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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메스 미디어) 살짝 ‘애드리브’한 서평 기사 저작권은 누구 것?

시사IN: 메스 미디어 -- [65호] 2008년 12월 09일 (화)

살짝 ‘애드리브’한 서평 기사 저작권은 누구 것?


이광석

책 홍보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이 저작권 침해라면 방송 프로그램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내건 수많은 맛집도 초상권이나 상표권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출판사 사장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쓸까 한다. 창피해 어디 가서 입도 뻥끗 말라 하셨던 그분에게 혹여 누가 될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요놈의 입이 가벼워 참을 수 없으니 꺼내어 풀 것은 풀어야겠다.

국 내 출판사 대부분이 언론사나 잡지사 등에 신간을 위한 자체 제작 홍보용 기사를 뿌린다는 것쯤은 많이들 알고 계실 것이다. 출판사에서 보낸 맞춤형 글에 자신의 글 몇 줄을 가감해, 힘들여 읽지 않고도 희한하게 서평을 써댄다(물론 한겨레신문의 최재봉 같은 걸출한 서평 전문기자도 있음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리곤 법적으로 그 기사에 대한 저작권은 언론사가 갖는다.

내 가 아는 영세한 출판사의 사장은, 기획도 하고 책도 만들고 번역도 하고 거의 모든 일을 홀로 하는 외곬의 책쟁이다. 그이는 여느 때처럼 기자들에게 신간 소개 기사를 보냈고, 기자들은 받아서 서평을 썼다. 의당 책 선전도 할 겸, 그이는 자랑스럽게 활자화된 서평 기사를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사를 대리하여 한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소송이 들어왔다. 저작권자인 언론사의 동의 없이 감히 글을 무단으로 올린 죄란다. 불쌍한 사장은 법적으로 붙어봐야 이길 수 없는 싸움, 그저 벌금을 물고 물러섰다 한다. 

시장 논리를 굳이 따지자면, 글의 권리가 언론사에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원저자 혹은 원창작자로 따지면 정작 출판사 사장이 그 당사자다. 언론사는 원래 글에 ‘애드리브’하고 저작권을 쉽게 가져간 꼴이다. 대부분을 직접 쓰고도, 그리고 남도 아닌 본인의 출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을 저작권 위반으로 옭아매는 행위는 촌극 수준이다. 저작권이 얼마나 비상식에 근거하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선진국 수준의 저작권법 적용은 무리


분 위기가 이 정도에 이르면 수많은 맛집 주인도 초상권이나 상표권 침해로 다 고소당해도 할 말이 없다. “어디 어디 텔레비전, 무슨 프로그램이 방영!” 하면서 대문짝만하게 앵커나 연예인이 나오는 방송국 프로그램의 일부 사진을 ‘영리 목적’으로 ‘무단 전제’했으니 불법 단속의 대상이 될 만하다. 최근 누리꾼의 개인 블로그 게시물이나 UCC에 대한 단속 수위에 견줘보자면, 조만간 맛집에 내걸린 사진의 전체 수거령도 상상해봄직하다. 

애초 저작권이라 함은, 저자가 수행했던 창작에 대한 최소 법적 보상체제임과 동시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두의 공공재로 자유롭게 하자는 합의의 소산이다. 한 축에 저작권자의 권리 규정과 함께, 다른 한 축에는 (저작권자의) 공익적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작권은 점점 사적 재산권 행사의 장으로 변질된다. 더구나 저작권 소멸 전에도 저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이용자들의 ‘공정한 이용’ 혹은 ‘저작권 제한 조항’조차 제 기능을 잃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서 출판사 사장의 경험은 사실상 ‘공정 이용’에 의해 충분히 보호될 권리였다.

디지털 케이블, 위성, DMB, 그리고 이제 IPTV까지, 대한민국은 뉴미디어 천국이다. 허나 많은 이들은 넘쳐나는 매체에 비해 정보와 콘텐츠의 빈곤을 개탄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을 채우기 위해 선진국 수준의 팍팍한 저작권법을 적용하려 하는 것은 가당찮다.

우리의 누리꾼 문화를 보라. 제약으로부터 멀수록 창작 과잉과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된다. 미래 문화산업의 관건은 이용자의 권리를 생각하는 융통성과 상식에 근거한 저작권 행사에 달려 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숭배해 마지않는 시장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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