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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컴팩 동거 틈타 ‘열린 소스’ 내친 ‘뒷손’ MS

HP-컴팩 동거 틈타 ‘열린 소스’ 내친 ‘뒷손’ MS [한겨레]2002-10-02 01판 20면 1225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힘있는 거대 독점체들이 상대를 삼키거나 합칠 때는 기존 사업의 특화 노력보다는 외형적 성장 제일주의에 이끌리기 쉽다. 그러다보니 기업의 인수·합병은 일부 부서를 강제 정리하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면서 원한 서린 희생양을 낳는다.근래에 미국 대기업들이 합병 뒤에도 매출 실적이 저조하거나 경영권 위기까지 오는 경우가 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곱지 않다. 기업 합병이 시장 왜곡은 물론이요 경제 성장에도 별 도움이 못되는 부정적인 경제행위로 비치고 있다. 한때 경영권 싸움으로 비화했던 휼렛패커드과 컴팩의 합병 건도 그런 경우다. 가까스로 합친 이들 회사는 최근 매출 부진의 오명을 쓰고 있고, 지난달에는 옛 휼렛패커드의 핵심에서 일하던 이를 내쫓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해고 사유는 이렇다. 합병 전만 해도 브루스 페렌스라는 해직 노동자는 개방형 ‘열린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네티즌 사이에서 에릭 레이먼드와 함께 열린 소스 운동의 선구자로 통하는데다 연방·주 정부를 설득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유화하고 닫힌 소프트웨어 모델을 개방형 표준으로 바꾸는 정책 제안을 꾸준히 전개해온 인물이다. 그만큼 마이크로소프트에 눈엣가시였던 존재다. 그것이 빌미였을까. 페렌스의 근무처였던 휼렛패커드의 기존 리눅스 사업부를 컴팩이 이끌게 되자 그는 짐을 싸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컴팩, 그리고 합병 뒤 기업의 시장조건 변화로 리눅스 사업팀을 애써 축소해야 했던 휼렛패커드가 서로 실리 계산을 따지려는 데 그가 거치적거렸던 것이다. 해고 명령자는 두 회사의 수장들이었지만 역시 배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버티고 있었다. 겉보기와 달리 대립의 전선은 소프트웨어의 자유로운 이용과 개방된 환경을 지향하는 열린 소스 운동과 ‘빌게이츠 주식회사’ 사이에 그어졌다. 이번 해고건은 장차 이 두 진영의 사활을 건 시장쟁탈전에 앞서 이뤄진 가벼운 몸풀기로 보인다. 왜소하던 열린 소스 진영의 덩치가 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 독점력을 자극하면서, 점차 이들의 대립이 더 다양해지고 격해지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아이비엠에 이어 리눅스 운영체제 시장의 2인자로 대접받던 휼렛패커드가 이제 컴팩과의 동거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는 ‘노예’의 미덕을 발휘했다. 외형적 성장론에 밀려 열린 체제에 기반한 더 나은 기술 개발의 대안마저 묻어버리고 시장까지 크게 왜곡하며 한참 잘못된 길로 가려는 모양새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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