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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8/21
    생에 감사해(메르세데스 소사)
    지수
  2. 2008/08/19
    En Argentina-Enregistrement En Public
    지수
  3. 2008/08/09
    Brassed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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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8/09
    사랑의 아랑후에스
    지수
  5. 2008/08/09
    아랑후에스
    지수
  6. 2008/08/08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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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8/06
    아이를 씻기는 일(1)
    지수
  8. 2008/08/05
    '장기파업' 비정규직 "차라리 노숙인이라면…"
    지수
  9. 2008/07/28
    슬품이 거기 있었다
    지수
  10. 2008/07/26
    광폭(?)한 스타일의 웃음
    지수

생에 감사해(메르세데스 소사)

 

 
아르헨티나 가슴을 후빈, 아 1982년!

 

 

음악 메르세데스 소사 귀국 공연 음반으로

 

 목숨을 건 귀국이었다. 1982년, 군사정권이 종말로 치달으며 마지막 광기를 뿜어댈 때 메르세데스 소사는 망명 생활을 접고 3년 만에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귀국 뒤 소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연이었다. 역사적 명반 〈메르세데스 소사 엔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는 그렇게 태어났다.

‘대륙의 목소리’ 또는 ‘아르헨티나의 영혼’으로 추앙받는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아르헨티나 북부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안데스 색채가 가장 짙은 전통음악 중심지 투쿠만에서 태어난 것은 음악이 소사의 운명이란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원주민 혈통을 이어받은 소사는 이미 10대에 출중한 음악 재능을 선보였다. 1963년, 소사는 아르만도 테하다 고메스 같은 음악인들과 함께 ‘새로운 노래’란 뜻의 음악운동 ‘누에바 칸시오네로(최근에는 통합해서 ‘누에바 칸시온’으로 분류) 성명’을 발표한다. 이 선언은 조금 뒤에 등장하는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 쿠바의 ‘누에바 트로바’와 함께 이름처럼 남아메리카 음악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가혹한 식민지 시대가 끝났어도 경제 몰락, 그리고 군사쿠데타 독재정권의 학살이 되풀이되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사는 우리와 참으로 비슷해서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전통음악에 뿌리를 둔 이 ‘새로운 노래운동’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 권리의 소중함을 전달했다.

 

군부탄압 맞서다 공연장서 체포
망명 3년뒤 돌아와 28일간 공연
국민가수 목멘 노래 콧날 시큰

 

소사의 음악은 숙명적으로 군부 치하에서 처절하게 빛을 발했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진 군사정권 시절 동안 무려 3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되었을 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요주의 인물로 감시 대상이었던 소사는 1979년 공연에서 가난한 소작농들의 처참한 현실과 대지주들의 착취를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다가 관객 350명과 함께 공연장에서 체포됐다. 이후 소사는 스페인으로 망명을 떠난다. 남편마저 잃고 홀로 조국을 등진 소사는 평생 지병인 심장병을 얻는다. 2003년 예정됐던 내한공연이 취소된 것도 평생 소사를 괴롭힌 이 병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 음반은 이 소사가 귀국해 1982년 2월18일부터 28일 동안 연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담았다. 공연은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군부의 폭압 속에 숨조차 크게 못 쉬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돌아온 소사를 환호로 맞이했고, 소사는 영혼의 목소리로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조국으로 돌아온 소사의 감격, 그를 다시 맞는 관객들의 열광, 그리고 40대의 농익은 가창력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이 음반을 역사적 명반으로 이끌었다.

음반에는 ‘누에바 칸시온의 어머니’ 비올레타 파라, 쿠바의 국민가수인 실비오 로드리게스와 파블로 밀라네스까지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걸작들로 가득하다. 수록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삶에 감사합니다)를 부르며 노래 중간 목이 메는 소사의 모습에선 듣는 이의 콧날이 절로 시큰해진다.

