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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경제를 향한 냉소

디지털 신경제를 향한 냉소 [한겨레]2000-11-24 01판 25면 1305자 컬럼,논단 과거 산업경제와 달리 정보를 가지고 가치를 생산해 수익을 만드는 경제 구조를 통칭해 '신경제'라 한다. 현재 디지털 미래의 대세는 무엇보다 경제 논리에 입각해 있다. 신경제의 과도한 열광 덕분에 다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논의들은 자연히 부차적인 것들로 취급돼왔다. 수년간 미국의 서점 가판대는 닷컴기업들의 성공 신화와 신경제의 새로운 법칙을 다루는 책들로 장식됐다. 이를 통해 가치 생산의 신종 경제 법칙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그런데 미래 경제의 환상에 도취되기도 전에 벌써 닷컴 사망의 조짐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미 닷컴 기업들의 마케팅 예산 삭감, 노동자 실업률 증가, 자본투자 감소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한 달간 방출된 닷컴 노동자만 5700여명에 이른다. 신경제의 거품이 걷히고 있는 것이다. 신경제에 먹구름이 낄수록 오히려 그 명성을 얻어가는 사이트가 있다. 새타이어와이어(SatireWire.com)란 신경제의 풍자소식지다. 비록 실천 방식에서 패러디와 풍자라는 권력에 대한 초보적 반응의 수단을 구사하지만, 신경제를 표적삼아 이를 뒤틀고 조롱하는 대표적인 사이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닷컴기업의 코미디쇼를 확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이트 부제가 익살스럽게도 닷컴코미디(dot.com.edy)다. 이들의 풍자는 일반적인 패러디 사이트들의 경향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점잖은 편이다. 선정적 내용이나 말초적 말장난보다는 권위있는 일반 기사체의 형식적 틀을 빌리지만, 내용은 모두 허구의 코미디다. 기사 형식이 풍기는 사실성과 신뢰성의 형식이 코미디같은 내용과 대비되면서 읽는 이의 폭소를 자아낸다. 현재 닷컴 기업들의 사업 전략이 기업간(B2B)이나 기업-소비자간(B2C)에서 실업에 기반한 기업-실업자간(B2U) 모델로 가고 있다는 기사, 닷컴 고용주들이 근로의욕 신장을 위해 도입한 노동자들의 뺨때리기 정책에 관한 기사, 무능력한 검색 결과를 조롱한 검색엔진과의 인터뷰, 닷컴기업의 최근 줄초상을 비웃는 닷컴살리기 기사 등의 진짜같은 가짜 기사를 통해, 신경제의 모든 부분에서 거침없는 풍자를 수행하고 있다. 사이트의 운영자는 기술관련 기자로도 일했던 앤드루 말랫이란 사람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문제삼는 것은 신경제의 패러다임이 현실의 모든 논리를 지배하면서 낳는 부정적 현실이다. 그는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풍자의 정치적 역할로 본다. 물론 신경제 논의들에 대한 풍자가 단지 냉소적 헛웃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보다 정교한 비판적 논의들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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