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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세계화에 감춰진 칼

정보 세계화에 감춰진 칼 [한겨레]2000-10-20 02판 26면 1282자 컬럼,논단 올 상반기 미국에서 비소설 분야 히트작은 단연 (넥서스와 올리브나무)였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이 책은, 최근 미 상원의원들의 필독서 중 하나로 꼽힌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글로벌화(범지구화)가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며, 이를 선도.지휘하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팡파르를 울려대고 있다. 프리드먼의 오류는 저개발국들이 글로벌 시장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을 민주화로 착각한 데 있다.프리드먼의 이런 오류는,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 정보격차 해법을 일종의 '글로벌 민주화'로 선전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정보격차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지난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주요8개국(G8)의 정상 모임에서 이뤄졌다. 당시 중요한 논제 중 하나는 전세계 정보격차의 해소였다. 이를 이어받아, 이번주 미국 시애틀에서는 세계자원기구(WRI) 주최로 전세계 300여명의 닷컴기업 경영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디지털격차 해소를 위한 대규모 행사가 치러졌다. 이 대회의 백미는 5분 정도 되는 주최 쪽의 선전광고였다. 주최 쪽은 전세계 정보 격차의 심각성을 알리는 문안을 준비했다. 세계 인구의 80%가 전화를 전혀 접하지 못했으며, 인터넷에 접속하는 인구는 전체의 2%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 문안은 세계 디지털 현실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회의 이런 민주주의적 덧칠은 자원기구 의장인 윌리엄 러컬스하우스의 논평을 통해 쉽게 벗겨졌다. 그는 이 대회가 글로벌 닷컴기업들이 무시했던 정보 빈국들을 신경제의 잠재적 시장으로 부각시키고 새로운 사업 기회로 삼는 모임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더불어 그는 거대 닷컴기업들이 능동적으로 디지털 경제의 혜택을 정보 빈국들에 나눠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과거 선진국에 의한 제3세계의 경제 종속과 환경 파괴를 불렀던 개혁 확산론을 수정해, 제3세계 신발전론을 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황을 곰곰이 따져보면, 오히려 현재 정보격차 해결을 위한 선진국들의 논의는 전자상거래 시대에 걸맞은 제3세계의 종속적 발전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대 닷컴기업들이 정보격차의 해소라는 대외적 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디지털 시장 논리를 범지구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추측이 나올 법하다. 특히 이번 대회의 성격이 정보격차의 해소를 글로벌 단일 시장에 동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증이 간다. 이는 프리드먼과 러컬스하우스 모두 외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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