소사는 곡을 쓸 줄 모르기에 평생을 남의 노래만 해 왔다. 그러나 원작자보다 더 뛰어난 노래를 들려줬고, 어둠의 시대에 희망의 빛을 던졌다. 우리가 소사의 노래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가사를 다 이해해서가 아니다. 그의 영혼에서 우러난 감동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인디오 외모의 노가수에게 추앙의 헌사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 음반에는 한 사람의 위대한 의지가 세상을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는 진리와, 국적과 인종, 종교를 초월한 감동이 담겼다. ‘시공을 초월한 명반’이란 말은 바로 이 음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송기철/음악평론가, 사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 출처 : 한겨레 신문

 

 

메르세데스 소사  : Gracias a la vida

 

 

생에 감사해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샛별 같은 눈동자를 주어

흑백을 온전히 구분하고,

창공을 수놓은 별을 보고,

무수한 사람들 틈에서 내 님을 찾을 수 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청각을 주어 밤낮으로 귀 기울여

귀뚜라미, 카나리아, 망치 소리, 물레방아, 소나기,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사무치게 사랑하는 임의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새기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소리와 문자를 주어

'어머니, 친구, 형제자매,

애모하는 영혼의 편력, 길을 비추는 빛' 같은

말ㄷ르을 떠올리고 표현할 수 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내 지친 발을 이끌어주어

도시와 시골길,

해변과 사막, 산맥과 평원,

그대 집과 거리와 정원을 순례하였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인류의 지성이 낳은 창조물을 볼 때,

악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선인을 볼 때,

그대 맑은 눈을 깊숙이 들여다볼 때마다

요동치는 심장을 주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웃음을 주고 울음도 주니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 재료인

즐거움과 고통을 구분할 수 있네.

당신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이고

모든 이의 노래가 바로 나으 ㅣ노래라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생에 감사해] 작사, 작곡 : 비올레타 파라

 

 * 출처 :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우석균)

 

비올레타 파라가 부른   Gracias a la vida

 

 

 

 

 

 

생에 감사합니다.  * 다른 번역본

 

 

개짖는 소리, 소나기 소리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이런 소리들을 밤낮으로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귀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가사합니다.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너의 집과 너의 길, 너의 정원을 걸었던
그 피곤한 나의 다리로 행진을 하게 한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열매를 볼 때
악에서 아주 멀리있는 선을 볼때
너의 맑은 두 눈의 깊이를 볼 때
그것을 알고 떨리는 심장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행운과 불행을 구별할 수 있게 한
웃음과 눈물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드립니다.
웃음과 눈물로 나의 노래는 만들어졌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노래이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입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allabio/11002220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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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Argentina-Enregistrement En Public

En Argentina-Enregistrement En Public

En Argentina-Enregistrement En Public

23년 만에 국내에 정식 공개되는 공연 실황 명반
MERCEDES SOSA / EN ARGENTINE- Enregistrement en Public (1982)

굳이 월드뮤직 애호가들이 아니더라도,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월드뮤직 분야뿐만 아니라 세계 음악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위대한 가수이다. 단지 노래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단순히 예술의 순수한 아름다움 이외에 아르헨티나 현대사를 비롯한 인간의 역사, 그리고 인종과 민족,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메르세세드 소사의 목소리와 그 노래 속에는 인생의 드라마가 함께 담겨 있다.

'라 아메리카 속의 유럽'이 불리는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듯 소사의 외모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이지만 그 속에는 원주민의 피와 유럽인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의 흥망성쇠를 몸소 체험하고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전설이자 상징이 바로 메르세데스 소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사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다. 40여 년 동안 펼쳐 보인 음악 인생 가운데에는 군사 독재 정부의 탄압과 망명, 그리고 목숨을 건 귀향이라는 숨가쁜 드라마가 있었고, 이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는 '건강'이라는 또다른 난관과 싸워야 하는 새로운 드라마가 있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정확하게 지구 중심을 기준으로 반대편이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조차 메르세데스 소사라는 이름에 경의를 표하고 그의 예술에 감동한다.

