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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문명의 아방가르드식 경고

기계문명의 아방가르드식 경고 [한겨레]2001-09-07 05판 10면 133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생시몽은 1820년대 초반에 새로 등장했던 급진적인 예술 경향을 '아방가르드'라 불렀다. 이 말은 줄곧 사회에 복무하는 예술의 해방적이고 선도적인 구실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아방가르드 하면 대개는 앞서 나가는 것, 보수적 장벽을 깨는 것,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때론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것, 시대 정서와 어긋난 것, 거부감이 드는 것, 자기만족의 엘리트주의로 똘똘 뭉친 것의 혐의를 받기도 한다. 다소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변방에서 선구적 예술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의 물신화한 권력을 비판하는 촉매 구실을 톡톡히 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생존연구실험실'(www.srl.org) 또한 자본주의 기계 문명을 비판해오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아방가르드다. 실험실은 1978년 '예술테러주의자'로도 불리는 마크 폴린이 문을 열었다. 이제까지 전세계에서 보여준 실험실의 공연들은 폴린과 함께 무보수로 그를 돕는 200여명 가량의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꾸며졌다. 실험실의 외관은 쓰다버린 고철들의 수집소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 만들어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기계장치, 이른바 '폭력기계'다. 50~60년대 프랑스에서 대중 통제요법으로 쓰이던 소음장비, 전쟁기계에 사용되는 거대 엔진과 엄청난 폭약장치 등이 폭력기계를 이루는 주요 부품들이다. 피칭머신, 고압축발사기, 러닝 머신, 신의 손 등으로 불리는 여러 종말론적인 기계들은 인간을 압살할 수 있는 힘의 상징 혹은 위협으로 등장한다. 대체로 관객은 공연 도중에 날아다니는 쇠붙이나 나무토막의 흉기들에 신체 위협을 느끼고, 고막을 찢는 거친 기계 소음에 멀미를 하는 등 낯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거대 기계의 폭력성 앞에서 기술 통제력에 대한 인간의 철없는 바람은 여지없이 깨진다. 공연의 목표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본주의 기계에 대한 공포심의 유발이다. 폭력기계가 관객에게 가하는 정신적 고문은 바로 기술 문명이 인류에게 자행하는 현실의 폭력과 일치한다. 안전은 고사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기계 문명을 극복하고 인류 '생존'의 길을 다시 고민하자는 의도가 배어 있다. 전세계 치안 종사자들을 잔뜩 긴장시키는 이 아방가르드 실험이 어찌된 일인지 요즘에 더 성황이다. 경기 침체와 함께 과학기술자들이 부쩍 자신의 여가 시간을 반납하고 자진하여 실험실 폭력기계 설계에 몰두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법하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 문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에서 흘러나온 온갖 잡동사니들로 만들어진 최신 기계들이라 더욱 그 폭력성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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