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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노미디어 출판사의약장수 이동서점

내 어린시절 시골 동네에 불현듯 찾아들었던 가장 반가운 손님은 서커스단과 약장수였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던 귀한 그들이라 여장을 푼 천막 근처를 호기심반 두려움반 배회하던 코흘리개 아이들 틈에 영락없이 나도 가세했었다. 이들이 여장을 풀기도 전에 마을의 남녀노소 모두 할 것 없이 일상과 다른 이방인들의 신기한 축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작은 흥분에 휩싸이곤 했다. 서커스단과 약장수는 “OOO 공연을 절찬리에 마치고 지금 막 전국 순회에 돌입”해 피곤도 할 터인데 지칠줄 모르고 ‘타이탄’ 트럭이나 ‘봉고’ 승합차에 단원들 모두를 싣고 벽지와 오지 구석구석을 누볐다. 이제나 그제나 이들의 공연 중 내 흥미를 끄는 대목은 ‘차력’이었다. 차력은 서커스나 약장수의 공통분모이기도 했다. 목으로 쇠막대 구부리기, 묶인 쇠사슬 끊기, 불 삼키기와 뿜기, 칼 삼키기, 이빨로 끌기, 바늘방석 위에 눕기, 유리나 불 위 걷기, 칼 꽂힌 불타는 링 통과하기, 망치로 배 내려치기 등등 살벌하기 그지없는 차력 시연이 내겐 두려움보다는 힘센 이방인들의 종교 의식처럼 보였었다. 물론 식품의약청의 안전기준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의 회충약, 정력제, 강장제 등 정체불명의 물약들이 연금술사의 신비스런 조제술의 기적처럼 보였음은 말할 나위없다. 그저 용달차만한 조그만 박스트럭 뒷칸에 구하기도 힘든 요상한 책들을 한가득 싣고 미국의 여러 동네들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책을 팔기 위해 이들은 길거리나 동네의 작은 바에서 눈요기 차력쇼를 펼친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자율유목의 책행상’(autonomadic bookmobile)이란 요상한 이름을 가진 이들은, ‘빈들러스티프’(Bindlestiff) 가족 서커스단과 아우토노미디아(Autonomedia)란 뉴욕의 작은 독립 출판업자의 합작품이다. 사업 내용으로 따지면, 차력과 함께 약 대신 책을 파는 ‘약장수 이동서점’이라 부르는 편이 낫겠다. 거대 서점 체인이 지역마다 복제돼 영세한 소규모 서점을 문닫게 하고, 텔레비전 화면과 헐리웃 스크린이 서커스를 감상의 추억거리로 내몬 비극적 현실에 이들은 서로 뜻이 맞아 대안의 길을 찾은 셈이다. 95년에 시작한 이들의 이동서점 계획은 서커스장에 펼쳐놓은 길거리 가판 도서로 시작하여, 2인 전담 전국 순회팀이 모는 바퀴달린 이동서점으로 독립하는 눈물겨운 역정을 거쳤다. 이들의 생명력은 서커스를 통해 ‘살아있는 것’의 접촉과 감정적 체험을 돕고, 판매망이 없는 소수 출판사들의 목소리를 모아 직접 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갸륵한 발상에서 나온다. 내가 만나본 이동서점의 주인공 2인, 딩글(Okra P. Dingle)씨와 닥터 플러목스(Dr. Henceforth Flummox)양은 겉보기엔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이들이 등장하면 지역 경찰이 긴장한다. 파는 책들이 선정성과 과격성이란 죄목으로 가끔은 몰수되기도 하고, 둘이 보여주는 차력쇼가 위험천만해 보이기도 해서다. 두 사람의 가장 힘든 일은 쇼보다 책을 보러 오는 이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한다. 배경이 다른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내공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들의 약장수 이동서점은 이제 전국적으로 돌면서 여러 동네의 지역 서점들, 정보 집산지, 모임, 시위 등을 연결하고 정보를 공유하게끔 돕는 촉매자가 됐다. 그들이 싣고 다니는 영세 출판업자들의 책과 잡지뿐만 아니라 길에서 만난 지역 활동가, 대학가의 운동가, 매매춘 여성, 음모론 이론가 등이 쓴 아마츄어식 글들도 이들의 차 뒷칸 도서목록에 추가된다. 동네 공터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차력쇼는 전자 미디어에 치여 희미해진 인간의 직접적 체험의 감각을 되살리는 방법이다. 물론 팔리는 책들은 주변과 변두리의 소외된 소수의 목소리들을 찾아 발굴하고 전달하고 공유하는 주요 통로다. 순회 이동서점을 통해 약장수와 책행상 각각의 목적이 서로 조화롭게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약장수 이동서점이 내 마음을 끈 것은 이들이 꼭 인터넷의 민주주의적 속성과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자유롭게 유목하는’(auto/-nomadic) ‘발달린 책’(book/-mobile)은 대중매체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주입의 공중파가 아닌 인터넷에 떠다니는 소수 전자파들에 다름아니다. 