우리나라에서 메르세데스 소사의 이름이 대중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90년대 초반부터였을것이다. 당시 음반 'Gracias a la vida(삶에 대한 감사)'가 라이선스로 정식 발매되면서 일부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격찬을 들었고, 이후 90년대 말에 프란시스 카브렐(Francis Cabrel)과의 듀오곡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당신께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왔어요)가 우리나라 영화 '정사'에 삽입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곡이 수록된 베스트 음반이 'Best of Mercedes Sosa'라는 이름으로 공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메르세데스 소사가 세계적으로 얻었던 지명도를 놓고 볼 때 지금까지도 국내에 소개된 음반들은 수입 음반으로 간간이 소개된 일부 타이틀과, 2000년에 발매된 '미사 끄리올라(Misa Criolla; 미싸 끄리오야로도 불리며, 현지에서는 1999년 말에 발매)', 2003년에 공개된 'Acustico Ao Vivo(어쿠스틱 공연 실황, 현지 발매는 2002년), 그리고 2005년 초에 공개된 'Interpreta Atahualpa Yupanqui(아타왈빠 유빵끼 작품집, 1977),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해 가을 오랜만에 선보이는 스튜디오 레코딩 음반 'Coraz? Libre(자유로운 마음) 정도일 것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가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음반을 완벽하게 정리, 발표한 곳은 매우 드물며, 심지어 아르헨티나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 전부를 구하기란 매우 어렵다. 물론 메르세데스 소사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mercedessosa.com.ar)에 존재하는 디스코그라피는 공신력과 함께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수없이 존재하는 베스트 음반과 미공개 라이브 음원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1982년 '아르헨티나 공연(En Argentina) 음반을 기준으로 이전 음반은 현재 입수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하지만 1982년 이후 발매된 음반들과 1982년 이전 음반들 가운데 CD로 공개된 몇몇 음반들을 통해 메르세데스 소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과 예술을 이야기할 때 왜 1982년이 기준이 되는 것일까? 바로 이 해가 역사적인 공연인 메르세데스 소사의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 공연이 있던 해이자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명반 'En Argentina'가 발매된 해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생애와 예술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북부 뚜꾸만(Tucuman)에 있는 도시 산 미겔(San Miguel)에서 태어났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조부는 께추아(Quechua) 사람이었고, 조모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흔히 아르헨티나를'라 아메리카 속의 유럽'이라 부르지만, 뚜꾸만은 1812년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지명이며 현재까지 라틴 아메리카에서안데스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지리적으로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안데스 산맥으로 보자면 맨 아래에 자리잡은 아르헨티나 전통문화의 중심지가 뚜꾸만인데, 이 곳에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월드뮤직을 대표하는 두 명의 거장 - 음유시인 '아따왈빠 유빵끼(Atahualpan Yupanqui)' 메르세데스 소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로 넘기기엔 그 의미가 크다(1977년, 메르세데스 소사는 백인이면서 안데스 문화에 동화되어 평생을 안데스 전통 음악에 헌신한 이 거장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 음반 'Interpreta Atahualpa Yupanqui'로 담아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데뷔는 1965년 민속 음악 축제에서였다.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타악기 봄보(Bombo)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소사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고, 결국 메르세데스 소사는 필립스(Philips) 사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다. 이후 1967년부터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세계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순회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메르세데스 소사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정치 상황을 맞게 되고, 이것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일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전환점이 된다.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집권 기간동안 대외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영토를 되찾는다' 명분 아래 영국을 상대로 '포클랜드 전쟁' 일으켰다. 물론 이 전쟁은 군사정권의 정통성 확보라는 시급한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이었는데, 라틴 아메리카 여러 국가들은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추악한 전쟁이었음에도 아르헨티나의 영유권을 인정하며 '말비나TM 전쟁(포클랜드 전쟁을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르는 이름. 포클랜드 제도의 원래 이름이 말비나스 제도이다)' 심정적으로 동조했다. 그러나 이런 지지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결국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국민들은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정치, 경제, 그리고 심리적으로 참담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당시 해외 공연을 통해 아르헨티나 정치와 인권 상황을 해외에 알리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1979년, 결국 국내 공연 중이었던 메르세데스 소사를 관객들과 함께 체포한 뒤 영구 추방했고, 이후 메르세데스 소사는 스페인과 프랑스를 거점으로 더욱 활발한 무대 활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메르세데스 소사는 남편을 잃었고 건강에도 심각한 적신호가 켜지면서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1982년 2월, 결국 메르세데스 소사는 조국의 민중을 위해 노래할 것을 결심하고 목숨을 건 귀국 길에 올랐고,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에서 전설적인 공연을 갖게 된다. 이 공연은 단순한 대중 음악인의 공연 차원을 넘어, 전쟁을 통해 커다란 상실감을 가지고 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잠재해 있었던 군사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결국 1983년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 이후 예고된 최후를 맞았고, 이후 메르세데스 소사는 보다 활발한 음반 활동과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진정한 예술의 참된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음악적 동지였던 레온 히에코(Leon Gieco),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 순회 공연을 가지는가 하면, 존 바에스(Joan Baez)와 함께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순회하면서 한 무대에 함께 올라 'Garcias a la Vida(생에 대한 감사)'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망명 생활부터 고질병으로 안고 있던 심장 질환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예술 활동을 가로막았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997년과 2003년에 있었던 입원 사태였는데, 2003년의 경우는 9월 4일로 예정되어 있던 첫 서울 공연을 취소시킬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메르세데스 소사는 1998년 음반 'Al Despertar(잠에서 깨어나)' 발표하는가 하면, 숙제로 남아있던 아리엘 라미레스(Ariel Ramirez)의 작품 '미사 크리올라' 발표하면서 세계 음악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2002년 실황 음반 'Acustico en Vivo' 통해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세계에 알리고 있지만, 지금도 건강상의 이유로 장거리 비행이나 무리한 순회 공연은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2004년 9월로 예정되었던 내한 공연과 사상 최초의 아시아 순회 공연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었지만,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2005년 여름 새 음반 'Coraz n Libre(자유로운 마음)' 발표하기도 했다.

