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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가치 ‘와이파이’

민주적 가치 ‘와이파이’ [한겨레]2002-07-11 04판 10면 132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기술 발전이 한 사회의 영향권 아래 있다 하더라도 일면 기술이 지닌 상대적 자율성도 인정해야 할 듯싶다. 기술 발전의 방향이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종종 기술은 규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운동 반경을 그리기도 한다. 기술의 형성 과정에 가끔은 진보적 가능성이 유보된 채 눈에 띄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일반적으로 여럿의 접근을 보장하는 민주적 가치를 지녀서인지 권력의 따가운 시선과 잇단 통제욕에 노출돼 있다.미국내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무선랜(근거리통신망) 기술 ‘와이파이’(Wi-Fi)도 이런 가능성의 기술 중 하나다. 와이파이는 하이파이 오디오처럼 편하고 쉽게 쓸 수 있는 무선 기술의 대중성을 겨냥하고 있다. 그 말뜻만큼이나 와이파이 기술은 대역폭이 미치는 지역에 컴퓨터와 랜카드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빠르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하고 개인 간의 일대일 상호 연결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동성의 장점말고도 이 기술이 초고속인터넷 접속 서비스업체들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데는 인터넷 접속을 공유하는 탁월한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관련 업체들이 두려워하는 접속 공유의 방식은 이렇다. 한 사람이 돈을 내고 유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해 가입한다. 그는 다시 여기에다 무선의 와이파이 송출기를 구축한다. 부근의 이웃들은 이를 경유해 ‘공짜’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와이파이 네트워크는 주거지가 밀집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초보적으로 상업서비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웃과 함께 공유하거나 좀더 의식적으로는 이를 마을이나 지역 사회로 확대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경제적 차이로 발생하는 정보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한 방식으로, 관련 시민단체가 적극 나서서 와이파이 네트워크의 공유를 권장하기도 한다. 와이파이가 점차 시장 위협 요인이 되면서 타임워너케이블 등 서비스업자들은 사태를 관망하던 태도를 고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얼마전 뉴욕의 케이블모뎀 가입자에게 보낸 경고문에서도 업체들의 위기감이 잘 드러나고 있다. 편지는 회사의 회선에 ‘공짜’로 올라타는 자는 ‘도둑’과 다름없다는 위협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업체는 집중 단속을 통해 무임 접속하는 사용자 숫자대로 이용료를 징수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유선 서비스와 달리 ‘허공’에 숨은 도둑 색출이 쉽지 않으리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기왕에 정보격차를 해소해 인터넷의 공공적 접근을 보장하는 와이파이 기술의 민주적 속성이 드러났다면, 인터넷 서비스업체들도 이용자 하나하나의 머릿수로만 접속 조건을 판정하는 낡은 사고를 과감히 버려야할 때가 아닐까.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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