똑같은 거대한 공간에 잘 꾸며진 거대 서점에서 배제된 소수의 책들을 모아서 이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직접 찾아다니며 전달하는 행위는 인터넷 기술이 지향하는 수평적이고 소수 지향의 대화 소통 방식과 유사하다. 4평 남짓한 이동식 공간에 각종 작은 목소리를 담고 중간에 모자라는 것은 다시 싣고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내려주고 하면서 정처없이 부유하는 책들의 이동보따리가 네트를 유목하는 정보와 닮아있다. 인터넷의 민주적 풍경과 유사하게 약장수 이동서점은 현실 속에서 다양성과 소수적 목소리를 전하는 미시적 정보의 통로로 기능한다. 평생을 씻지 않고 살 것 같은 60년대 폭주족 분위기의 범상치 않은 외모와 달리 딩글씨와 잠시나마 나누었던 대화와 악수의 느낌이 유난히 따뜻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 Okra P. Dingle, Cirkus Subversive: The Bindlestiffs hit the road with amazing acts & literary curios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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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거리를 반역의 거리로: 뱅씨(Banksy)

살벌한 군사 문화의 시절을 겪은 우리는 도시 거리를 오직 두 잣대로 재는데 익숙하다. 정화된 거리와 말쑥한 거리. 정치 군인들의 정화된 거리가 단정, 질서확립, 처벌, 훈육, 통금, 단속, 금지, 일렬종대 등을 떠올리게 하는 데 반해, 문민의 말쑥한 거리는 정돈, 청결, 맞춤, 효율, 박제, 안정 등을 연상케 한다. 이도 저도 인간이 살만한 거리의 풍경이 아니다. 우리에겐 정화와 정돈이 아닌 반역과 저항의 거리 풍경이 흔하지 않다. 고작해야 80년대 대학내 캠퍼스 벽과 바닥 곳곳에 그려졌던 민중 그림들이 전부다. 그도 군사 문화의 억압을 피해 제한된 공간 내에 자리를 폈던 정도다. 태초 인간들이 동굴 벽에 낙서를 즐겨 새겼던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한참 표현의 욕망을 억누르고 제도권의 거리 풍경에 몸을 맡겨온 셈이다. 벽낙서, 흔히 그라피티(graffiti)의 역사는 인류 태초까지 거슬러 오른다. 그 중 스텐실 그라피티는 정치 예술과 인연을 맺으며, 그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2차 대전 중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선전용 벽보로 길거리에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스텐실 그라피티를 애용했다. 이와 달리 70년대 남미에선 멕시코인들이 스텐실 그라피티를 저항 매체로 활용했고, 80년대 초에는 펑크 문화와 결합되면서 북미, 특히 뉴욕에선 일약 그라피티가 하위문화의 상징처럼 자리잡는다. 그라피티 예술은 권력의 죽은 거리를 반역이 숨쉬는 거리로 바꾼다. 방식은 마치 레슬링 선수가 상대의 달려드는 가속을 이용해 자신의 몸 위로 그 덩치를 던져 넘기듯, 번뜻하게 차려진 자본의 상징물에 끝마무리로 저항을 각인한다. 정치 권력과 자본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건물 하나 하나가 저항의 캔버스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라피티는 정치 소외의 배설로가 아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권력에 대한 경고와 비판의 자기 표현이다. 일반 그라피티가 한 장소에 붙박히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손쉽게 찍어낼 수 있는 스텐실의 복제 가능성과 그 강렬한 이미지가 이에 배가 효과를 발휘한다. 영국 출신의 로빈 뱅씨(Robin Banksy)는 바로 스텐실 그라피티를 통해 권력을 조롱하고 뒤튼다. 정치적 성격의 그라피티를 제작해 잘 알려진 쉐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가 가공할 권력의 힘을 심각하게 경고한다면, 뱅씨는 일상 권력의 편견과 독단을 냉소적으로 비꼰다. 그는 어린 나이에 그라피티를 시작했다. 74년생인 뱅씨가 대중의 주목을 끌었던 계기는 런던 동물원에 그린 벽화가 시발이다. 그의 그라피티는 철창 속의 동물들의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구경꾼들에 혹사당하는 동물들의 애환과 창살 안의 지루함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어 뱅씨의 작업은 80년대 말 이후부터 가속도가 붙는다.