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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즘’ 후예들

‘러다이즘’ 후예들 [한겨레]2002-08-22 01판 10면 132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네오러다이즘’이란 말이 있다. 러다이즘이 지녔던 기계 파괴와 부정의 논리를 긍정으로 바꾸는 대신, 노동자들의 응집력을 삼켜 저임금과 비숙련을 만성화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정신은 그대로 따르자는 뜻을 갖는다. 말하자면 현실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반자본주의 운동을 지칭한다.이와 비슷한 정서가 현실에서 감지된다. 미국 서안의 29개 항만에서 종사하는 1만여 부두 노조원이 사용자의 신기술 도입 압력을 받으며 수개월째 힘겨운 노사 협상을 벌이고 있다. 부두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는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해리 브리지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전투적 기운이 펄펄하기로 유명하다. 1960년 이곳 노동자는 사용자와 ‘기계화·현대화 협정’을 맺으면서 신기술을 수용하되 자신의 노동조건을 동시에 보호하는 법을 터득했다. 러다이즘의 신종 후예처럼 새로운 기계 도입을 긍정하는 대신 노동조건의 임박한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권리를 협상에서 지켜냈다. 이제 40여년이 흐른 지금 노사 협상의 안건이 기계화에서 정보·전산화로 또 한번 옮아가고 있다. 전산 기술 도입을 생산성·효율성·경쟁력 강화의 요인으로 치켜세우는 여론에 밀려 천하의 강성 노조도 이제 신기술 도입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1차 기계화에서처럼 이번 협상에서 노조 지도부 또한 전산화의 흐름을 받아들일 작정이지만, 사용자가 신종 전산 직업군으로 비노조 계열의 외부 인력을 대거 배치하는 데 대한 대비책이 요구되고 있다. 즉 전산화의 수위 조절과 대책이 노조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로 떠올랐다. 노조에 불리한 다른 변수도 돌출했다. 말은 중재역인데 사용자 편에서 노조에 으르대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돌발 행동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부두노조의 파업 때에 대통령의 재가로 80일간 파업을 금하거나 해군으로 부두 업무를 접수하고, 장기적으로는 파업을 제한하는 입법을 마련할 것이라는 등 정부의 거친 발언이 물의를 빚고 있다. 정부가 나서 노조의 교섭력을 떨어뜨리자 사용자는 단체협상에 소극적으로 응하면서 노조의 파업을 불러 정부의 폭력적 개입을 유도할 낌새다. 늘어나는 화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주먹구구식 운송 체제, 시스템의 노후화로 인한 공해 발생, ‘테러와의 전쟁’ 수행을 위한 항만 보안시스템 강화 등이 이번 항구 전산화의 드러난 이유로 거론된다. 사용자가 원하는 전산화의 최종 목적은 좀 달라 보인다. 정부의 뒷심에 기대어 아예 부두노조의 힘을 빼는 데 전산화 협정을 주무기로 삼겠다는 뜻이 있다. 강한 결집력과 신기술에 쉽게 적응해온 부두노조의 건강한 내력을 생각하면, 사용자의 이런 바람이 성사되기란 어렵겠지만 말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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