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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아제이젤 대 와이파이

아제이젤 대 와이파이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얼마전 날도 춥고 몸도 으실해 의례 만성중독으로 복용하는 타이레놀 두 알 꿀꺽 털어 입에 넣고 이불 뒤집어쓴 채 시간을 죽일 양으로 철지난 비디오를 들춰봤다. 감기를 놀래켜 내쫓는 데야 스산한 공포 영화가 제일이라 싶어 녹화해둔 비디오 테이프들 중 하나를 무심코 집어들었 다.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의 <다크엔젤 (원제: Fallen)>이라. 어지간해서는 영화를 절대 '리바이블' 하지않는 나쁜 습관에다가 돌아서면 쉽게 까먹는 짧은 기억력 수준을 고려할 때 한 서너해 흐른 지금의 내 머리 속에는 이 영화가 그 흔한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 로 짐작컨대 그저 조잡스런 줄거리의 헐리웃 흥행 실패작으로 가물거렸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 번째 대하는 영화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다크 엔젤>은 처음 에 기억했던 것처럼 주인공이 사악한 악마와 사투하는 공포 특급 영화가 절대 아니었다. 이제 보니 '인터넷', 특히 무선 인터넷에 바치는 처절한 헌사용 영화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이 혼 미한 상태에 진통제 약기운이 돌아 사물이 빗겨 보였던 까닭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의 악역은 눈에 보이지않고 사람의 몸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아제이젤'(Azazel)이 란 무서운 악마다. 영화의 뼈만 추리자면 존 홉스(워싱턴 역) 형사가 변사체 사건들을 조사하면 서 구약에 등장하는 아제이젤이란 악마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를 없애려 나서지만 오히려 자신 의 목숨을 잃을 뻔하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인간대 악마의 종교극이란 상황 설정만으로 보면 다소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아제이젤의 모습과 그 특성을 바라보면 영화 내용 은 180도 달라진다. 유대 사전을 훑어보니 원래 아제이젤은 천상에서 ㅤㅉㅗㅈ겨난 타락 천사라 한다. 예수를 유혹했던 광야의 사탄이 아제이젤이란 얘기도 있다. 이 악마는 인간세에 내려와 남자들에겐 무기를 만드 는 법과 기술과 과학을, 여자들에게는 타인을 유혹하는 화장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인류에게 천 상의 비밀을 가르쳐 인간들의 죄를 유도했던 골치덩이 타락천사였던 셈이다. 물론 영화에선 아 제이젤의 이런 특성이 표현되지 못하고 흉악한 사탄의 이미지로 줄곧 등장한다. 그렇지만 감독 호블릿은 재치가 있었다. 그는 인간들간의 '접촉'(wired)에 따라 한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옮겨 타고 다니는 '사악한 정령'(disinformation)으로 아제이젤을 그린다. 대개 영화 평론가들은 이런 아제이젤의 모습을 보고 감독이 신체적 접촉에 의한 에이즈 감염의 위험을 표현하려 했다는 뜬 금없는 해석을 내린다. 호블릿 감독은 홉스 형사의 추적을 조롱하며 하나의 신체가 쓰려져도 계속해서 옮겨 다니는 아제이젤의 공간 초월과 이동 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영화의 절정은 홉스 형사가 아 제이젤을 죽일 수 있는 법을 깨닫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했을 때다. 홉스 형사는 신체 접촉에 의해서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아제이젤을 없애는 방법으로 깊은 산중에서 악마의 숙주를 없 애고 그 후 자신의 숨을 끊는다면 숙주를 잃은 아제이젤이 자연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나 름의 결론을 얻는다. 그러나, 홉스의 목숨을 내건 도박에도 불구하고 아제이젤은 근처를 거닐던 들고양이의 몸에 깃들어 유유히 사라진다. 어떻게? '접촉없이'(wireless). 홉스는 접촉없이도 아 제이젤이 대기를 타고 비행하는 능력을 지녔으리란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감독 호블릿은 아제 이젤의 와이어드적 속성을 와이어리스로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것이 내 눈에 영화 <다크 엔젤>이 억압의 권력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는 거대한 힘, 무 선 인터넷의 형상화로 비춰지는 이유다. 아제이젤의 초월 능력은 마치 권력의 파장(홉스 형사의 공권력)을 벗어나 인터넷을 흐르며 생성 소멸하는 역정보나 반정보의 속성과 닮아있다. 본래 아 제이젤이 인간을 꾀어 천상 기술을 전도했던 사악한 악마였던 내력도 이를 정확히 거든다. 사 악한 악의 속성을 자유로운 정보의 원천으로 보는 것이 부담스런 비유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 제이젤의 종국적 힘은 홉스 형사가 다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무너뜨릴 수 없었던 '와이어리스' 이동 기법에서 나온다. 그래서일까, 와이어리스에 집착한 호블릿 감독이 다음 작품으로 라디오 주파수 대역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을 연결하는 <프리퀀시(Frequency)>란 영화를 만든 것 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맹랑한 발상이 든다. 지난 30여년을 거치면서 멀티미디어를 가능케한 디지털, 항시 접속을 도운 패킷 스위칭, 그리 고 이제 공간이동의 기동성을 가져올 와이어리스가 텔레컴 혁명을 주도할 것이란 미래학자 네 그로폰테의 전망이 전혀 낯설지 않다. 아제이젤이 천상에서 훔쳐 인간세에 퍼뜨린 비술이 다름 아닌 '와이파이'(Wi-Fi)란 무선 랜(근거리통신망) 기술로 밝혀진 것이 근 3여년전의 일이다. 와 이파이는 하이파이 오디오처럼 편하고 쉽게 쓸 수 있는 무선 기술의 대중성을 겨냥하여 개발됐 다. 그 말뜻만큼이나 와이파이는 대역폭이 미치는 지역에 컴퓨터와 랜카드만 있으면 어디서든 빠르게 인터넷에 접속하고 개인들간의 일대일 상호 연결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동성의 장점말 고도 와이파이는 인터넷 접속을 일정한 공간내에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다. 기술의 민주적 성격이 성장의 촉진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제이젤이 사멸하는 듯 싶었지만 죽은 인간의 신체로부터 고양이의 몸까지 날아 이동하며 보여줬던 무선 능력은, 무선 라우터와 랜카드 하나로 주위에 큰 장애물만 없다면 일정 거리내 컴퓨터 장치들의 정보 접속을 보장하는 와이파이의 민주적 기술로 등장한다. 라우터 송출장치 로 근처의 이웃들이 함께 인터넷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이 게릴라식 공유 시스템은 오히려 아 제이젤의 힘을 기술적으로 능가하는 지도 모른다. 이 무선 와이파이 네트워크는 주거지가 밀집 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자발적으로 상업서비스가 제공하는 서비스 대 역을 확장해 이웃과 함께 공유하거나, 보다 의식적으로는 이를 마을이나 지역 사회로 확대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경제적 차이로 발생하는 정보 접근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한 방식으로 와 이파이 네트워크의 공유가 적극 모색되기도 한다. 결국 홑이불 속에서 감기몸살로 발발 떨던 내게 호블릿이 그린 아제이젤의 승리는 마치 와이 파이에 불어오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머리를 개운하게 만든다. 주파수 권력의 공백 지대인 2.4/5 기가 헤르쯔의 새로운 대역에 자리 튼 와이파이가 아제이젤의 사악한 천성은 전적으로 접고 가 공할 정보 이동 능력만 섭렵해 장차 인터넷의 개방성을 한층 넓히는 기술로 자리잡길 새해 소 망으로 빌어 본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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