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시위 청년, 기관총을 든 모나리자, 프로펠러 아래 빨간 리본을 달고 질주하는 아파치 헬리콥터, 한쪽에 총을 세워놓고 조심조심 쉬야를 하는 영국 황실 친위대원, 게이 경찰들간의 뜨거운 키스, 벌거벗은 아프리카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미키 마우스와 맥도널드 가이 등등, 그의 그라피티에는 현실 속에 도사린 정치 권력, 엄숙주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기와 저항이 묻어난다. 2001년 뱅씨는 멕시코 농민운동군인 싸빠띠스타와의 연대의 일환으로 치아빠스를 방문해, 그 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벽화를 남기고 왔다. 이처럼 정치적 자의식에 일찌감치 눈을 뜬 것이, 그의 그라피티에 날이 선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전세계 주요 미술관들이 그의 그라피티를 실내로 끌어들여 대대적인 전시회를 열 정도니, 단지 그라피티가 길거리 낙오자들이나 부랑자들의 반사회적 일탈이나 반항이 아닌 것만은 입증된 셈이다. 뱅씨는 그라피티가 예술가가 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 얘기한다. 정규 예술 교육이나 돈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 그라피티다. 이점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그라피티의 대중화를 독려한다. 권력의 이미지로 가득한 거리 곳곳을 대중의 캔퍼스로 바꾸는 일은,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요 누구든 페인트나 스프레이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 인터넷 문화의 경전으로 알려진 <와이어드> 잡지에 뱅씨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이를 어떻게 봐야할 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의 스텐실 그라피티의 예술적 탁월함이 일반 대중에게도 큰 영감을 안겨줬던가, 아니면 그의 저항 예술이 결국 자본의 상품 구도 내에서 수용 가능한 일탈 정도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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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걸들’의 고릴라 가상극장: 현실 극장의 역할론을 거부하는 예술계의 여성 전사들

50년대초 사회 심리학자인 어빙 고프만은 ‘극작(dramaturgical)법’이란 방법을 통해 현대인들이 어떻게 자아를 드러내고 상대와 사회적 관계망에 들어가는지를 잘 살핀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무대행위가 이루어지는 ‘극장’의 비유를 든다. 무대 위의 행위자는 우리의 가시적 행위를, 시나리오는 우리의 감춰진 내면의 동기와 욕구를, 감독은 우리의 의식을 대신한다. 여기에서 자아의 재현은 극(劇) 작업과 동일시된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역할을 결정하고 그 역할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타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자신의 정보를 드러낸다. 물론 자아와 타자들간에 형성된 관계와 상황은 사회적으로 통합된다. 한번 자아와 타자간의 정의가 이루어지면 거기서 발생하는 모순이나 의심 등이 배제되고, 사회의 도덕적 기초가 서로를 규정하고 억누른다. 연배가 높은 자와 낮은 자, 남성과 여성, 배운 자와 무식한 자 등의 각 역할자들은 서로 적절한 무대 행위를 기초로 관계를 맺고 자신의 기능값을 수행한다. 이의 거시 통합적 모델은 바로 사회 조직의 모습이다. 고프만의 무대에서 각자는 역할 가면에 충실하지만, 행위자간의 관계를 가로지르는 불평등의 구조를 발견하기 어렵다. 행위 관계망를 벗어던지거나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의 역할을 취하는 반역이나 저항의 행위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현실의 극장이 보여주는 억압적 관계를 뒤집는 새로운 관계의 생성은 고프만의 이론보다는 오히려 현대의 한 여성 예술가 집단의 성장에서 관찰된다. ` 게릴라걸들’(Guerilla Girls)은 바로 현실 극장의 역할론을 거부하는 예술계의 여성 전사들이다. 1985년 뉴욕시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169명의 전시회에 고작 13명의 여성의 작품이 걸리면서, 성적 불평등과 인종적 차별이 만연한 예술계의 현실극장에 대한 투쟁을 선포한 여성 예술가들의 모임이 생겨났다. 