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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노조의 깃발

닷컴 노조의 깃발 [한겨레]2000-12-01 05판 26면 1298자 컬럼,논단 미국 노동자의 3할 이상이 임시직.계약직 등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다. 특히 정보산업 분야에서 늘어난 불완전 고용 인구가 노동조건을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임시직이 증가할수록 전체 노동자들의 결속과 노조 설립의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미국의 노동운동계는 수세적 처지에서 임시직의 증가를 반대해왔다.노동계의 생각이 바뀐 것은 올들어서다. 임시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닷컴기업들의 대량 해고 경향 등 점차 심해지는 고용 불안으로 인해 이들의 문제를 묵인할 수 없다는 상황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서점인 아마존의 임시직 노동자 중심의 노조 설립 움직임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아마존은 지난해 가을을 시작으로 올 1월에는 150명의 정규직 노동자를 1시간의 해고 통보 이후 잔인하게 내쫓는 해고 조처를 단행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임시직이나 계약직으로 대체하려는 구조조정의 서곡이었다. 9월에는 저임금 노동력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인도의 한 벤처기업과 계약을 맺고, 앞으로 고객 서비스 부문의 약 80% 정도를 이곳에서 조달하기로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렇게 올초에만 260여명을 해고했고, 사전통보 없이 바로 전출시키거나 상근직을 임시직으로 하향 이동시켜 고용 불안감을 높였다. 설상가상으로 고객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임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저임금 구조, 장시간 노동, 해고 위협, 그리고 닷컴의 최대 특전으로 여겨졌던 스톡옵션의 가치하락도 노동조건 문제를 악화시켰다. 임시직 노동자들 중심의 강한 노조 설립 의지는 이제 아마존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유했던 임시직 노동자들의 비밀 '노비문서'를 직원들에게 공개해 유명해진 워싱턴주 기술노동자연대(WashTech)가 이들 노동자의 협력단체로 버티고 있다. 10월 중순께 고작 4명의 아마존 노동자들이 피자가게에 앉아 시작한 모임이 급성장해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집단 서명으로 발전했다. '첨단' '닷컴' 등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노조 설립을 무산시키려는 아마존의 공작도 거세졌다. 경영진의 노조반대 문건 배포와 사이트 개설, 경고성 전자우편 전송, 집중교육 등 노동법 위반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마존의 노조 결성 움직임은 열세에 놓인 닷컴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세력화와 관련한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마존이 닷컴의 상징처럼 구가되던 무노조 신화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 화려한 신경제의 거죽이 색바랜 구경제에 비해 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음을 정확히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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