음반 'En Argentina(아르헨티나 공연 실황)'
'En Argentina'로 불리는 이 음반은 스페인 망명 생활을 하던 메르세데스 소사가 아르헨티나로 귀국하여, 1982년 2월 18일부터 28일 사이에 가진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 공연 중 하이라이트를 발췌한 것이다. 1982년에 더블 라이브 LP로 프랑스에서 먼저 정식 발매되었으며, 총 20곡을 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군부 독재 치하의 아르헨티나에서는 발매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프랑스 필립스에서 'En Argentine(LP번호 6636 351)'이라 프랑스어 제목을 달고 출시되었다. 프랑스 LP 버전 이외에도 이 음반은 다양한 버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현재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이 되는 폴리그램 라티노(PolyGram Latino)의 72분 짜리 타이틀(314 510 499 2)이 있으며, 이번 라이선스 음반의 음원이다.

아쉬운 것은 당시 수록 시간의 한계 때문에 오리지널 LP 레코딩에 수록된 'Soy pan, soy mas'와 'El Cosechero'가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 트로피칼(Tropical) 레이블에서 내수용으로 발매한 타이틀 'Live in Argentinien(발매 번호 680.916)'에는 오히려 이 두 트랙이 수록되어 있지만 'Alfonsina y el mar(알폰시나와 바다)를 비롯한 다른 네 곡이 삭제되면서 역시 한 장의 CD로 발매되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발매된 음반들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폴리그램 라티노에서 발매된 타이틀이 CD 시대의 공식 음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 국내에서 발매되는 이번 라이선스 음반은, 세계 최초로 발매된 프랑스 LP 발매반의 표지 그림과 공연 사진을 사용해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깝게 발매되는 세계 최초의 CD이기도 하다.