백인 남성 중심의 예술계에 대한 여성 게릴라들의 반란이었다. 이들이 ‘걸’이란 명칭을 선택한 것은 동성애자(게이)가 ‘퀴어’를 선택한 이유와 동일하다. 현실 극장에서 남성의 ‘마초’ 근성을 드러내는 ‘걸’을 여성 자신의 것으로 재전유하려는 ‘언어 놀이’(the linguistic game)의 일환이다. 게릴라걸들이 현실극장의 관계를 교란하는 중요한 방법은 익명성이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신원을 가린 채 죽은 예술가들의 이름을 빌려쓰고, 공식석상에서 ‘고릴라’의 가면을 뒤집어 쓴다. ‘게릴라’를 ‘고릴라’로 잘못 발음하면서 생겼다는 이들의 고릴라 가면은 마초 중심의 현실극장을 붕괴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수행한다. 고릴라 뒤에 숨겨진 인물에 대한 정체성을 구분하기 힘듦으로써 그녀들에게 사회가 규정하는 역할론은 사라진다. 본모습을 뒤로 하고 오직 분노와 강렬함을 전하는 고릴라 가면만이 무표정하게 드러남으로써 고릴라가 전하는 익명의 메시지에 주목하게 만든다. 고릴라 가면에 의한 현실 배역의 거부, 바로 이것이 게릴라걸들이 남성 우위의 현실 극장을 뒤흔드는 근거다. 사실 고릴라 가면의 보다 유연한 형식은 인터넷과 더불어 진화했다. 전자 네트워크 안에서는 익명의 자아들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망을 벗어나 자유롭게 생성된 새로운 자아, 소위 ‘아바타’(avatar)를 대리로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 그래서 게릴라걸들은 고릴라 가면을 통한 정치적 실천뿐만 아니라 고릴라 아바타를 통한 가상의 익명전에도 참여한다. 온라인 퀴즈, 포스터, 비디오, 관련 문서뿐만 아니라 주제에 따라 게릴라걸들 명의로 익명의 전자편지를 마초 사업주에게 보내는 코너와 토론을 원활하게 이룰 수 있게 한 전자게시판도 전술적으로 활용된다. 현실극장의 불평등 구조를 뒤흔드는 방법으로 가상극장의 익명성을 적절히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극장의 역할론이 강력할 때 가상극장에 치중한 전술은 허망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게릴라걸들이 놓치지 않는 것은 거리와 네트 모두에서 성적, 인종적 불균등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을 수행한다는 점에 있다. 한편 가상극장의 활용은 공감대를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현실극장이 주는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앞으로 이들이 벌일 현실극장에 대한 가상극장에서의 교란과 불복종의 시도가 예사롭지 않다. 일상의 권력이 배정한 배역을 거부하고 고릴라 가면을 쓰는 순간 현실극장의 질서는 혼돈으로 뒤바뀐다. 마치 게릴라걸들의 사이트에 걸린 남성성의 상징인 맛 간 바나나처럼 단단해 보였던 마초 사회가 여름철 더위에 녹아나듯 서서히 문드러져 갈 것이다. 게릴라걸들이 현실에서 착용하는 고릴라 가면만큼이나 이들의 가상가면이 현실극장 무대 위의 비상식을 깨는 실천적 힘이 될 수 있는 근거이다. * 게릴라걸스의 책들 Confessions of the Guerrilla Girls, Perennial, 1995. The Guerrilla Girls' Bedside Companion to the History of Western Art, NY: Penguin, 1998. Bitches, Bimbos, and Ballbreakers: The Guerrilla Girls' Illustrated Guide to Female Stereotypes, NY: Penguin, 2003. * 관련 사이트 http://www.guerrillagir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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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한 역감시: 역기술국 (Bureau of Inverse Technology)

자고로 감시는 권력을 유지하는 영구 수단이었다. 푸코는, 서구에선 17, 18세기를 지칭하는 고전주의 시대에 ‘배제의 논리’(나환자)가 감시의 원칙이었다면, 19세기엔 ‘포괄의 논리’(흑사병자)가 통치의 수단으로 자리잡는다라고 말했다. 권력이 체제로부터 어긋난 ‘비정상인’을 다루는 데 있어, 마치 나환자를 다루듯 ‘정상인’의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쫓아내고 박멸하는 방법에서, 점차 정상인의 사회내에 흑사병자들을 포괄함으로 인해 공간을 분할하고 인구 통계를 내고 감시하는 체계적인 통제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권력 기술인 감시는 19세기부터의 얘기다. 