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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치의 큐레이터, 아트마크(RTMark)

<네트워커> 1월호에도 소개된 바 있는 ‘크리티칼 아트 앙상블(CAE)’이 현재 미 연방정보국(FBI)에 의해 생화학 테러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 정부가 깊게 개입한 세균전 실험 역사를 비판하며, 박테리아를 이용 이를 경고하는 예술 시연이 권력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던 까닭이다. 문제는 앙상블의 주요 구성원들이 예술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이거나 현업 예술가로 이뤄졌다는 점으로 봐서, 이번 사건이 진보 예술계 인사들의 재갈을 물리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행히도 앙상블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학계와 문인, 예술계가 저항하고 있고, 한 구명 사이트(www.caedefensefund.org)를 통해 앙상블 기소 사건의 정황을 알리고 변호 기금 마련의 움직임도 있다. 이렇듯 권력과 자본의 횡포와 룰을 거부하며 저항을 폭넓게 기획 사업으로 꾸리면 어떨까? 네트에서 본격적으로 저항 방식을 사업화하여 크게 알려진, 한 사이버 아방가르드 기획 집단이 있다. ‘아트마크(RTMark)’가 그것인데, 이제는 영국 비비씨(BBC) 방송 등에서 이 단체를 특집으로 다룰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아트마크는 온라인 장난감 업체인 이토이즈(etoys.com)와 이 업체가 존재하기 전부터 만들어져 운영되던 스위스의 인터넷 아티스트들의 사이트(etoy.com)간의 도메인 분쟁에서 후자를 승리하도록 도움으로써 서서히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트마크의 사업은 자본에 대한 사보타지를 목적으로 한다. 상업적 투자회사가 아니지만, 이들은 뮤추얼 펀드 모델을 도입하여 기업들의 횡포를 막는 사업들을 기획하고 있다. 환경, 교육, 노동, 언론, 지적 재산권 등의 펀드군을 만들어, 정해진 사업에 기금을 적정 활용하는 것이다. 펀드 매니저들은 각 기금들을 활용하여 저항을 꾸미는 당사자들이다. 물론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화폐 대신 펀드 매니저가 선사하는 문화와 삶의 향상에 대한 기대이다. 사업의 핵심군은 기획 아이디어, 스폰서, 작업자, 그리고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생산물이다. 이 4박자가 맞아떨어지면 사업이 성사된다. 예컨대, 이들의 홈페이지 사업 공고가 누군가에 의해 제시되면 그에 이해 관계를 갖고 있고 자본을 대는 스폰서가 등장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예술가 혹은 운동단체가 기획 생산을 맡아 결과물을 내오는 방식이다. 이제까지 아트마크가 벌인 사업들은, 현실에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저항 방식의 심각성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우선 이들의 장기적 사업 중 하나는, 세계무역기구(WTO), 공화당 대통령 후보 시절의 조지 부시, 오스트리아의 나찌당, 맥도널드 등과 유사한 도메인명을 지닌 패러디 사이트를 제작하여, 이들의 공식 사이트를 비꼰다. 또한 영화 <타이타닉> 제작시 환경 오염의 피해 주민들에 대한 여론화, 고정화된 성역할을 조롱하면서 3천여 개의 바비 인형에 미 해병 인형의 남성화된 음성을 삽입하여 재유통시켰던 ‘바비 해방군’ 사업, ‘사빠띠스따 운동’을 옹호하면서 미 펜타곤과 멕시코 정부의 웹사이트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었던 프러드넷(floodnet)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지원 (지난 <네트워커> 7월호에 소개된 ‘전자교란극장’ 참고) 등이 이제까지 이들이 성공적으로 이뤄냈던 주요 사업 내용이다. 아트마크의 장점은 바로 저항의 유연성에 있다. 이들은 문화적 저항의 전략과 전술들을 다양하고 재치있게 구사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큐레이터’로 불리길 원한다. 기업의 큐레이션이 소비형 인간들을 주조하는데 있다면, 아트마크는 여기에 불만을 지닌 무리들을 긁어모아 창작자로서의 시민을 양성하는데 주력하는 큐레이터다. 이런 큐레이터 개념으로 보면 틀에 박힌 전시공간은 비좁다. 자본 물신형 배치에서 주체형 시민들의 민주적 재배치로 사회를 바꾸는 기획이란 점을 고려하면 구획된 공간은 구속이다. 그래서 그들의 큐레이션은 전지구적이다. 사업의 연계 방식도 전지구적으로 맺어진다. 