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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X파일’의 힘

영화 ‘X파일’의 힘 [한겨레]2002-05-31 02판 16면 131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희뿌연 담배연기에 가린 얼굴없는 권력자들의 귓속말, 아몬드 모양의 기분 나쁘게 생긴 외계인들의 인간 생체 실험과 지구 정복 음모, ‘저 너머의 진실’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리는 한 연방수사국 수사관. 이쯤 하면 쉽게 떠오르는 방송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크리스 카터가 제작한 〈엑스파일〉이다.1993년 첫 방영된 엑스파일은 얼마 전 9번째 시리즈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국 정부에 대한 냉소적 표현물의 급격한 퇴조 경향과 더불어 시청률 하락, 주연 배우의 중도 하차 등의 악재로 인해 폭스방송사의 경영진들이 종영 시기를 서둘러 앞당긴 듯하다. 엑스파일이 공상과학 드라마의 전형이자 대중문화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기까지에는 제작자인 카터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세련된 영상 표현 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세상은 제 궤도를 이탈해 점점 통제가 불가능해져간다. 더이상 윤리나 도덕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현실을 영상에 담으려 했다.” 언젠가 카터가 〈뉴욕타임스〉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추문와 존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등을 목격한 그에게 현실은 더러운 음모의 소굴이자 거짓 정치가 판치는 세상이다. 자연스레 그의 상상 속에서 현실의 모든 권위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거기서 생기는 불안은 외계인의 무서운 음모, 악마와 결탁한 정부, 부도덕한 거대 기업이 만들어낸 기형의 괴물 등으로 쉽게 전이됐다. 외계인이건 초국적기업이건 강력한 소수의 음모가 역사를 배후에서 조정한다고 보는 엑스파일의 시각은 ‘음모론’ 맹신의 독을 퍼뜨리기도 했다. 음모론은 이 사회를 선·악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로 축소하고 ‘저 너머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무관한 사실까지도 줄줄이 연결해 관련성을 따져든다. 현실 불안의 탈출구로 고안된 음모론이 이렇듯 인간에게 대체 종교인 양 군림하면 사회 현실을 보는 시야는 흐리멍텅해지기 마련이다. 과도한 병리성과 편집증이 현실 세계에 대한 비과학적 분석을 남발하게 부추기는 것이다. 계급·환경·성·기술 등의 정치경제학을 좀처럼 음모론에서 발견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엑스파일은 자신만의 특색 있고 파격적인 영상 언어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관통하고 초월하는 권력의 가공할 힘을 잘 묘사했고, 다국적기업과 미국 정부의 정책·활동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적극성을 보여줬다. 비록 지나친 상상과 편집증이 개입됐지만, 요즘 한 프랑스인이 제기한 ‘미국 군산복합체에 의한 9·11 테러 배후설’과 같은 그럴듯한 음모론이 먹히는 데는 엑스파일이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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