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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기술문명의 폭력 학습장 : 생존연구실험실 (SRL)

기술문명의 폭력 학습장 : 생존연구실험실 (SRL) 기 계문명이 인간의 ‘생존’에 가하는 공포심을 철저히 체험하는데 근 25년 이상을 지탱해온 그룹이 있다. 이름도 으시시하게 ‘생존연구 실험실(Survival Research Laboratory, SRL)’이다. 실험실은 1978년 예술 테러주의자, 엔지니어-예술가, 행위 예술가 등으로 불리는 마크 폴린(Mark Paulin)이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실험실의 방장격인 폴린을 뺀 나머지는 실제 실험실에 애정을 갖고 있고 그의 작업을 그때 그때 돕는 수 백여 명의 조력자들이다. 생존연구 실험실의 정식 활동가는 폴린 한 사람인 셈이다. 대부분의 재정은 조력자들이 기부하는 헌금, 실리콘 밸리가 한창 잘 나갈 때는 닷컴 주식으로 횡재한 돈이나 그 곳에서 폐품 처리를 앞두고 나온 고철 기계들의 헌납을 통해 이뤄진다. 한번 인류가 핵폭탄으로 난리를 치르고 난 뒤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그의 종말론적 실험실은 문외한들에게는 고철들의 잡동사니 폐품 수집소를 방불케 한다. 그가 실험실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내는 것은 문명의 야만을 보여주는 ‘폭력기계’다. 고철 수집소의 거대한 엔진이 부착된 기계 로봇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기계음과 터보엔진의 힘을 이용해 엄청난 불을 내뿜는 공격성까지 갖춘다. 그의 ‘피칭머신(pitching machine)’은 굉음을 내는 브이(V)1 로켓을 장착하고 시속 3백 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거대한 널빤지를 공중으로 날려보낸다. 그밖에도 그가 시연한 대표적인 기계로봇들로는 보잉 엔진과 경찰 사이렌을 장착한 채 불꽃을 방사하는 ‘프레임 휘슬(flame whistle)’, 여섯 개의 다리와 흉칙한 이빨을 휘두르는 괴물 ‘러닝 머신(running machine)’ 등이 있다. 이 폭력기계들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1982년에는 폴린 자신이 만든 로봇의 반란으로 그의 오른 손가락 중 일부가 날아가고 뭉개지는 수모까지 겪는다. 그의 시연과 관련된 흥미있는 일화가 많다. 미 연방정보국(FBI)은 그를 요주의 인물로 꼽았고, 퍼포먼스 이후에는 수 차례 방화 혐의로 감옥에도 들락거렸다. 한번은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그의 피칭머신 기계쇼 때문에 그라쯔(Graz)라는 지역에 전쟁 비상령이 내려지는 촌극이 벌어졌고, 1999년 일본 도쿄의 요요기(Yoyogi) 스타디움 공연 이후로 그의 생전에 일본 입국이 어렵게 된 일도 있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찾는 도시들마다 그의 시연 금지령이 내려지기 일쑤였다. 어쨌거나 그가 출현하면 전세계 치안 기구들이 잔뜩 긴장하는 반면, 정반대로 로봇 매니아나 하위문화의 열광자들은 그를 기술 문화의 스타로 숭배하는 진풍경이 목격된다.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는 온화하고 친사회적인 외모와 성격의 폴린은 어려서부터 기계 조립과 함께 극장 예술에 대한 관심이 강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에는 자본주의 대중 선전의 중요한 수단인 길거리 옥외 광고의 전복적 이용에 관심을 두고 ‘광고판 해방전선(Billboard Liberation Front)’에도 가담한 전력도 있다. 독특하다 말할 수 있을지언정 비정상인의 의혹은 전혀 없었다. 그런 그가 전세계를 다니며 미친 폭력기계의 종말론적 기계쇼를 펼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기계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를 관객에게 뼛속까지 심어주려 한다. 그의 시연 도중에 날아다니는 쇠붙이나 나무토막의 흉기들에 신체의 위협을 느끼고, 거친 기계 소음과 타는 기름냄새에 멀미를 하고, 무서운 아가리를 벌리고 불을 뿜는 기계들에 오금이 저리는 등 관객들의 정서는 혼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종말론과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흉물스런 거대 기계의 폭력성 앞에서 관객은 공포에 치를 떤다. 폴린이 얻고자하는 목표는 기술, 특히 군사기술의 가공할 위험에 대한 경고다. 기계에 대한 공포는 미래에 다가올 기술 문화에 대한 대비와 단련의 과정이다. 폴린이 폭력기계로 행하는 관객에 대한 정신적 고문은 바로 미래 기술이 인류에게 자행할 수 있는 해악성을 표현한다. 전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냉혈한 기계의 소름끼치는 미래상에 대한 경종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의 공연은 하이테크 쇼의 일반적 가정들, 예컨대 패션쇼나 컴덱스에서 흔히 보이는 화려와 현란의 장치란 없다. 오히려 관객을 폭력 기계들에 반쯤 미친 아수라로 만들고 이에 대한 경악을 최대한 이끈다. 관객 모독과 폭력주의에 기반한 극단적 정서에 반발이 일자 폴린도 최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에게 우호적인 표현 방법으로 인터넷이나 위성을 통해 로봇 기계를 조작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등 공연도중 관객의 안전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의 실험이 과연 예술이냐는 조롱 섞인 일부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25년 넘게 꾸준히 그는 미래 기계상의 모습에 심각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비록 그 방식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에도, 그의 퍼포먼스에 반응하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그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발하고, 괴음을 내고, 고속의 속도를 유발하고, 무서운 불꽃을 뿜는 기계들의 모습은 인간을 압살할 수 있는 힘의 상징 혹은 위협적 대상이다. 이와 같은 폭력기계들의 스펙터클 속에서 관객들은 공포를 통해 경고와 각성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물론 기계들의 폭력에 대한 단단한 준비,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조건까지 살핀다면, 폴린의 목적하는 바가 이뤄지는 셈이다. 참고 페이지 생존연구 실험실(SRL) http://www.srl.org 광고판 해방전선(BLF) http://www.billboardliberation.com/home.html 200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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