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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가 감청당하고 있다

알라가 감청당하고 있다 [한겨레]2001-09-29 04판 08면 132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이달 초 미국 (뉴욕타임스)는 1면 머리기사로 세차례에 걸쳐 프라이버시(사생활권) 캠페인을 벌였다. 올해만도 50개 정도의 프라이버시 관련 법안이 의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법의 입안을 앞두고 인터넷 감청의 위험에 대한 여론 환기용 특집 기사였다. 이제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지난 11일의 동시다발 테러 직후 상원에서는 인터넷 감청을 강화하는 '2001 반테러 법안'을 단 30분 만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원을 포함한 의회의 공식 표결을 다시 기다리고 있지만 결과는 뻔해 보인다. 이번 법안 처리는 공청회나 청문회 등으로 의견을 수렴하던 관행에 비춰볼 때 '날치기'에 가깝다. 테러가 낳은 부정적 효과다. 테러 여파는 미국을 이른바 '경찰국가'로 바꾸고 있다. 민간 항공기를 '자살특공대'의 도구로 만든 테러범들의 잔인한 행태보다 위성과 인터넷 보안기술을 이용한 첨단 공작이 중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감청, 바이오 감지기술 도입, 위성을 이용한 무선 감청 등이 기술적 대비책으로 거론된다. 앞으로는 일단 테러 용의자로 찍히면 법적으로 감시.구금에 제한이 없어진다. 영장 없이도 연방수사국(FBI) 직원들은 인터넷 감청기술인 '카니보어'를 비롯해 논란이 많았던 감시 장비들을 맘놓고 쓸 수 있게 됐다. 반테러법의 통과로 이제까지 비공식.불법이었던 것들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감청 장치들에 대해 핏대 세우며 인권 침해를 거론하던 의원들이 국가 안보란 명분에 몸을 사리고 있다. 이런 애국주의의 '대중 최면' 가운데서도 관련 시민단체와 학계는 안보를 이유로 인권을 거래해서는 안 된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온라인 감청 효과가 기대할 만한 수준도 못 되는데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시민권 침해의 악법으로 쓰일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악법의 주표적이 미국내 아랍계라는 점이 비극이다. 테러에 대한 감정적 복수가 '눈먼 폭탄'으로 선량한 시민들까지 잔인하게 날려버리는 학살극을 초래할 수 있듯, 인터넷 감청의 강화는 얄궂게도 인종 차별에 기반한 사법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테러 이후 아메리카온라인.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 야후의 전자우편 서비스 등 대형 온라인 서비스 업체들에서 이뤄진 연방정보국 직원들의 대규모 감청이 전자우편이나 온라인 계정 이용자 가운데 주로 이름이 이슬람 유일신인 '알라'에 집중된 것을 보면 그 어처구니없는 효과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의 모든 '김'씨처럼 미국의 모든 '알라'들이 테러범 혐의를 안고 살게 생겼다. 테러 후유증이 또다른 심각한 인권 테러로 번지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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