서로 얼굴도 몰랐던 스폰서, 예술 생산자, 아이디어의 제출자 등이 아크마크의 웹 데이터베이스 기획 목록을 통해 소통하고 저항하는 출구를 찾는다. 하지만 일정 부분 사회 운동의 전망에서 보면 아트마크는 단지 저항을 유희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경향도 내재해 있다. 예술 운동을 자본의 사업처럼 여겨 투자와 사업성과의 관계로 좁혀가다 보면, 애초 취지보다는 가시적 효과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타자에게 물리적 손상을 유발하는 것을 제한하는 사업 원칙은, 저항의 강도를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어찌됐건 아트마크의 가치는 크다. 굵직한 디지털 저항 예술의 자금줄이자 이를 재배치하는 통큰 큐레이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기획에 맞는 적절한 자금을 대줄 창작자를 찾고 생산물을 내오는 방식이 그저 큐레이터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사고한다면, 행동주의적이고 미학적인 방식으로 디지털 창작과 예술 행위를 새로운 판 위에 적절히 짜내는 또 다른 아방가르드 예술 활동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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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 디지털 행동당, 전자교란극장(EDT)

디지털 행동당, 전자교란극장(EDT) 이광석 / 네트워커 편집위원 2000 년 1월 3일 디지털 사빠띠스따 폭격기들은 멕시코 치아빠스의 아마도르 헤르난데즈에 주둔한 멕시코 정부군을 향해 동시다발 폭격을 감행했다. 신자유주의의 기치로 국민경제의 개방과 수출 의존적 성장 정책을 앞세워 노동자, 농민의 목을 조르던 친미 멕시코 정부의 폭압에 저항하는 대규모 전자 네트워크 공세였다. 라깡도나 정글의 민족해방군들이 폭격기를 이끌고 폭탄을 뿌리며 멕시코 정부군을 초토화한다. 가상에나 있을법한 이 신나는 폭격 시나리오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이용한 디지털 사빠띠스따 총책인 리까르도 도밍구에즈에 의해 고안됐다. 사빠띠스따 농민해방군(EZLN) 부사령관 마르꼬스가 현실의 게릴라전을 이끌었다면, ‘전자교란극장(Electronic Disturbance Theater)’의 도밍구에즈는 전지구적 네트워크 봉기를 주도한 수장이다. 물론 도밍구에즈는 마르꼬스의 예하 편대가 아니다. 미국에서 행위 예술을 하는 그는, 교란극장의 나머지 단원들, 칼민 카라식, 브렛 스톨바움, 스테판 뤠이와 함께 디지털 폭격기의 핵심 장치 ‘플러드넷’이라 불리는 소프트웨어 툴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플러드넷은 멕시코와 미국 정부 기관의 홈페이지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교란극장이 지닌 급진 정치의 지향과 이를 반영해 제작된 소프트웨어를 통해 인터넷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집단행위 예술이다. 플러드넷 제작은 97년 치아빠스 한 마을에서 45명의 아녀자와 어린이를 학살한 멕시코 정부에 항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지로 신자유주의와 멕시코 정부의 주둔지인 홈페이지 서버들에 장애를 일으키게 만들고, 이들의 폭거를 반대하는 전 세계 활동가들의 저항을 플러드넷에 담아 디지털 폭탄 세례를 안겼다. 도밍구에즈는 지난 <네트워커> 1월호에도 소개된 바 있는 ‘크리티칼 아트 앙상블(CAE)’ 출신의 예술가다. 현실에서 사빠띠스따 게릴라전을 목도하고, 그는 95?과감히 앙상블과 결별한다. ‘전자불복종’ 개념을 현실화하는데 앙상블에서 한계를 느낀 그는, 사빠띠스따의 저항과 같은 인터넷의 전자불복종의 구체적 실현 방식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는 전자교란극장의 ‘디지털_아트_행동주의’로 표명되면서, 한군데 머무르지 않는 권력의 유목적 속성에 대응한 앙상블의 전자불복종 개념과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사빠띠스따의 정치적 행동주의를 결합한 행위예술 실험으로 그를 옮겨가게 했다. 멕시코 이민 2세대로 젊은 시절 연극을 했던 도밍구에즈는 브라질의 극연출가였던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과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실험극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수동적 관찰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관객 스스로 무대의 주체로서 갈등을 파악하고 대안을 구성하도록 이끌었던 보알과 브레히트의 철학은 그의 교란극장에서 선보였던 디지털 사빠띠스따의 실험에 바로 이어져 내려온다. 