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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배려의 미덕에서 정보 소외 퇴치를

배려의 미덕에서 정보 소외 퇴치를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미국에 몇 년 지내면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은 것이 있다. 화폐경제의 법칙에 모든 것 을 철저히 가두면서도 무일푼의 거지도 움칠 구멍을 항상 만들어둔다는 사실이다. '빵'하고 터질 계급간 적대의 파국을 막기 위해 항상 '쉬익-'하고 김빠지게 만드는 화해의 묘한 배출 구를 마련한다. 삶과 문화의 밑바닥까지 속속 배어있는 융통성과 배려의 숨구멍들이 사회적 약자의 분노와 소외를 막는 좋은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보자. 강연, 공연, 학술대회 등은 여러 가격 등급이 존재한다. 대개 학생과 저임 금 생활자는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 기본이요, 입장료를 지불할 수 없다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든 마련돼 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각종 문화 행사 프로그램들도 마 찬가지다. 저임금 생활자를 위한 장학금들이 적지만 항상 존재한다. 잘사는 가정의 교육자본 에 비교할 순 없어도 원한다면 최소한의 과외활동이 무료로 제공된다. 형식이건 진심이건 배제보다 기회의 균등을 돕는 규칙이 있다. 뉴스 정보도 마찬가지다. 보통 전국 신문이나 지역 독점 신문보다 차라리 지역 생활 정보 지가 지역소식에 더 자상하고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공짜 공연·파티·모 임·영화 등 수없이 많은 정보와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결국 1300원씩 주고 <뉴욕타임스> 나 등 전국지를 사서 보지않더라도 매주 나오는 생활 정보지와 지역 어디 에나 배포되는 학교의 일간지, 시민·문화 단체 소식지 등을 집어보면 어지간한 지역 사정 은 빤해진다. 신문을 구독해 볼 수 없는 여유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대안매체들이 여럿 존 재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도서관들은 물론이고 대학 도서관에는 지역주민들 누구나 출입하고 자유롭게 이용한 다. 이들을 위해 마련된 컴퓨터들에서 인터넷과 정보 검색은 기본이다. 신원확인만 되면 대 출도 자유롭다. 지역 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의 시청각 자료를 무료로 대출하는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비디오 대여가 힘든 가정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한편 일반 가정은 미취학 아 동들을 주로 유료 놀이방에 보내지만, 최저 생계비 기준에나 미치는 가난한 가정의 어린아 이들을 위해 일년간 유치원 이전 과정(Pre-K)을 마련해 각종 교육 활동과 무료 급식을 제 공한다. 이렇듯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문화적 혜택의 숨구멍들이 여기저기 마련돼 있다. 예서 미국이란 나라의 사회적 복지 수준을 재거나 비교해 부러워하자는 의도는 전혀 없 다. 필자가 느끼기엔 오히려 미국은 상품화되고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인 사회이지 유럽식 복 지국가들처럼 절대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을 구조적이고 정책을 통해 적극 배려하는 나 라는 아니다. 이곳에서 상품 시장의 논리는 혹독하고 잔인하다. 이 안에선 한푼의 에누리도 없을 뿐더러 약자의 배려도 없다. 없으면 박탈되고 차별받고 숨죽이고 배제되고 흐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영리하게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핀을 가지고 있다. 금방이라도 분노 가 표출될 수 있는 분위기가 적어도 무마되는 데는 미국 지역 사회 나름의 문화 소외와 정 보 소외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존재한다. 이를 보살펴주는 최후의 보루는 지역 사회의 비영 리 단체들과 기관들이다. 이제까지 살펴봤던 배려의 미덕은 오직 이곳들에서만 살아있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 필자가 미국 대학의 도서관에서 놀란 사실은 부랑자같은 허름한 차림 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컴퓨터 앞에 잔뜩 꾸부려 앉아 인터넷 검색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 을 봤을 때다. 누군가 그들을 구리거나 지저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를 배려하는 최소한의 규칙이 조금이라도 잡혀있다면 그런 불평은 서서히 잦아들기 마련이 다. 정보 소외의 문제도 정부나 자치단체의 통큰 투자로 만사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결국 이를 푸는 첫걸음은 약자와 소외된 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형식 적 장치들을 조금씩이라도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마치 이는 언제부터인가 노약자를 위해 버스와 지하철에 자그만 좌석을 마련하는 배려의 사회적 룰을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사회 곳곳에 약자에 대한 배려의 미덕이 스며있다면 사 회가 그리 삭막하지 않다. 예를 들어, 원칙을 가지고 소수의 장학금을 마련하거나 공짜로 입 장을 시켜도 사실 학원, 극장, 공연장은 그리 크게 손해보지 않는다. 예닐곱 등급으로 좌석 을 구분해 입장권을 팔아먹어도 최소한 배려의 장치가 존재한다면 현실이 그리 서글프진 않 을 것이다. 박물관, 놀이동산, 학교 도서관, 서점 등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의 자산인 학교 도서관 등을 지역주민들이 공유하면 당연 자원관리의 효율성을 높아진다. 소자본의 동네 서 점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지역 서점들도 단지 주민들에게 책을 파는 곳이란 이미지를 벗어 나 어린이들의 책읽기 공간이자 지역 주민들간에 소통을 돕고 지역의 능력있는 작가를 발굴 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박물관, 놀이동산, 동물원 등도 특별한 날엔 어린이들의 무료 입장에 인색하지 않고 이들을 위한 저렴한 학습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지역민들과 깊숙이 연계할 필요가 있다. 배려의 미덕은 말 그대로 강제가 아닌 자발의 영역이다. 그리고 설사 이를 행하더라도 몽 땅 경제적 비용과 손해로 처리되지 않는다. 거대 기업들의 기부나 문화 사업마냥 결국은 베 푼 쪽에 최대의 마케팅 효과를 가져다준다. 정부 각급 단체, 교육 기관, 문화 공간 등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의 숨구멍들을 지금부터라도 틔우기 시작한다면 문화와 정보 소외 해결의 단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베푼 자신들을 역선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배려의 장치들은 현실적으로 정부의 복지정책이 미약할 때 사회적 약자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의 활력이기에 그 가치가 크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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