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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정연주 전 KBS 사장 무죄 판결이 전하는 ‘깊은 뜻’

[시사IN 102호]  2009년 08월 24일 (월) 16:34:25

 

정연주 전 KBS 사장 무죄 판결이 전하는 ‘깊은 뜻’


정연주 사장이 축출된 것은 MB 정부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의 서곡이었다. 최근의 미디어 악법 강행 처리 이후 국면과 이병순 사장 체제 이후로 KBS 보도가 ‘대한늬우스’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광석

 

서울중앙지법이 8월18일 열린 정연주 KBS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한 가뭄 끝에 보이는, 작지만 희망적인 싹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KBS 수장을 끌어내리는 일에 현 정부, 감사원, KBS 이사회와 검찰 모두 한 몸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와서 보면, 정연주 사장이 축출된 것은 정권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의 서곡이었던 듯싶다. 적어도 최근의 미디어 악법 강행 처리 이후 국면과 이병순 사장 체제 이후 KBS 보도가 ‘대한늬우스’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당시 검찰은 정 사장 자신이 재임 시절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환급에 관한 1차 소송에서 이기고도 법원의 조정 과정을 밟았던 행위를 문제 삼았다. 그로 인해 KBS 공사에 금전적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이 번 판결은, 그 당시 검찰이 내세운 기소 사유에 대해 법원이 10개 항목에 걸쳐 조목조목 ‘이유 없음’을 대고 반박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어처구니없는 혐의 사실을 씻어냈지만, 당시 감사원과 KBS 이사회는 정 사장의 배임 혐의 자체를 불신임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비슷한 일 꾸미는 MBC 최대 주주 방문진

 

 

 

 

 
8월18일 서울중앙지법은 전 KBS 정연주 사장(위)의 배임 혐의에 대해 10개 항목에 걸쳐 ‘이유 없음’ 판결을 내렸다.

유재천 교수 등 당시 친여 인사로 구성된 일명 KBS ‘돌격대’ 이사회는, KBS 방송국에 경찰 공권력을 요청하고 이를 방패 삼아 정 사장 불신임 투표를 끝내 성사시킨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은 이병순 사장을 낙점해 발령했다.

정 연주 사장을 밀어내기 위한 이사회 투표 방식 또한 비상식이요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해임 과정에서 KBS 이사회의 걸림돌이었던 신태섭 교수를 밀어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한 방법이 동원됐다. 그의 KBS 이사직 자격 요건을 박탈하기 위해, 멀쩡히 다니던 동의대학교에서 보직 해임까지 당하도록 했다. 알려진 대로 올해 초 부산고법에서 신 교수의 해임 무효 판결이 나면서, 정연주 KBS 전임 사장 해임까지의 절차와 과정에 대한 비상식과 허구성이 만천하에 폭로된 터다.

신태섭 교수의 복권도 그렇고, 정연주 전임 KBS 사장의 배임 무혐의 처리는, 그래서 그 상징성이 더욱 크다. 우리는 1년 전 정 사장 해임 시나리오에서 오늘의 불운한 KBS를 봤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다. 이제 와서 정연주 사장의 혐의가 풀려도 현직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역사 속에서 퇴행하고 망가진 것을 되돌리기란 또 한 번의 지난한 과정을 요한다. 현재 안과 밖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병순 사장 체제와 그로 말미암아 끝간 데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KBS 보도의 보수화와 공정성 시비가 그렇다.

KBS에 이어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친위 돌격대’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친여당 이사진이 제2의 비슷한 명분과 다수 의결권을 갖고 지금의 MBC 경영진을 솎아내 민영화의 길을 닦을 태세라는 우려가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혹여 MBC 방문진 이사들이 지난해 KBS와 비슷한 일을 꾸밀 심산이라면, 이번 판결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모든 걸 다 접고 정치적 중립에 서라고 한다면 순진한 요구인가?

원래 자본주의 정치체제에서 절차상 다수결 원칙이나 적법성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은 적어도 형식적 민주주의를 수행하겠다는 약속에 해당한다. 강제로 법적 구성 요건을 갖춰서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현 권력의 모습은 형식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법을 가장한 권력의 추한 행위는, 수많은 선량한 이를 생채기내고 건강한 정치 발전을 저해한다. 이번 정연주 사장 무죄 판결에서 정상성과 적법성의 원래 의미가 무엇인지 음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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