전자 네트워크를 통한 비폭력의 집합 행동양식에 의해, 이용자들은 목소리를 함께 내면서 스스로의 정치적 행동주의를 점차 깨닫기 시작한다. 당연히 전자교란극장의 신체-기계관은 앞서 연재된 프랑스 행위 예술가인 올랑(<네트워커> 3월호)이나 호주의 스텔락(<네트워커> 2월호) 보다 진일보해 있다. 올랑/스텔락이 기계를 이용한 개별화된 신체의 확장 능력을 고민한 반면, 교란극장은 사회화되고 정치화된 집합적 신체들과 기계의 관계를 고민한다. 억압적 권력에 대항한 사회변혁과 신체 자유의 욕망을 네트워크에 의해 엮어진 집합적 신체들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교란극장은 보다 건강한 신체-기계관을 지닌다. 한편 교란극장이 구사하는 네트의 비폭력 저항 전술은 현실의 시위 방식과 닮아있다. 빗대어 말하자면, 화염병과 돌로 권력의 바리케이트를 돌파하는 폭력의 미학보단 연좌 농성과 같은 비폭력 전술을 선호한다. 서버의 데이터 파괴와 웹사이트를 훼손하는 전자 폭력을 쓰기보다는 자동 ‘리로딩’ 명령을 반복하며 상대 서버 기능을 떨어뜨리고 접속 속도를 늦추는 합법적 전술을 동원한다. 권력자들이 골려먹는 실정법 위반의 빌미를 차단하고, 저항의 투명성과 합법성을 보여주는 전술로 채택된 까닭이다. 아울러 플러드넷은, 반복적으로 멕시코 정부 홈페이지에서 ‘정의’, ‘인권’ 등의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를 요청하게 만들거나, 정부 페이지에 “이 사이트엔 정의/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란 ‘404 에러’ 문구를 연속해 뜨게 만든다. 이는 흔히 거론되는 가상연좌의 발생적 맥락을 넘어선다. 아스팔트 위의 연좌농성을 떠올려보자. 가두 행진을 하거나, 바리케이트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감거나, 경찰에 대놓고 프랑스 지식인 푸코의 글을 읽거나, 수천의 종이 비행기를 날리거나, 화형식과 시 낭송을 행하는 등의 행태들은 얼핏보면 무질서하지만, 이것들은 시위의 목적을 다양화하는 행위 예술들로 기록된다. 요는 플러드넷이 단순 가상 연좌농성을 넘어서 ‘개념예술’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수년 전 뉴욕 동시다발 테러 이후 ‘무질서’와 튀는 행위를 극도로 금기시하는 공권력의 완벽한 무장으로 인해 시애틀, 다보스, 퀘벡, 뉴욕 등 다국적 자본들의 회의장들에 대한 최근 반자본주의 시위 자체가 철저히 무산되고 순화되고 있다. 그러나 2002년 초엽 당시 보여주었던 전자교란극장 등 사이방가르드 집단들의 주도로 이뤄졌던 전 세계 포럼장 웹페이지 시스템 공격은 또 한번 반자본주의 운동의 저항 방식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청년, 여성, 동성애자, 유색인종, 노동자, 농민, 환경운동가, 원주민 등 수천의 목소리들을 담은 디지털 폭탄들이 서로 갈래치고 합쳐져 하나의 공동 적을 향해 타격을 가하는 디지털 저항의 게릴라전에서, 단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넘어선 인터넷의 새로운 전자 행동주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 참고: 사빠띠스따(Zapatista)의 네트전 2004/07/03 [네트워커]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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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5. 디지털 비평의 선구자들, 크로커와 더리

디지털 비평의 선구자들, 크로커와 더리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90 년대는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문화 영역에 소위 ‘사이버’ 담론이 넘쳐나던 시기다. 당시에는 첨단의 문법을 구사하며 후기자본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경계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이에 비판의 날을 치켜세웠던 많은 사이버문화 이론가들이 배출됐다.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 마크 더리(Mark Dery)와 아서 크로커(Arthur Kroker)의 공적은 되짚어 볼만한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 이들 글 속에서 표현되었던 첨단의 극사실주의와 그에 걸맞은 새로운 언어 문법의 파격에 사이방가르드의 실험정신과 비판 능력이 온전히 담겨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먼저, 아서 크로커는 캐나다 콩코르디아 대학의 정치학 교수이자 국제적인 사이버문화 웹진 씨시어리(Ctheory)의 편집인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신경제 시대의 엘리트 계급의 등장과 이들이 지닌 신화를 누구보다 먼저 간파했다. 