당시 푸코의 문제의식은 21세기 ‘초’감시라는 당장의 현실을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이미 공장 등과 같은 주어진 역할에 의해 분화된 장소 안에서 권력 기술에 의해 관리되던 모던한 시대조차 점차 옛말이 돼 간다. 불행히도 얼마 전 검찰이 중도 수사 포기를 선언한 삼성 SDI의 노동자 휴대폰 감시를 보라. 이제 감시는 비디오 카메라와 같은 시각적 영상 채집에 머무르지 않고, 신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모바일 권력에까지 이른다. 공장 담벼락을 넘어 노동자의 재생산 영역에까지 권력의 기술이 확장되고 있다. 이런 권력의 지식은 확보된 정보의 관리와 연계망(네트워크)에 의해 더욱 극대화된다. 교육부의 통합행정 정보망 ‘네이스(NEIS)’ 건은 감시의 또 다른 차원이다. 관리되는 개별 신체의 전망은 새로운 디지털 권력에 의해 완성된다. 권력의 감시 기술을 역전하여 그 기술로 권력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본모습을 드러내면 어떨까. 이것이 ‘역감시’의 통쾌함이다. ‘역기술국’(Bureau of Inverse Technology)은 이에 공헌하는 한 예술가 그룹이다. 테크노예술가인 나탈리 제레미젠코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역기술국은, 현대 권력이 작동하는 근원지에 역감시의 눈길을 보낸다. 역기술국의 대표작이자 국내에도 소개된 <비트 비행기>(1999)는 ‘정보사회’의 상징처럼 돼버린 실리콘밸리의 고공 영상 촬영물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단순하다. 그저 소형 모형 비행기에 카메라를 탑재하고 원격으로 활공하며 촬영한 필름을 지상 수신기로 담아낸 비디오 영상물이다. 그러나 이들의 영상물은 관객에게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마치 냉전 시대의 소산인 미국의 스파이 비행선이 레이더망을 피해 소비에트 공화국의 군사 시설을 고공 촬영하듯, 필름은 현대 자본, 기술, 지식의 신화를 배태한 성역을 스산하게 찍어간다. 전자의 가공할 살상 무기들에서 느껴지는 소름은 후자의 실리콘밸리를 통해 그대로 전이된다. 현대 권력의 성역인 실리콘밸리의 눈부신 외연에 대면하는 대신, 이들은 모형 비행기를 이용한 고공 촬영이라는 역감시 기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마치 적의 전략적 군사 요충지를 답사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 이보다 먼저 만들어진 비디오 영상물 <자살 박스>(1996) 를 들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금문교 다리 위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자동 포착해 반응하는 센서를 카메라와 함께 가동시켜 촬영한 비디오다. 자살 박스는 다리 위를 뛰어내리려 시도할 때마다 숫자가 더해지도록 설계되어졌다. 자살 박스로 계산된 데이터를 역기술국은 다우존스 지수와 비교해 ‘절망 지수’(Despondency Index)라 부른다. 역기술국은 권력이 장난치는 추상적 데이터의 숫자 놀음에 대한 반응으로 자살박스를 고안해 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아니 단 몇 초에 널을 뛰는 주가가 자본의 펄펄 뛰는 동맥이라 감격해하기 전에, 역기술국은 그 자본의 동맥들에 숨이 막혀 절망해 다리 아래 몸을 던지는 인간들의 숫자를 카운트한다. 역기술국은 정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왜곡되고, 뒤틀린 권력의 속곳을 담아낸다. 이들이 다루는 카메라는 단순한 몰래카메라가 아니다. 몰래카메라가 몰래하는 권력의 범죄행위를 찍는다면, 이들의 역감시는 자명한 듯 보이는, 아니 현대 자본의 자랑거리인 듯 보이는 대상물들(실리콘밸리, 금문교 등)의 살의에 가득찬 야만의 얼굴을 포착한다. 게다가 권력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파라치들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역기술국은 추상화된 데이터들 안에 숨겨진 정치적 본질을 폭로한다. 역기술국의 역감시는 이렇듯 권력의 느슨해진 빈틈과 일그러지고 추한 면들을 뒤지고 포착해 까발리는 행위 이상이다. 이들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현대 권력의 뒤틀린 제 모습을 보기 위해선 마치 정상인 듯 보이거나 대중을 장악한 일상의 그 곳에 오히려 다른 시선을 들이댈 때 더 분명해진다는 단순한 원칙이다. 권력이 개별화된 신체에 가하는 현대 초감시의 눈길을 막는 해법으로 이보다 강한 멍군이 어디 있겠는가. <참고 페이지> 역기술국 http://bureauit.org/ 나탈리 제레미젠코 http://entity.eng.yale.edu/nat/ <참고문헌> Inke Arns, Social technologies: Deconstruction, subversion and the utopia of democratic communication (pp. 221-237), in R. Frieling and D. Daniels (Ed.) Media Art Net 1: Survey of Media Art, Wien: Springer. 