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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어린이 세상에 '자원공유'의 사회 철학을

어린이 세상에 '자원공유'의 사회 철학을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올 여름은 정말 바빴다. 무슨 연구활동을 많이 해서나 원고 청탁에 볶여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순전히 여섯 살 먹은 내 아이가 다닐 여름 캠프들을 발에 땀나도록 쫓아다녔기 때 문이다. 이곳 텍사스에서 보통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3개월 가까이 되는 무덥고 길고 긴 여 름방학을 지혜롭게 날 수 있는 방법으로 여름 캠프를 선택한다. 이도 없으면 펄펄 나는 아 이들에겐 여름은 지옥과 다름없다. 대개 부모들은 방학 시작하기 전 한두달 정도 앞서 여름 캠프 문의에 분주하다. 인터넷을 뒤지고 직접 가서 답사하고 전화로 문의하는 등 열성을 보인다. 그 정도 서둘러야 빨리 마 감되는 인기 캠프에 그나마 자녀를 집어넣을 기회를 얻는다. 여섯 살박이는 거의 오전 혹은 오후를 소요하는 반나절 프로그램들이다. 물론 부모는 아이를 집에서 캠프장까지 데려가고 데려와야 한다. 어떤 곳은 도시락이나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기간은 보통 1, 2주 단위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이나 낯섦은 그리 걱정거리가 못된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에게 칭얼거리고 매달리다가도 쉽게 익숙해지고 나중엔 부모가 오가는지 별로 관 심도 없어진다. 물론 이곳에도 컴퓨터, 미술을 배우고 놀이와 운동을 배우는 곳이 캠프의 주종목 중 하나 다. 하지만, 여름 캠프의 인기 종목은 따로 있다. 한국에서 어린이들의 방과후 일상을 지배 하는 사설 학원들의 비슷한 종목들보다는 야외 학습 프로그램이 단연 인기다. 여름 캠프라 하면, 이곳 아이들은 동물원, 식물원, 조경원, 농장, 민속촌, 목장 등에서 소나 염소 젖짜는 법, 버터 만드는 법, 먹이 주는 법, 동물 닦이는 법, 청소하는 법, 식물 가꾸는 법 등에 더욱 친숙하다. 상가건물 내에 운집한 숱한 학원들에 아이들을 강제로라도 몰아넣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얄밉도록 이곳 아이들은 야외에서 즐겁게 자연을 배우고 풀밭에서 뒹군다. 말과 소에 여물을 주고, 돼지 구정물을 비우고, 곤충과 파충류를 만지고 관찰하는 등 아이들 의 동심에 대한 자극소가 끝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이 누리는 전원식 환경이나 프로그램의 질적 우월에 찬사를 보낼 필요는 없 다. 배울 것은 운용의 묘다. 내 아이를 여러 캠프에 보내면서 캠프 운영의 면모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는데,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 이미 있는 기존의 도시 자산을 가지고 아이들의 프 로그램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개 운영이 잘 되는 여름 캠프는 도시에 등록된 공원이 나 자연 보호 지구에 적을 둔 비영리 단체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시의 공공 예산 지원 을 받고, 자체적으로 이미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로 기능하고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비영리 기관들은 여름 캠프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활동을 알리고, 아이들은 덕분에 이를 배우고 체험하는 장으로 삼는다. 우리에겐 이들 장소들은 쉽게 '관람/열람 시간외 출입금지' 의 명패를 굳게 걸어 잠그는 곳으로 익숙하다. 입장권이나 사야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것 들을 침묵으로 지켜봐야 하는 장소들이다.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식물원 등 우리의 도시 문화 자산들은 와글거리다 한번에 빠져나가는 어린이 단체관람 명목 외엔 그 쓸모가 없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 현장 학습의 장으로 프로그램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곳에 비영리 단체들의 웹사이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여름 학습 프로그램이 저렴한 비용으 로 세부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 아이들의 학습장을 위한 첫발은 도시 군데군데 흩어져있는 문화자산들을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들의 노력에 의해 생긴다. 자산 규모는 별 문제가 아니 다. 대형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등만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것 은 아니다. 아이들은 처마밑에 매달린 거미줄처럼 하찮다고 여기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낀 다. 처한 규모의 영세성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뭐든 재배열되면 아이들에게 학 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크게 보면 이는 사회적 자원을 함께 나누는 공유 모델이다. 페카 하이마넨(Pekka Himanen)의 <해커윤리>란 책을 보면, 그는 소프트웨어의 공유와 나눔의 철학을 배워 전 사회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의 '오픈소스' 철학을 모든 가치있는 자원을 서로 함께 나누는 사회의 공유 모델로 키우자는 얘기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이곳 여 름캠프는 하이마넨의 사회적 공유 모델과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권위나 관성 논리로 꼭꼭 가두려는 무지보단 비록 크기가 작고 내용은 적지만 이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려는 사 회의 넉넉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에겐 아직 한 사회가 아이들의 현실과 미래 를 고민하며, 밑천없고 부끄러운 호주머니라도 다 털어 아이들에게 내보이려는 어른들의 용 기가 보여 부럽기 그지없다. 반대로 우리의 사회, 문화적 자산에 대한 공적 접근로는 거의 폐쇄적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뭐를 내보이는데 인색했다. 내보이는 것도 격식을 갖추고 규모를 따지고 장구한 뭐가 있어야 그 폼이 산다고 봤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처럼 방탄유리 저 너머 존 재하는 범접 불가능한 권위의 상징이다. 우선은 이런 수많은 국고 지원의 문화기관들이 폐 쇄성을 딛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면 밑천 없다 생각하는 단체들 도 용기 백배해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 일례로, 대학이나 비영리 시민 단체들이 나서 파고다 공원 등의 도시 공원들의 환경과 역사를 배우거나, 도시내 박쥐 서식 처를 탐사하거나, 가까운 한강과 바다 갯벌의 생태를 학습하거나, 민속촌이나 충무로 영화 현실 등을 배우는 게릴라식 여름캠프도 가능하리라 본다. 궁극적으로 이는 사회적 공유를 통해 어린이 세상을 가꾸는 현명한 길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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