크로커의 저서 가운데 <데이터 쓰레기: 가상계급론>(1994), <미래 해킹하기>(1996)는 그의 사고 지형을 읽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그의 <데이터 쓰레기>는 현대 사이버문화 비평서로는 탁월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크로커는 우선 ‘가상경제’라는 새로운 신경제의 분석을 통해 그 본질이 ‘소멸의 경제’에 근거한다고 판단한다. 그 소멸은 노동과 생산물,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고전적인 생산관계 등의 사라짐을 지칭한다. 원격의 글로벌 가상공간 거래로 인해 (실물) 경제가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이후에나 본모습을 드러내는 신경제의 성장을 당시 한발 앞서 내다봤다. 물론 그에게 구경제의 가상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신계급의 출현과 맥을 같이한다. 그가 개념화한 ‘가상계급(virtual class)’은 바로 새로운 시대의 파워 엘리트를 지칭한다. 가상계급의 구성은 이렇다. 미래의 비전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자본가들과 위계상 한 단계 아래인 하이테크 벤처자본가들, 인공 지능 과학자, 엔지니어, 비디오 게임 개발자, 컴퓨터 과학자들과 여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 기술지향의 정부관료 등이다. 이들의 경제적 기초는 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산업에 의존한다. 이들 사이의 계급적 협력은 주로 ‘기술적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지고, 이 프로젝트는 계급간 불협화음을 억제하는 화해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렇듯 견고한 지배의 구조에도 언제나 탈출구는 존재한다. <미래 해킹하기>에서 그는 지배 구조에 대응한 전지구적 대항 세력의 등장을 주목한다. 전자적 공간을 통해 새로운 기술 엘리트들인 가상계급의 논리에 도전하는 소수 저항운동들, 예컨대 원주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해커운동 등에서 현실 변혁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마크 더리의 경우 그는 단순히 문화평론을 한다고 말하는 대신, ‘정치’ 문화평론을 쓴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디지털 문화비평의 근저에는 늘 사회 정의와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다. 그는 사이버문화 전반에 대한 식견뿐만 아니라 이를 도마에 올려놓고 맛깔나게 손질할 줄 아는 재주도 겸비했다. 그의 사이버문화 초기 저술은 <프레임 워: 사이버문화론>(1994)이다. ‘프레임 워(flame wars)’는 온라인에서 오고가는 신랄한 이바구(입담)를 뜻하며, 이는 네트를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디지털 현상에 대한 그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 편집된 책에서 독자들은 90년대 초반 한창 부상하는 사이버문화의 다양한 관심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편, 그의 <중력장 탈피: 세기말의 사이버문화>(1997)는 사이버펑크, 사이버히피, 테크노이교도들 등 정보시대의 디지털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다뤘다. 더리는 주류 정치가나 신경제론자들의 논의가 아니라 문화적 극단의 사례들에서 반문화 혹은 저항문화의 단초를 발견한다. 미학적 관점에서 사회의 비정상적 변이들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착증, 카니발, 음모론, 광기, 초자연론, 곤충학, 성변태, 초현실주의 등등 문화적 극단을 찾아나선다. 이들 주류와 권력에서 빗겨나고, 권력에 의해 추하게 일그러진 돌연변이들의 문화 생산에서 새로운 저항의 동력을 고민하는 것이다. 90년대 크로커와 더리가 구사했던 난해한 잡종식 글쓰기는 사실주의를 극대화하는 고유한 촉매제 구실을 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이들은 문화이론, 정신분석, 디지털기술 등의 전문 용어들을 뒤섞어 새로운 현실을 설명하려 했다. 사이버, 테크노, 사이키 등등과 연결되는 잡종의 언어들에서 독자들은 근미래의 현실을 조감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글쓰기 문법은 다가올 사이버 현실을 보기위한 도구였다. 