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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정당한 사용' 막지말라

저작물 '정당한 사용' 막지말라 [한겨레]2001-02-02 01판 25면 128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지난해 여름 미국 영화협회는 저작권 위반 혐의로 해커잡지 (2600)을 기소해 뉴욕 남부지원에서 승리를 따냈다. 잡지 편집인이 리눅스용 디브이디(DVD) 암호해독 프로그램인 'DeCSS'를 무단으로 홈페이지에 등록 공개한 것이 문제였다. 기소 근거는 1998년부터 발효한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 위반이었다. 영화협회와의 밀약설 등으로 공신력 자체가 의문시됐던 캐플런 판사의 재판은 예상된 각본대로 움직였다.하지만 그의 판결을 비웃듯 암호해독 프로그램은 온라인상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검색의 정확도를 자랑한다는 구글(www.google.com)에서 이 프로그램을 찾으면 현재 6만8천건 이상의 페이지들이 걸려든다. 그만큼 이 판결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처사였음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 사건이 연방 고등법원으로 넘어감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할리우드라는 거인을 상대하는 데 왜소했던 해커들에게 든든한 응원군이 속속 참여하고 있다. 법정 참고인 진술문 제출의 마지막 날인 31일까지 시민단체.언론인.법학교수.컴퓨터전문가 등이 대거 합세해 1심의 판결에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저작물에 대한 '정당한 사용'의 권리뿐 아니라 등록 및 게시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여러 관련 단체들을 동참하게 만들었다. 특히 미시민자유연합(ACLU), 미신문협회, 언론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 온라인뉴스협회 등이 단체 이름을 내걸고 참가함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온라인 시민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은 피고쪽의 재정적.법률적인 지원과 여론을 조성하는 중요한 구실을 수행해왔다. 밀레니엄법을 무리하게 적용하면, 연구자가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컴퓨터 보안 관련 연구물을 발표하는 행위는 위법이다. 동기야 어찌됐든 기술적 보안장치를 우회해 일반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법은 저작권 소유자가 그 내용의 배포에 대한 권한을 완전히 틀어쥐게 만듦으로써, 이용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계속해서 위협해왔다. 캐플런의 판결은 거대 기업들 편에서 공적인 권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 급속히 파급된 여러 시민단체들의 호응은 항소심의 결과를 떠나 정보 이용의 자유로운 흐름에 재차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은 디브이디 암호해독 프로그램 등의 기술적 코드도 다른 형식의 표현물처럼 수정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상기시킨다. 이번 관련 단체들의 결집이 말많은 밀레니엄법의 개정 문제도 같이 거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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