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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옛 것과 새 것의 지루박

옛 것과 새 것의 지루박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요즘 미국은 무선 와이파이(Wi-Fi) 인터넷 붐으로 요란하다. 공항, 공공 건물, 학교, 식당, 까페, 가정 등 할 것 없이 죄다 무선 인터넷에 몰린다. 아직은 많은 이들의 정보 접근이 차 단된 상황에서 노천까페에 앉아 은색의 노트북을 가지고 무선 인터넷을 하는 것이 신분 과 시의 문화적 표현처럼 보인다. 노트북은 물론이고 적어도 십만원은 줘야 하는 무선 카드를 구입할 정도의 여유 계층은 그리 많지 않다. 명색이 '뉴미디어'를 한다는 명분으로 뒤질세라 필자도 이에 동승해 얼마전 무선카드를 구 입했다. 까페에서 남들처럼 폼나게 인터넷을 하려는 이유보단 그저 도서관에 들어오는 무선 인터넷 인입선의 혜택을 좀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인터넷 포트를 찾아 헤매거나 낯선 사람 과 포트를 나눠 쓰려고 쑥스럽게 마주하기보다 어디든 자유롭게 자리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내겐 데스크탑처럼 한 곳에 고정돼 6년 정도 버틴 시커먼 노트북이 하나 딱 있다. 이 덩 치 큰 컴퓨터는 갈수록 빨라지는 하드/스프트웨어 갱신 주기를 따라잡는 것과 무관한 터다. 그 와중에 최신의 감당못할 무선카드를 산 것이다. 그러니 이 카드가 내 노트북에 경기를 일으켰던 것은 당연했다. 컴퓨터 오작동에 자료까지 모두 날리고 급기야 전체 하드 포맷까 지 해야하는 쓴맛을 봤다. 낡은 것이 새 것의 부하를 감당못했던 결과다. 한번도 못써본 그 카드는 결국 날쌔고 최신의 컴퓨터를 지닌 후배에게 선심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내 와이 파이의 꿈은 새 컴퓨터를 장만할 때까지 보류됐다. 그 일로 나는 잘난 카드에 못미치는 낡 은 내 컴퓨터를 탓했다. 새 것의 충격에 엉망이 된 컴퓨터에 난 다시 낡은 옛 운영 소프트웨어를 깔기 시작했다. 한번 맛이 간 컴퓨터는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보다못해 미친 척하고 컴퓨터 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운영 프로그램의 버전을 한두 단계 정도 더 높였더니 이게 웬일인가. 오히려 내 컴퓨터에 맞는 최적의 시스템으로 거듭났다. 낡은 컴퓨터의 한계 능력에 움츠려 운영소프트웨어 갱신을 두려워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낡은 것이 새 것을 만나 더 큰 능 력을 얻었다. 낡은 컴퓨터가 이제 쓸만한 물건이 돼 몇 년 끄떡없어 보인다. 이렇게 컴퓨터와 씨름하던 중 한 충격적 소식에 마음이 쏠렸다. AOL 타임워너 그룹의 총 수였던 스테판 케이스가 주주들의 압력으로 사퇴한다는 발표였다. 불과 3년전 미디어재벌 타임워너는 신경제의 상징이던 아메리카온라인(AOL)의 디지털 혁신의 비전을 믿고 인수 제 의를 받아들였다. 당시 언론들은 구시대의 기업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AOL에 인수된 것을 마치 신경제의 승리인양 추켜세웠다. 아뿔사, 합병 당시 풍선마냥 잔뜩 거품과 바람으로 부 풀려진 신경제 기업들의 속내를 알았다면 그런 거래의 성사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합병 후 잇따른 AOL의 사업부문 성장률 하락, 광고 수입 저조 등 기업 실적이 바닥을 치면서 주주 들의 분노를 자아낼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씁쓸하게도 재임 시절 몇 차례에 걸쳐 고가에 자신의 주식들을 거의 다 팔아치웠던 케이스의 놀라운 판단력만이 그의 성공 경영으로 남을 듯 하다. 18년전 미국 온라인 문화를 꽃피웠던 피자헛 점장 출신 케이스의 AOL 성공 신화가 그의 초라한 뒷모습에 여지없이 쭈그러든다. 인터넷 경제의 자양분을 받으려했던 타임워너에 이 제 AOL 사업부문은 전체 사업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 사업 내용 이상으로 대우받 던 온라인 기업이 시장 변화로 무너지면서 합병기업의 다른 사업 부문들까지 뒤흔들어 놓았 다. 새 것이 옛 것에 심한 과부하를 일으키는 꼴이다. 무선카드가 내 낡은 컴퓨터를 다 헤집 어놓은 것 마냥, 거품의 신경제 기업이 구기업의 몰골을 험하게 망가뜨려 놓았다. 다행히도 타임워너 사업부문의 꾸준한 선전이 AOL의 사업 실패를 보상하고 있는 듯 보 인다. 이른바 디지털 케이블사업 등 업데이트된 문화상품들로 시장 점유를 꾸준히 늘린 결 과라 한다. 환경 변화에 맞춘 자체 갱신의 노력이 돗보인다. 마치 내 낡은 컴퓨터에 궁합이 맞는 새 소프트웨어의 발견처럼 말이다. 이번 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케이스의 뒷모습이 요즘 노천카페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 는, 아직 설익은 무선카드처럼 생경하다. 지금까지 겉보기에 세련되고 새롭다 싶던 것이 낡 은 것을 홀대하거나 이에 들어와 사방 흠집까지 내는 경우가 흔했다. 새 것에 바라는 기대 치가 클수록 이를 적용하다 당했던 고통이 컸던 듯 싶다. 자신의 수용 한계를 따져보는 지 혜도 필요하다. 신경제 몰락 이후 AOL 케이스와 무선카드로 지칭되는 새 것의 지나친 욕망이 지난 몇 년간 치이고 무너지며 많이 퇴색해왔다. 이젠 누구나 아주 세련된 새 것보다 욕심없이 존재 하는 유무형의 자산에 맞는 것들에서 선택하고 응용하려 한다. 지속적 내부 혁신과 갱신으 로 얻은 타임워너 사업 성장이나 내 낡은 컴퓨터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새 생명을 얻은 것 이나 다들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살핀 덕에 얻은 이익이다. 새 것에 끌려다니지 않는 옛 것 도 중요하지만, 옛 것을 키우는 새 것의 발견도 공히 중요하다. 새 것에 숨은 독과 가치를 구분하는 옛 것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루박에 맞춰 옛 것은 새 것을 잡고 끌고 땡기며 부단한 스탭을 밟을 필요가 있다. 새 것에 이끌려 스탭이 엉키거나 불륜에 패가하기 전에 옛 것은 함께 움직이는 기본 4박자 스탭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내 낡은 컴퓨터가 살고 신경제의 허황된 꿈도 아예 접고 지루박도 스포츠댄스가 된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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