이들의 난해한 문체와 디지털 신조어들은 실지 사실성을 떨어뜨리기보다는 현실과 근미래의 풍경을 보다 풍성하도록 돕는 미장센 효과와 같다. 마치 SF소설의 허구를 사건의 전개와 치밀한 플롯과 소재들로 뒷받침하여 극사실성의 때깔을 입히듯, 이들의 디지털 언어는 낯설고 혼돈스럽지만 변화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동시에 이들은 공히 사이버문화의 좌뇌를 자극한다. 주류 디지털 문화의 상업적 지배에서, 이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의 모습에서, 그리고 화폐로 관리되는 신체에서 우울한 디지털 미래를 감지한다. 이들 둘은 극단의 언어 게임을 통해, 누구보다 앞서 디지털 현실과 미래의 제 모습을 한꺼풀 뒤집어 보여주는 공을 세웠다. 참고 페이지 아서 크로커: http://www.ctheory.net 마크 더리: http://levity.com/markdery 2004/05/03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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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기술문명의 폭력 학습장 : 생존연구실험실 (SRL)

기술문명의 폭력 학습장 : 생존연구실험실 (SRL) 기 계문명이 인간의 ‘생존’에 가하는 공포심을 철저히 체험하는데 근 25년 이상을 지탱해온 그룹이 있다. 이름도 으시시하게 ‘생존연구 실험실(Survival Research Laboratory, SRL)’이다. 실험실은 1978년 예술 테러주의자, 엔지니어-예술가, 행위 예술가 등으로 불리는 마크 폴린(Mark Paulin)이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실험실의 방장격인 폴린을 뺀 나머지는 실제 실험실에 애정을 갖고 있고 그의 작업을 그때 그때 돕는 수 백여 명의 조력자들이다. 생존연구 실험실의 정식 활동가는 폴린 한 사람인 셈이다. 대부분의 재정은 조력자들이 기부하는 헌금, 실리콘 밸리가 한창 잘 나갈 때는 닷컴 주식으로 횡재한 돈이나 그 곳에서 폐품 처리를 앞두고 나온 고철 기계들의 헌납을 통해 이뤄진다. 한번 인류가 핵폭탄으로 난리를 치르고 난 뒤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그의 종말론적 실험실은 문외한들에게는 고철들의 잡동사니 폐품 수집소를 방불케 한다. 그가 실험실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내는 것은 문명의 야만을 보여주는 ‘폭력기계’다. 고철 수집소의 거대한 엔진이 부착된 기계 로봇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기계음과 터보엔진의 힘을 이용해 엄청난 불을 내뿜는 공격성까지 갖춘다. 그의 ‘피칭머신(pitching machine)’은 굉음을 내는 브이(V)1 로켓을 장착하고 시속 3백 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거대한 널빤지를 공중으로 날려보낸다. 그밖에도 그가 시연한 대표적인 기계로봇들로는 보잉 엔진과 경찰 사이렌을 장착한 채 불꽃을 방사하는 ‘프레임 휘슬(flame whistle)’, 여섯 개의 다리와 흉칙한 이빨을 휘두르는 괴물 ‘러닝 머신(running machine)’ 등이 있다. 이 폭력기계들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1982년에는 폴린 자신이 만든 로봇의 반란으로 그의 오른 손가락 중 일부가 날아가고 뭉개지는 수모까지 겪는다. 그의 시연과 관련된 흥미있는 일화가 많다. 미 연방정보국(FBI)은 그를 요주의 인물로 꼽았고, 퍼포먼스 이후에는 수 차례 방화 혐의로 감옥에도 들락거렸다. 한번은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그의 피칭머신 기계쇼 때문에 그라쯔(Graz)라는 지역에 전쟁 비상령이 내려지는 촌극이 벌어졌고, 1999년 일본 도쿄의 요요기(Yoyogi) 스타디움 공연 이후로 그의 생전에 일본 입국이 어렵게 된 일도 있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찾는 도시들마다 그의 시연 금지령이 내려지기 일쑤였다. 어쨌거나 그가 출현하면 전세계 치안 기구들이 잔뜩 긴장하는 반면, 정반대로 로봇 매니아나 하위문화의 열광자들은 그를 기술 문화의 스타로 숭배하는 진풍경이 목격된다.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는 온화하고 친사회적인 외모와 성격의 폴린은 어려서부터 기계 조립과 함께 극장 예술에 대한 관심이 강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에는 자본주의 대중 선전의 중요한 수단인 길거리 옥외 광고의 전복적 이용에 관심을 두고 ‘광고판 해방전선(Billboard Liberation Front)’에도 가담한 전력도 있다. 독특하다 말할 수 있을지언정 비정상인의 의혹은 전혀 없었다. 