2004, URL http://www.medienkunstnetz.de Stephen Wilson, Information Arts: Intersections of Art, Science, and Technology,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2, pp. 822-824. Timothy Druckery, Bureau of Inverse Technology (pp. 600-605), in T. Levin, U Frohne and P. Weibel (Ed.) CTRL Space: Rhetorics of Surveillance from Bentham to Big Brother,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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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기술 비틀기: 카본 방위 연맹 ( Carbon Defense League)

자본주의 상품 시장엔 두 불순물이 도사린다. 교환 가치의 조작이나 독점을 통해 폭리를 취하거나, 아니면 그 룰을 아예 깨 체제 전복을 꾀하고자 할 때. 전자를 행하는 자를 파렴치한 자본가라 하면, 후자는 반체제 혁명가급에 해당한다. 둘의 차이는 전자가 현대인을 더욱 더 절대 진리의 상품 시장에 종속시키는 데 반해, 후자는 신화로 가득찬 상품 가치의 허상을 폭로해 까발린다. 이 두 집단에 대한 가치 판단을 보류하면, 둘 다 시장의 환상을 깨는데 크게 기여한다. 현대 상품은 점차 기술과의 결합력이 증가하고 있다. 그럴수록 그것이 지닌 가치와 가격에 비현실성이 더한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증시, 새로운 모델로 사장되는 구제품, 복제품으로 인한 파산, 아이디어 하나로 떼돈을 버는 젊은 사업가 등등 시장 내 교란의 파장과 효과는 한번에 몰아치고, 갈수록 허상의 가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 와중에 시장의 전복을 실현하기 위해 ‘현행 질서 파괴’를 불사하는 자들도 등장한다. 한 예술가 집단이 눈에 띤다. 이들은 허망한 ‘원본’의 가치를 사수하려는 자본주의 상품 시장의 거짓 구린내를 시민의 능동적 이용과 재활용을 독려하는 복제 ‘카본’의 정치 철학으로 헹궈내려 한다. 이름하여 ‘카본 방위 연맹’(Carbon Defense League)인데, 연맹답게 예술가, 정치운동가, 기술자, 이론가들로 구성되어 97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2003년 씨엔엔 등 각종 주류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하루 평균 5만명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리코드닷컴” (recode.com) 프로젝트는 바로 이 “카방연”과 비슷한 동기를 지닌 예술가 그룹 “콘그롬코”(conglomco)의 합작물이다. 시카고 현대 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이 프로젝트는, 기성의 체제 기술을 활용,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를 통해 대중 앞에 자본주의 상품 물신의 거짓을 폭로하는 ‘전술 미디어’의 활용을 강조한다. 보통 창작물의 소유자나 대리권자들이 저작권 등 법적 장치를 통해 혼신을 다해 막으려는 것이 역설계다. 상품 교환의 독점적 가치를 성사시키려는 자에겐, 누군가 자신의 창작물의 코드에 변경을 가하거나 새로운 코드를 첨가하거나 기본 잠금 장치를 풀어헤치는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으려 한다. 카방연은 바로 상품 교환의 보편어이자 가격 체계의 근간인 바코드의 역설계를 통해 상품 유통 체제를 교란하는 큰 일을 저질렀다. 언뜻보면 월마트의 홈페이지를 흉내 낸 듯한 리코드닷컴은 바코드의 역설계를 위한 카방연의 기획 웹사이트이다. 카방연은 바코드가 현대 소비자의 상품 구매조건을 규정하는 화폐 다음의 권자에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프로젝트가 바코드의 역설계다. 기존의 바코드 시스템에 이들의 소프트웨어를 삽입하면 헐값의 가격으로 상품가가 폭락한다. 이를 통해 상품 계산대 앞에서 바코드에 매겨진 거짓 교환가치에 우롱당했던 소비자들의 노예근성은 조각나고, 당연히 바코드의 질서정연한 시장 규칙은 해적 바코드로 엉망이 된다. 하지만 바코드의 역설계를 통한 가격의 ‘재코드화’(리코드)가 월마트와 같은 대형 초국적 유통업자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법원의 프로젝트 강제 중단 결정으로 카방연의 리코드 기획은 도중하차한다. 