 끔한 듯 보이지만 0에는 꿈틀거리는 생명의 배아들이 언제든 뻗쳐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없는 듯 해도 항상 뭔가 생성을 위해 응축되어 있는 상태가 0이다. 그래서, 0은 인 간에 의해 비실재하는 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가능태에 해당한다. 디지털의 논리는 바로 0이란 무의 가능성에 1의 현실화 조건을 덧붙여 생명을 불어넣는 일과 같다. 그렇게 보면 0은 1을 만나 구체적 화학작용을 수행하고 가능성을 실제화한다. 1 이 없이는 드러날 수 없는 가능태로서의 0은 항상 상대인 1에 의해 조건화하는 위치에 놓인 다. 이것이 1이 0을 살리는 촉매제인 연유다. 그런데, 0과 1이 그저 만난다고 만사가 형통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 여줬다. 바람직한 상황은 이 둘이 어느 하나의 힘에 무게를 두지 않으면서도 힘의 형평을 고려하여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결합할 때다. 그렇지않고 0만 감싸돌고 1을 홀대하면 디지털 현실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에 불과해진다. 반대로 1의 현실 논리로 0의 상상력을 억압하 면 디지털의 가능성은 출구를 잃는다. 보통 전자는 디지털과 기술 지상론을 유포하는데 반 해, 후자는 현실의 권력을 극대화하는 논리에 기여한다. 1이 분명 0의 현실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0이 자신만의 잘난 논리로 1을 업신여긴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0이 우위에 선 디지털 조합은 적어도 극단의 현실 무시론으로 빠진 다. '가상'에 집착하는 디지털 예찬론자들이나 중증의 기술결정론자들이 대체로 이런 조합을 즐긴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은 그만의 고유한 논리가 있기에 현실에 의한 개입과 간섭은 부 질없다거나 구질구질한 현실과 다른 가상의 디지털 낙원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부류들이 다. 이러한 0과 1의 쌍에는 디지털이 초래할 정보 불평등, 소외, 감시 등 구체적 현실의 조 건들을 전혀 볼 수 없다. 이 경우엔 끊임없이 0을 뒤흔들어 1이 그 필수이자 전제 조건임을 상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지금까지 디지털 현실의 삐걱거리는 문제들은 대개 0의 가능성을 심하게 억압하는 1의 월권에서 비롯했다. 현실의 권력은 0을 항상 현실의 반영처럼 만들기를 원했다. 거대한 복제기계인 네트에서 성장하는 자율적인 정보공유의 흐름을 구태의연한 저작법을 가지고 통 제하려는 욕구는 대표적인 1의 권력적 속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애초부터 1의 짝인 0의 무 한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만들어진 디지털 인공물은 당연 김빠진 맥주처럼 생동 감을 잃는다. 여러 등급으로 나눠 '음란'으로 가두고 '외설'로 쪼아버리는 강제력도 1의 욕심 이 지나쳐서다. 1의 욕심이 지나치면 0이 가질 수 있는 디지털의 무한한 경우의 수들은 차 츰 소멸한다. 신경제의 핵심이라고 얘기하는 '혁신'의 과정은 0의 가능성을 북돋아주는 1에서만 나올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1이 어떻게 0에 긍정적으로 개입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다. 닷 컴기업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도 1의 탄력성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1이 구태의연하면 0의 가능성은 쪼그라드는 것이다. 0이 무한한 창의력을 구 체화하려면 1이 앞장서 길을 터줘야 한다. 한편, 0과 1의 조합은 힘의 우위에서 주기를 타기도 한다. 도입기에는 보통 0이 우세하지 만 정착기에는 1에 의한 현실 강제력이 0의 가능성을 좌우하는 경향이 크다. 지금처럼 디지 털 지형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시기에는 1에 의한 0의 억압이 강해지기 마련이고, 이는 0의 가능태를 일그러뜨리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결국 0이건 1이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억눌리 면 문제가 생긴다. 0의 새로움과 1의 현실 조건이 제대로 적절하게 형평성있게 결합돼야 한 다는 얘기다. 어떤 한 유명한 수학자는 인류의 세 가지 혁혁한 '무'의 지표로, 수학에서 0의 사용, 경제 적 등가교환을 위해 고안된 지폐의 출현, 소멸점을 이용한 원근 재현을 꼽은 적이 있다. 인 간에 의해 구성된 상대적이고 인공적인 세계관의 출현을 예고했던 '없음'의 추상 지표들이 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충분히 디지털 0과 1의 쌍이 네번째 추상적 무의 지표로 추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무한의 자유로운 디지털 조합에 의해 비실재하는 것을 현실화하는 힘이 바로 0과 1의 새로운 무의 지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추상의 세가지 지표들이 홀로 그 추상적 표현의 기준이 되는데 반해, 디지털 값은 꼭 쌍으로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0과 함께 존재하는 1의 조합값에 따라 현실에 나타나는 모습이 달라지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대로 그 배 열이나 경중에 따라 현실에 나타나는 모습이 틀려지는 이치는 0이나 1 가운데 어느 하나의 과다주입에 의해 발생한다. 정확한 값은 딱 떨어지지 않더라도, 0의 자유로운 가능성을 크게 억압하지 않으면서 1의 현실 조건을 습득한 둘의 배합 비율이 적정 수준이라는 것이 핵심이 다. 이것이 디지털 혁신과 창의력의 코드를 제대로 구성하는 법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e세상, 200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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