그런 그가 전세계를 다니며 미친 폭력기계의 종말론적 기계쇼를 펼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기계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를 관객에게 뼛속까지 심어주려 한다. 그의 시연 도중에 날아다니는 쇠붙이나 나무토막의 흉기들에 신체의 위협을 느끼고, 거친 기계 소음과 타는 기름냄새에 멀미를 하고, 무서운 아가리를 벌리고 불을 뿜는 기계들에 오금이 저리는 등 관객들의 정서는 혼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종말론과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흉물스런 거대 기계의 폭력성 앞에서 관객은 공포에 치를 떤다. 폴린이 얻고자하는 목표는 기술, 특히 군사기술의 가공할 위험에 대한 경고다. 기계에 대한 공포는 미래에 다가올 기술 문화에 대한 대비와 단련의 과정이다. 폴린이 폭력기계로 행하는 관객에 대한 정신적 고문은 바로 미래 기술이 인류에게 자행할 수 있는 해악성을 표현한다. 전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냉혈한 기계의 소름끼치는 미래상에 대한 경종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의 공연은 하이테크 쇼의 일반적 가정들, 예컨대 패션쇼나 컴덱스에서 흔히 보이는 화려와 현란의 장치란 없다. 오히려 관객을 폭력 기계들에 반쯤 미친 아수라로 만들고 이에 대한 경악을 최대한 이끈다. 관객 모독과 폭력주의에 기반한 극단적 정서에 반발이 일자 폴린도 최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에게 우호적인 표현 방법으로 인터넷이나 위성을 통해 로봇 기계를 조작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등 공연도중 관객의 안전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의 실험이 과연 예술이냐는 조롱 섞인 일부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25년 넘게 꾸준히 그는 미래 기계상의 모습에 심각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비록 그 방식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에도, 그의 퍼포먼스에 반응하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그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발하고, 괴음을 내고, 고속의 속도를 유발하고, 무서운 불꽃을 뿜는 기계들의 모습은 인간을 압살할 수 있는 힘의 상징 혹은 위협적 대상이다. 이와 같은 폭력기계들의 스펙터클 속에서 관객들은 공포를 통해 경고와 각성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물론 기계들의 폭력에 대한 단단한 준비,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조건까지 살핀다면, 폴린의 목적하는 바가 이뤄지는 셈이다. 참고 페이지 생존연구 실험실(SRL) http://www.srl.org 광고판 해방전선(BLF) http://www.billboardliberation.com/home.html 200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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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3. 스텔락 : 맥루한의 사이보그적 실현

스텔락 : 맥루한의 사이보그적 실현 스 텔락 : 1946년 생인 그의 예전 이름은 스텔리오스 아르카디우(Stelios Arcadiou)이다. 그는 97년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 예술과 로보틱스학과 명예교수로 위촉되기도 했으며, 현재 영국의 노팅햄 트렌트 대학 ‘행위예술 디지털연구팀’의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맥 루한은 일찍이 감각의 확장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혁명적으로 뒤바꾼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에게 감각을 확장하는 수단은 미디어다. 예를 들어 바퀴는 발의, 책은 눈의, 옷은 피부의 확장으로 취급된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이자 새로운 감각의 연장인 셈이다. 호주 출신의 행위 예술가이자 첨단 기술을 이용해 신체확장 실험을 벌여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스텔락(Stelarc)은 맥루한의 이러한 미디어론을 실제 행위 예술을 통해 실현시킨 인물이다. 70년대는 상품으로 완성된 작품보다는 창작 행위와 그 과정에 중심을 둔 이른바 ‘개념 예술(conceptual art)’이 번성했던 시대다. 