이미 98년과 99년에 크리티칼 아트 앙상블(CAE)과 함께 카방연은 역설계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선 적이 있다. 거의 미국 청소년들의 문화의 중심이 돼버린 일본 닌텐도 게임보이의 롬 칩을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에프롬 칩’으로 대체하여, 새로운 대안적 유형의 게임보이를 보급했다. 당시 이들이 개발했던 해적용 게임 제목은 ‘슈퍼 키드 파이터’였다. 신나는 펑크 음악과 진행되는 이 청소년 게임의 서사 구조는, 한 청소년이 학교로부터 탈출해, 경찰에게서 물건을 훔치고, 교회가는 사람들에게 새총을 쏘고, 매춘 여성을 구해주고, 게임의 막바지에선 크랙(마약의 일종)을 꼬실리는 내용으로 흥미진진하게 꾸려진다. 2001년에는 아예 청소년들에게 이 게임의 개발킷을 씨디로 제작 보급해, 기존 닌텐도 게임보이를 소비자가 직접 프로그래밍하고 하드웨어를 통째로 변경하는 방법 등을 소개했다. 카방연과 크리티칼 아트 앙상블의 이 개발킷은 수많은 국가들에서 번역되어 보급되기도 한다. 2002년 호주 멜버른의 시연 <프리플레이>는 또 다른 역설계 장치를 소개한다. 카방연은 미국이 중동 국지전에서 주로 공수해 프로파겐다용 선전 매체로 뿌리는 태엽식 단일 주파수 라디오를 개조해, 지역, 국제 뉴스를 청취할 수 있는 단파 라디오로 변신시켰다. 주목적은 제국을 조롱하고, 지역 해적 방송이나 커뮤니티 방송을 독려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카방연의 독특한 ‘역설계’ 실험은 미래 대안적 문화 정치 모델 개발과 관련해 주는 함의가 적지 않다. 카방연은 역설계로 태어난 새로운 대상을 ‘기생 미디어’라 칭한다. 이는 체제 내 생산물의 비판적 재전유를 뜻한다. 대중은 역설계를 통해 단순한 소비 주체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상품이 지닌 원본의 이미지를 벗어나는 효과를 거둔다. 이는 자본 시장의 구매자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본의 기술을 비틀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페다고지의 효과에 다름 아니다. 이 점에서 단지 학술적 목적을 위한 역설계나 상업적 이익을 노린 해적 행위(이른바 용산상가 버전들)보단, 상품 물신을 깨고 이를 뒤집는 정치 교육의 수단으로써 역설계를 고대해 본다. ▲ 참고 웹사이트 카본방위연맹 홈페이지 www.carbondefense.org/ 리코드닷컴 www.re-code.com/video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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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를 조롱하는 악동들: 개미농장의 10여년

미 텍사스 아마릴로의 루트 66번 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드넓은 황무지 한가운데에 희한한 광경이 눈에 띤다. 이 곳엔 얼핏 보아 한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스무 대 정도의 골동품 캐딜락들이 나란히 한 줄로 땅 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다. <캐딜락 목장 (1974)>이라 이름 붙여진 작품인데, 개장 이후 매년 3만여명이 꾸준히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미국 자동차 문화의 성지가 되어버린 이 캐딜락 목장을 기려, 볼보나 클라이슬러 자동차 회사들이 이 곳을 배경으로 광고를 찍고, 노동자 가수로 알려진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이 전시 작품을 기념해 곡을 붙였다고 한다. 가히 미국 대중문화의 명소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캐딜락 목장>은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건축학과 디자인을 전공했던 더그 마이클스, 칩 롤드, 그리고 커티스 쉬라이어, 이들 셋이 주축이 되어 세운 ‘개미농장’ (Ant Farm)의 작품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보헤미안 히피 문화와 베트남 반전운동, 대항문화, 성적 자유운동, 그리고 텔레비전 등 매체문화 등이 한데 뒤섞여 만개하던 곳이었고, 지금도 게이 등 성적 소수자 운동이나 저항문화의 근원지를 꼽으라면 샌프란시스코가 게 중 으뜸이다. 개미농장은 6, 70년대 이 모든 비주류 저항 문화의 세례를 고스란히 받았다. 60년대 당시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다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처럼, 개미농장은 체제 바깥에서 사유하고 활동하던 예술가 그룹이었다. 