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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노동' 노동자결속 해칠수도.

`원격노동' 노동자결속 해칠수도. [한겨레]2000-11-10 02판 26면 1282자 컬럼,논단 원격노동(telework)은 흔히 디지털 미래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항상 거론되는 주제다. 원격노동은 보통 재택근무와 원격 사무실 근무 모두를 지칭한다. 이 '유연한 노동'의 흐름은 컴퓨터간 네트워킹 기술의 발전과 자유 계약직의 성장이 근간이 됐다. 무엇보다도 원격노동은 작업장을 벗어나 노동자 자신이 근무 시간을 관리하는 자유로운 노동 형태로 각광받았다. 반면 일부에서는 원격노동이 사무실과 일상의 경계를 흐려 궁극적으로 노동을 공장에서 사회로 연장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때마침 국제원격노동협회(ITAC)가 원격노동의 추세를 담은 연례 보고서를 발표해 주의를 끌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미국내 정규 원격노동자가 1650만명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2004년에는 3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원격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20시간이고 노동자들은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주목할 점은 원격노동센터로 불리는 원격 사무실 근무의 증가다. 센터는 교통 정체로 인한 근무의욕 감퇴와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대응해 고용자들이 새롭게 고안한 자구책이다. 사원들의 집을 중심으로 원격 근무지를 마련해놓고, 관리자들을 파견해 통제력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노동 자율성을 보장하는 근무 방식이다. 재택근무에 비해 센터가 곱절의 노동 생산성 향상을 기록한 것을 보면, 작업장의 재배치를 통해 노동 통제와 자율의 묘를 잘 살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한편 계약직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원격노동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불안정한 원격 노동의 구성비 증가는 잠재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을 흔드는 악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체적으로 보고서는 원격노동이 고용자에게 생산성 증가를 가져다주고 노동자에게는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견해다. 보고서는 협회의 성격에 어울리게 미국 기업들의 원격노동 확대를 위해 기획됐다. 원격노동이 노동자와 사용자 양쪽에 가져다주는 상호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면, 보고서 말미에 그의 책제목이기도 한 노사간 '신뢰'의 윤리를 덧붙였을 것이다. 그에게 원격노동은 바로 노사간 신뢰로 나아가는 노동 윤리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후쿠야마나 보고서가 볼 수 없는 부분은 원격노동이 만들어내는 노동자간 신뢰의 고리다. 원격노동이 장차 노동자를 작업장으로부터 해방시켜 노사 간의 신뢰를 쌓을 수는 있어도, 노동자 간의 신뢰와 결속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불신의 윤리를 낳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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