개념 예술은 자본주의에 자연스레 포섭되어 상품화되고, 정형화된 틀 안에 갇힌 예술의 엄숙주의를 경계했다. 자연히 이 예술 경향은 잡힐 수 없고 항상 변화무쌍한 신체와 그 물리적 행위를 창작의 중심에 놓게 된다. 한편 틀에 갇힌 엄숙주의를 향한 개념 예술의 비판은 상대적으로 스펙타클적 요인을 과장하는 쪽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바로 스텔락은 70년대를 거치면서 이 두 경향을 함께 지녔던 대중적인 행위 예술가다. 그에게 스펙타클의 요소는 뭔가 첨단을 상상하게끔 하는 신체 확장의 기계 이미지를 통해 구성되었다. 스텔락은 ‘몸의 확장’, ‘레이저 눈’, ‘제 3의 손’, ‘자동 팔’, ‘비디오 섀도우’ 등 인간-기계간의 잡종 기획을 통해 신체 확장을 부단히 실험해 왔다. 관객은 SF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사이보그 인간의 모습을 스텔락의 예술에서 관찰할 수 있다. 스텔락의 구상은 이처럼 인간과 기계의 형식적 결합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가 보는 궁극의 비전은 ‘신체의 소멸’이다. 기계를 통한 신체 확장을 넘어서, 기계와 신체 중 어느 중심된 조정자 없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동작하는 인간-기계의 진정한 잡종을 염두에 둔다. 이것이 스텔락이 보는 ‘포스트휴먼’의 구상이다. 맥루한의 미디어론을 극대화한 신체-기계관이다. 그에게 현대 인간의 신체란 진화하는 존재다. 신체 감각의 진화는 새로운 시대의 신체 모델을 필요로 한다. 그가 기술과 함께 소멸하는 신체를 선언한 것은 변화된 인간의 감각과 신체적 조건을 미리 감지했기 때문이다. 피부 깊숙이 뚫은 낚시 바늘에 연결된 줄의 평형성을 유지하기 위해, 연결된 돌들의 중력에 기대어 허공에 들어올려진 그의 초기 행위예술에서 관객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극한을 체험한다. 최근에는 피부에 칩을 이식하여 자신의 근육을 외부 자극에 의해 조정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무선 인터넷을 통해 원격 조정되는 이식된 칩이 자율 신경을 자극함으로써 팔의 근육을 저절로 움직이는 실험이다. 그가 보기에 이 모든 것들은 신체 확장의, 신체-기계-네트의 합일 과정을 보여주는 행위다. 스텔락은 근본적으로 기행(奇行)으로 사기치는 예술가들과 결별한다. 그가 지닌 예술적 의의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구상이다. 스텔락은 궁극적으로 네트 속에서 하나의 기능을 담당하는 새로운 신체 소멸의 이미지를 구상하고, 권력의 중심점인 신체의 소멸을 꿈꾼다. 그는 기술과 결합한 몸을 통해 초월과 권능의 이미지를 실험하면서 그 새로운 가능성을 점쳤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이 제시하는 기술의 모습에서 관객은 절대 후기자본주의의 실체를 발견할 수 없다. 관객은 오로지 신체를 가로지르는 기술의 가공할 이용과 능력만 느낄 뿐이다. 기술로 포장된 신체에 대한 관심의 몰입은 기술 생성의 사회적 맥락을 거세한다. 그에게는 신체를 구성하는 테크노 권력의 실상이 불투명하다. 예컨대, 신체에 작동하는 현대 권력의 모습은 개별화된 바코드 삽입, 신체 내부에 자리잡은 감시용 칩, 인간 눈동자를 흐르는 개별 인식의 데이터베이스, 위성을 통한 신체 관리 등에서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신체에 가해오는 디지털 권력의 ‘신체정치’ 구상이 스텔락의 ‘몸’에 생략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관객은 그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봄직한 신체와 기계간의 성교를 관음적으로 지켜볼 뿐이다. 이것이 30년 이상 굳건히 지속된 그의 사이버네틱 행위예술에서 관찰되는 가장 큰 한계다. 스텔락의 홈페이지 http://www.stelarc.va.com.au/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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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 올랑의 사이보그 성형수술 극장

