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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저작권법’에 대한 반기

‘디지털저작권법’에 대한 반기 [한겨레]2002-08-08 07판 10면 1327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 저작권 지상주의의 결정판인 이른바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MCA)이 학문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저작물에 대한 비상업적 이용과 공개조차 범죄화하는 이 악법에 학문 연구자들이 가위눌리는 일이 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한 러시아 청년이 소프트웨어업체 어도비의 전자책 암호를 푸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를 발표하러 미국을 방문했다가 구금된 경우나 프린스턴대의 한 교수가 음악 파일의 해킹 기술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려다 미국음반협회의 압력으로 중단한 경우가 대표적이다.이렇듯 저작권의 횡포에 연구소나 대학의 연구 활동이 심하게 위축되자 이를 반전시키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시민단체인 전미시민자유연맹(ACLU)이 하버드대의 한 젊은 연구원을 대신해 ‘N2H2’란 인터넷사이트 필터링(차단)프로그램 제조업체를 기소한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사건은 필터링프로그램 제조업체의 차단 사이트 목록을 열람하길 원했던 이 연구원의 요구를 이 회사가 ‘회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불거졌다. 필터링프로그램들의 인터넷 사이트 차단 방식 오류를 밝혀내려는 그의 연구가 해당 업체에 껄끄러운 부담이 됐던 터였다. 나아가 그의 목표가 이 업체 프로그램의 보안 장치를 뚫고 들어가 필터링의 오류를 밝혀 연구 결과를 공개 발표하고 궁극적으로 필터링을 막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라면 사태는 사뭇 달라진다. 해당 업체가 언제든 서슬퍼런 저작권을 동원해 가할 수 있는 여러 위협이 그를 떨게 만들 만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의 학문적 자유를 시민단체가 나서 보호하겠다고 한 까닭이다. 이미 이 업체의 필터링프로그램은 ‘폭력’과 ‘음란’의 자의적 분류로 동성애자 운동이나 낙태 등 정치 문제를 다루는 사이트를 가차없이 걸러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더욱이 말많은 이 프로그램이 공공 도서관과 학교 등 교육 분야의 거의 절반을 장악한 현실에선 필터링의 오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었다. 사전검열의 자의적 장치가 시장을 통해 유통되는 것을 막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자라나는 학생들의 시야를 가두고 불구화하는 것도 부족해 최근 일부 나라에서는 필터링프로그램을 수입해 정치적 억압의 검열 수단으로 써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렇게 오류투성이에다 자의적 통제 장치로 오용될 소지가 다분한 필터링의 작동 방식에 대한 사용자의 정당한 알 권리의 요구조차 거부하며 기업이 배짱을 부리는 것은 디지털 악법과 기업의 각종 강제 계약법이 뒤에 버티고 있는 탓이다. 이번 시민단체의 기소가 저작권과 정보 검열이라는 두 칼날을 부여잡고 힘없는 연구자에게 호기를 부리는 기업들에게 일침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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