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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애국주의언론

전쟁과 애국주의언론 [한겨레]2001-11-10 06판 13면 130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의 미디어 재벌들은 지난 9월 동시다발 테러 이후 '애국전쟁'을 이끄는 여론조작의 확성기로 전락했다. 미국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의 녹화 테이프가 나간 뒤 공중파 방송사 간부들은 자성의 목소리로 앞으로 극악한 테러분자들의 '오염된' 메시지 송출을 자제하겠다고 결의했다. 국방부가 던져주는 철저히 제한된 전쟁자료나 받아서 얌전히 내보내겠다는 얘기다.대중매체들의 이런 태도는 도를 더해간다. 얼마 전 (시엔엔방송) 회장은 친히 해외 특파원들에게 돌린 편지에서 미국인들의 판단력을 흐릴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양민 피폭 보도는 자제하는 대신 탈레반 정권의 극악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형평보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술 더 떠 (뉴스위크)의 한 칼럼니스트는 테러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한 "고문을 진지하게 고려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악'의 소탕에는 인권도 하찮다고 언론이 거든 셈이다. 베트남전과 걸프전에서도 거짓 선전을 일삼던 미국 언론들이 지금도 그 고약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은 거세되고 광기만이 각종 지면과 스크린을 뒤덮고 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전쟁에 비판적인 목소리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공갈이나 압력에 시달린다. 미 주간지 (더네이션)의 발행인 빅토르 나바스키는 최근 칼럼에서 시장 집중과 독점이 없어도 대중언론들이 지금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사회주의 저널인 (월간평론) 11월치는 미국의 범세계적 확장의 선전기구로 자리잡은 거대 언론들이 이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는 눈을 감고 감정적 애국주의에 편승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현 시점에서 이에 대한 대응은 대중매체들의 거짓 진술을 폭로하고, 전쟁 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사회 저변의 연대라고 본다. 1990~91년 걸프전 때 중동 사막에 널브러진 주검과 관의 행렬이 미국민의 안방에 전달되는 것을 막았던 언론통제 조처가 오늘의 전쟁에서도 건재하다. 하지만 언론의 상황이 그때와는 아주 달라졌다. 인터넷이 급격히 대중화한 현실에서 포탄에 머리가 참혹하게 으깨져 숨진 아프간 어린이의 사진이 빛의 속도로 유통되는 것을 누가 어찌 막겠는가. 미 정부의 언론통제 작전도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매체에 적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미지 전쟁은 결국엔 정권의 신뢰성을 금가게 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한 보수 언론학자의 뼈있는 한마디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시는 뉴스에 집착 말고 전쟁에나 제대로 대처하라!"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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