올랑의 사이보그 성형수술 극장 자신의 외모가 내면적 본질에 비해 턱없이 소외되었다는 강박에 이르면 정신의학적으로 일부는 ‘신체기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에 걸린 것으로 의심해야 한다. 성형이 하고 싶어 얼굴이 근질거리거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잘난 여성의 얼굴 거죽을 벗겨내어 자신의 얼굴에 이불 깁듯이 기워 넣고 싶다거나, 진공 청소기로 몸의 과장된 일부를 쭈욱 흡입시켜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면 장애가 중증으로 돌변한다. 유명 여성들의 가장 잘난 부분을 자신의 얼굴에 꼴라쥬로 이어 성형한다면, 이건 완전 ‘울트라 엽기짱’ 수준일까? 실제로 올랑(Orlan)이란 프랑스의 한 멀티미디어 행위예술가는 ‘최고의 걸작: 성녀 올랑의 환생’이란 기획으로 8번 이상의 성형수술 극장을 선보였다. 모나리자의 이마, 프시케의 눈, 유로파의 입, 다이애나의 코, 비너스의 뺨 등 유명 그림들에 나오는 여성들의 이목구비를 디지털 이미지로 조합한 ‘얼굴본’을 가지고 그녀는 실제 성형 작업에 임했다. 올랑은 80년대부터 성형수술 과정을 통해 소위 ‘카날 아트(carnal art)’를 꾸준히 소개한 국제적 인물이다. 그녀를 첫 대면하는 사람은 ‘카날’과 ‘카니발’의 경계를 구분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필자 스스로도 93년 뉴욕에서 행해진 그녀의 수술극장 퍼포먼스 비디오를 보면서 구토를 일으켰고, 한 등발 좋은 여성이 기절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올랑은 그저 포스트모던한 ‘엽기녀’ 혹은 중증의 성형 수술에 시달리는 여자에 불과할까? 우리에게 정체를 구성하는 외모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는 의도한대로 생기지도 않을 뿐더러, 외모의 시간적 변화 또한 자신에게서 ‘타자’의 영역에 속해 있다. 자신으로부터 외모가 소외되는 현상은 ‘바깥’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더욱 더 강화된다. 여성성, 물신성 등의 가치는 바로 외부에 의해 주어지는 것들이며, 신체는 ‘나’의 것이 아니라, ‘그것’ 혹은 ‘의복’의 영역일 뿐이다. 그래서 올랑에게 신체는 오직 사회적으로만 구성된다. 그녀의 수술극장은 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규정된 여성 외모의 미적 규준을 깨기 위해 그녀 스스로 극장의 감독이 되어 벌이는 예술적 퍼포먼스다. 환자, 시술자, 참관인들은 파코 라반에서 디자인된 오트 쿠튀르 수술복을 입는다. 수술실은 소품용으로 준비된 십자가상, 모조 과일, 수술극장의 큼지막한 크레딧 벽보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녀는 시술 동안 정신분석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위성을 통해 자신의 관객들과 전화를 나눈다. 그녀의 이러한 엽기적이고 키치적인 시술에는 다중(multiple) 정체성에 대한 예술적 실험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외모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현대 여성들이 지닌 욕망의 광기를 드러내는 작업의 일환이다. 90년대말 이후 그녀의 시술은 멀티미디어 작업으로 확대된다. 포토샵 등의 작업을 통해 그녀의 얼굴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위성이나 이메일 팩스 등으로 작업 내용을 전송하는 전시 기획도 갖고 있다. 애초 그녀의 얼굴이 수정, 제거, 덧붙이기가 가능한 ‘소프트웨어’와 같다고 언급했을 때, 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특히 멕시코 여행을 통해 얻은 1999년 디지털 작업 ‘자아-잡종들(self-hybridations)’은 얼굴 이미지의 사이보그적 변형성을 극대화시킨 퍼포먼스로 기록된다. 올랑은 고정화되고 닫혀있는 전체로서의 신체 개념을 수정과 변형의 대상으로 역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신체 재구성은 궁극적으로 사이보그 정체성을 향해 열려 있다. 일찍이 ‘사이보그 선언문’을 썼던 도너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를 일종의 ‘해체되고 재구성된 후기모던의 자아’로 바라보았던 것처럼, 권력에 의해 타자화 된 신체의 해체와 재구성을 올랑은 수술극장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물론 그녀에게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신체를 재가공·재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수술에 의한 변형과 디지털에 의한 신체의 재디자인은 최종적으로 신체 소멸을 위한 기획이다. 서구의 기술 수단을 가지고 서구의 미적 기준을 깨려 한다. 하지만, 매일 밤마다 그녀를 괴롭히는 수술 후유증은 여전히 큰 고통으로 남는다. 포스트모던한 다중의 정체성에도, 그녀에게 끈질기게 달려드는 그 아픔은 절대 지우지 못할 ‘단 하나’ 남는 ‘모던’한 실체인 셈이다. 올랑의 홈페이지 http://www.orl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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