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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내장 칩, 희망인가 구속인가

신체내장 칩, 희망인가 구속인가 [한겨레]2000-12-15 01판 25면 1315자 컬럼,논단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행위 예술가이자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교수인 스텔락은 기계팔.로봇 등을 이용해 인간 신체의 확장 실험을 해온 독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달 오스틴 지역의 텍사스 대학 강연 뒤에 또 다른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팔 근육에 실리콘 칩을 이식한 뒤 원격으로 무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팔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실험이다. 칩 이식에 의한 신체 실험은 그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년 전에 런던 리딩대학의 인공지능학 교수인 케빈 워익은 외부 신호에 대한 뇌 신경망의 반응을 보기 위해 자신의 팔에 칩을 이식했다. 올초 디지털문화 잡지인 (와이어드)의 표지 모델로도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는 그의 특이한 실험은 이제 기업들의 앞다툰 개발 경쟁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공상과학에서나 나옴직한 인간 피부 아래 삽입되는 실리콘 칩의 첫 정식 상품명은 '디지털 엔젤'이다. 이 콩알 만한 칩은 위성을 통한 위치확인시스템(GPS)의 위치추적뿐만 아니라, 신체 내부의 심장 박동이나 체온 측정을 가능하게 한다. 지난 5월1일부터 빌 클린턴 미 행정부가 군사적 목적으로 제한해온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의 상업적 이용을 전면 허가함으로써, 현재 칩을 장착한 팔찌.시계.목걸이.호출기 등 다양한 형태의 전자 추적장치들의 제품화가 제법 진척된 상태다. 디지털 엔젤은 컴퓨터로 매개된 위성통신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칩의 신체 이식을 통해 고난이도의 바이오센서 기술을 통합시킨 새로운 단계의 제품이다. 플로리다의 한 인터넷 통신 회사의 계열사가 만들고 있는 이 신체 추적기술의 난제는 신체에 이식된 칩의 동력원이다. 이 회사는 이미 몸에서 나오는 열을 전력으로 전환해 칩을 가동하는 기법을 특허 출원한 상태다. 엔젤은 제품의 명칭만큼이나 선의의 용도로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 환자의 혈당 수준의 측정, 심장병 환자의 심장 박동 관찰 등 수시로 검사를 요하는 환자들에게 엔젤은 천상의 목소리와 같다. 그러나 감호 대상의 죄수, 불법체류자, 성 범죄자, 상습 음주운전자 등에게 엔젤의 숨결을 넣어주고 싶은 충동도 존재한다. 문제는 타의에 의해 원하지 않는 엔젤이 자신의 몸 속으로 기어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최악의 상황은 엔젤이 '빅브라더'로 행세하는 경우다. 완벽한 감시사회는 공상이라 치더라도, 엔젤의 지나친 남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스텔락이 실험하는 전자적 신체 확장과 달리 정반대로 신체 깊숙이 감시의 확장을 이루는 신체 구속의 흐름이다. 엔젤은 기술적 성과와 더불어 관리될 수 있는 인간 신체의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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