60년대 자본주의 번영과 부를 상징하던 주류 건축양식에 도전하여, 개미농장은 <50대 50 베개 (1996)>, <세기의 집 (1971)>, <자유의 땅 (1973)>, <돌고래 대사관 (1977)> 등 미래지향의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이들은 한편에선 공동 작업, 관람객의 참여를 유발하는 작품 설계, 주류 건축양식의 냉소를 통해 상호주의를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 미래 지향의 기괴한 건축 양식물들을 추구하여,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와 기 드보르류의 상황주의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 집단으로 불린다. 실지 개미농장의 가치는 건축보다는 당시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등과 함께 반매체 비디오 운동에 불을 붙인 장본인들로 널리 알려졌다. 세라의 73년 6분짜리 문자 비디오, <텔레비전은 사람을 배달한다>는 광고주에게 상품으로 팔리는 소비자를 묘사해, 당시 텔레비전에 의한 자본주의 상품 소비문화에 경종을 울린 작품이다. 이미 세라의 작품이 나오기 전, 텔레비전과 상품 문화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개미농장의 시연, <불타는 미디어 (Media Burn, 1972)>에서 극대화한다. 피라밋 모양으로 쌓아올려진 텔레비전 더미 한가운데로 특수 제작된 캐딜락이 충돌하며 뚫고 지나가는 장면은 당시 지역언론들에 생방송될 정도로 큰 문화적 파문을 일으켰다. 개미농장에게 <캐딜락 농장>과 <불타는 미디어>에 소품으로 이용된 캐딜락은 포디즘으로 집약되는 자본주의 번영을, 산산이 조각나는 텔레비전은 70년대 미국 대중 문화를 가름하는 상징물들로 연출된다.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미자본주의와 이미지 조작과 최면의 거대한 브라운관이 서로 충돌해 파괴되는 장면은 상징 이상의 전복적 의미를 담고 있다. 멍키렌치로 가격해 조각난 브라운관의 설치 작품, <더러운 접시들 (1970)>은 아마도 개미농장이 이같은 <불타는 미디어>를 낳기 위해 거쳤던 기초 작업으로 보인다. <불멸의 장면 (Eternal Frame, 1975)>은 <불타는 미디어>와 함께 개미농장의 대표적 비디오 예술 작품으로 회자된다. <불멸의 장면>은 케네디 암살 장면을 직접 연출해 비디오에 담아 반복해 보여줬던 작품이다. 개미농장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매체를 통해 구성해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어떻게 현실이 매체를 통해 극화되는지, 그리고 실제 현실을 어떻게 대체하는지를 확인한다. 게다가 케네디가 텔레비전을 통해 선거를 승리한 첫번째 미 대통령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그의 암살에 대한 연출은 역전된 상황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2003년 6월 호주 시드니에서 개미농장의 주요 일원이던 더그 마이클스가 사고로 숨을 거뒀다. 이를 기념해, 개미농장의 지난 10여년간의 작업일지가 지난 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78년 자신들의 스튜디오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하고 모든 공식적 활동을 접은 지 얼추 25년만의 일이다. 가면 갈수록 소비, 독점, 물신, 신화 등 주류 대중매체의 질곡들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이들 개미농장의 반매체 저항 예술작품들은 아직도 미디어 운동가들에게 중대한 의미를 던진다. 비록 일회성 퍼포먼스로 미디어에 대한 즉자적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쳤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생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까지 이어지기 어려웠으나, 개미농장은 물신화된 대상들을 조롱하고 그 가치를 역전하는데 있어서 전술적으로 대단히 탁월했다. 자본주의의 신주단지들을 그저 소품으로 박살내며 즐거워하던 6, 70년대 이 사악한 아이들의 맥이, 이미 오늘 우리 전자 문화의 악동들에게 신내리고, 무한 복제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알튀세르의 말대로 ‘사악한 주체’(bad subjects)없이 현실의 전복은 없다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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