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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MBC <뉴스데스크>와 방통심의위의 ‘굴욕’

시사IN: MBC <뉴스데스크>와 방통심의위의 ‘굴욕’

[78호] 2009년 03월 09일 (월) 11:03:28 이광석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 박혜진 앵커의 파업 관련 ‘클로징 멘트’가 편향됐다며 <뉴스데스크>에 ‘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편향과 왜곡의 근원은 손도 못 대고, 이것을 나무란 이를 드잡이한 꼴이다.

지난해 8월, 나는 오랜 미국 유학에서 돌아왔다. 그동안 남의 나라에서 느낄 수 없었던, 삶의 오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국내 뉴스를 보고 들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볼수록 우리네 정치 현실과 세상살이의 모습은, 내가 떠났던 10여 년 전보다 더 딱해 보이고 과거 권위주의의 굴레가 새로 덧씌워진 듯싶었다. 차츰 하루하루 뉴스가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방송국 앵커의 딱딱한 얼굴과 멘트가 흘러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 버릇까지 붙었다. 이는 분명 내 일상의 변화에서 오는 생경함과 부적응도 아니요, 요즘 대다수가 겪는, 상식의 논리가 갈수록 무기력해져감에 따라 쌓이는 가슴속 분노 때문이라 보면 맞을 것이다.

보도 뉴스에 대한 필자의 ‘비호감’은 올해 들어 이상하리만치 갑자기 잦아들었다. 그 계기는 새해 첫날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를 우연히 듣고 보면서였다. 그는 그날, KBS <9시 뉴스>의 보신각 타종 행사 생중계 조작에 대한 논평을 전했다. 그의 논평은 이제껏 내게 익숙했던 앵무새 앵커의 전형적인 모습을 깡그리 깨버렸다. 그는 그날 KBS <9시 뉴스>에서 생중계한 화면을 두고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라고 얘기했다. 또 이런 방송 현실과 일그러진 언론의 모습을 보면, “특히 방송 구조(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뉴스의 프레이밍과 이미지 조작의 위험성이 방송사 조직과 소유의 문제와 밀접함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 방송 저널리즘 비평의 제대로 된 모습 아니던가? 가슴 한쪽이 뻥하니 뚫리는 듯 시원함이 밀려왔다.
 

ⓒ뉴시스


과도하게 편향된 KBS는 ‘무사’


그 의 압축적이고 절제된 멘트는 절대 가볍지도, 대중추수적이지도 않다. 신문 논설과 같이 날카로운 맛이 느껴지고, 시사보도 비평의 준엄함도 있다. 그날 이후, 오늘 밤에는 어떤 클로징 멘트를 ‘날릴까’ 하는 기대감으로 슬슬 <뉴스데스크>에 빠져들었다. 박혜진 앵커와의 듀오는 그날대로 즐거웠다. 홀로, 혹은 그들 듀오가 밤마다 전해주는 소신 발언과 논평은 밖에서 무너지는 소시민의 마음을 일으켜세우는 에너지원이 되었다. 몰상식과 비상식이 지배해 소통이 막힌 시대에 <뉴스데스크>의 클로징 멘트는 시청자의 공명으로 함께 울려 퍼져나갔다.

3월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작정하고 전가의 보도인 양, <뉴스데스크>에 ‘경고’라는 중징계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12월25일 박혜진 앵커의 MBC 파업 참여 코멘트를 문제 삼았다. 방통심의위 박명진 위원장은 <뉴스데스크>의 당시 클로징 멘트들이 “불법 파업을 일으킨 MBC 노조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대변해 질적·양적 균형이 과도하게 편향됐다”라고 말했다. 편향과 왜곡의 근원은 손도 못 대고, 이것을 나무란 이를 드잡이하는 꼴이다.

방통심의위는 MBC <뉴스 후>와 <시사매거진 2580>에도 시청자 사과와 경고라는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병순 체제 이후 침묵과 연성화의 길을 걸으면서, 균형감이 무너지다 못해 ‘과도하게 편향’된 KBS 시사 보도 프로그램들은 웬일인지 경고 없이 멀쩡하다. MBC의 굳건한 정론 보도 목소리와 가시 돋은 논평에는 그 심의 잣대가 가히 혹독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성명에서는 이번 결정을 “철저히 정치적 계산에 따른 ‘자판기 심의’다”라고 평가했다.

현 재 ‘100일’ 후로 연기된 공영방송법의 시나리오 중 하나인 MBC의 사영화는, 그래서 더욱 막아야 할 사안이다. 이제까지 MBC 시사 보도 프로그램들의 날선 비판이 조·중·동 보수 언론이나 재벌에 의해 사영화하고 그 길로 박제된다면, 대한민국 뉴스 보도 저널리즘의 미래는 없다. 그래도 뉴스 청취하다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리는 사단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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