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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과 인권침해

첨단기술과 인권침해 [한겨레]2000-10-13 01판 26면 1254자 컬럼,논단 1933년 나치의 공세를 피해 유럽에서 건너간 지식인들의 망명 대학으로 알려진 미국 뉴욕의 뉴스쿨에서 지난주 사흘 간에 걸쳐 프라이버시(사생활) 관련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대학의 영향력 있는 국제학술지인 (사회연구)에서 주최한 이 자리는 전통 학계의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현실의 프라이버시 침해 위기를 진단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이번 주말에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컴퓨터 전문가 모임'(CPSR) 주최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대규모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주로 현장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이 대회는 현재의 프라이버시 침해 기술의 수준이 현격히 달라졌다는 판단 아래, 변화한 지형에 맞는 프라이버시 침해 대비책을 구상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최근 들어 학계나 시민단체에서 이런 굵직한 행사들이 줄을 잇는 것은 첨단 기술에 의한 새로운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가 오히려 선진국을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워싱턴의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EPIC)와 런던의 인권단체인 프라이버시인터내셔널(PI)이 공동으로 펴낸 (프라이버시와 인권보고서 2000)은 이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해 약 50개국의 충분한 관련 사례를 들면서, 전세계적으로 법 집행 기관과 기업들의 인터넷.위성.신체정보 등을 이용한 점점 복잡하고 시야로부터 숨어드는 감시와 불법도청 기법들이 프라이버시를 더욱 더 옥죄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 보고서는 미국이 전자 감시를 막으려는 법적 장치들을 제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달러당 컴퓨터 저장능력이 두배로 늘어나는 동안에 인구는 기껏해야 2% 성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를 기술적 풍요를 예찬하는 말로 받아들이면 크나큰 오해다. (데이터베이스 국가)란 책으로 유명해진 심슨 카핀클의 말을 빌리면, 오히려 그 통계 결과는 21세기에 다가올 프라이버시의 사망을 예고하고 있다. 정확히 이는 정보 기술의 폭발적 발전과 그 가용 능력이 우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종국에는 삼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한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그 피해 대상은 개인의 노출된 사생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디서든 일상화한 감시의 시선에는, 종국적으로 인권 침해라는 문제가 걸려 있다. 더욱이 관련 기술의 첨단화는 이제 '더 이상 숨을 데가 없는' 것 이상의 심각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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