음반 수록곡의 원작자들을 살펴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권에서 정평이 나 있는 작곡가와 가수들의 곡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 비올레타 파라(Violetta Para), 레온 히에코(Leon Gieco), 아타왈빠 유빵끼(Atahualpa Yupanqui), 아리엘 라미레스(Ariel Ramirez),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등, 모두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지명도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강렬하고 힘있는 특유의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이 음반의 최고 백미는 side 2 첫 번째에 담겨 있으면서 가장 많이 알려지기도 한 [인생에 대한 감사(Gracias a la Vida)]일 것이다. 국내 라이센스에 소개된 음반 타이틀이기도 하며, 이 곡을 작곡한 비올레타 파라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곡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곡목이 '인생에 대한 감사'이기 때문일까. 물론 소사에게는 더더욱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군부독재를 피해 스페인 망명생활을 하다가 다시 밟은 고국 땅에서 부르는 '인생에 대한 감사'. "그래서 나는 삶에 대해 감사하고 또 이렇게 여기서 노래를 부릅니다"라 후반부 가사가 흐를 즈음이면 소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고, 관중들을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박수소리는 점점 커지고 소사의 목소리는 점점 흐느끼면서 진실로 삶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비올레타 파라의 원곡에서도 느끼기 힘든, 존 바에즈 또는 마리아 파란두리(Maria Farandouri)가 부른 라틴 리듬의 곡이나 그라시엘라 수잔나(Graciella Suzanna)의 버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소사의 목소리에 담겨 있다.

여류 시인 알폰시나 스트로니(Alfonsina Stroni)의 이야기를 담은 펠릭스 루나(Felix Luna) 작사, 아리엘 라미레스 작곡의 '알폰시나와 바다(Alfonsina y el Mar)' 역시 이 음반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다. 라미레스-루나 콤비는 '미사 크리올라(Missa Criolla)' 비롯해 '남미 칸타타(Cantata Sudamericana)' 등으로 이어지면서 메르세데스 소사와 함께 운명적인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아따왈빠 유빵끼의 '자매들(Los Hermanos)', 아르헨티나 포크와 록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레온 히에코의 'Solo le pido a dios(신에게 단지 원하는 것은)'에서는, 원작자 레온 히에코가 기타 반주와 하모니카를 맡아 연주하고 있다. 물론 곡 중간에 레온 히에코의 목소리와 함께 소사의 감사 인사를 생생한 실황으로 들을 수 있다. 이외에도 찰리 가르시아 역시 직접 출연하여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처럼 화려한 라인업과 함께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역사적인 명반 '아르헨티나 공연 실황'이다.

월드뮤직 애호가들에게는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역사적인 명반으로 평가받는 '아르헨티나 실황 공연'이지만, 글쓴이에게는 개인적으로 여러 추억이 담긴 음반이기도 하다. 글쓴이가 이 음반, 특히 이 음반의 표지로 사용된 프랑스 LP를 구했던 겨울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술에 취해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번이고 미끄러지면서도 행여 이 LP 음반이 깨어질세라 꼬옥 끌어안고 오던 기억이 새롭다. 술에 취해 미끄러졌는지, 길거리에 쌓이는 눈 때문에 미끄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집으로 들어가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길에 미끄러지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했던 기억...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에 '인생에 대한 감사' - 'Gracias a la Vida' 걸어놓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던 것은, 분명 소사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 소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나 싶다.

(글: 황우창)

 

앨범 수록곡

1. Drume Negrita
2. Sueno Con Serpientes

3. Maria Va

4. Al Jardin De La Republica

5. Gracias A La Vida

6. Alfonsina Y El Mar

7. Como La Cigarra

8. Solo Le Pido A Dios

9. Flor Azul

10. Hermanos

11. Arenosa

12. Anos

13. Mareados

14. Cuando Ya Me Empiece A Quedar Solo

15. Volover A Los 17

16. Fuego En Anymana

17. Polleritas : Pollerita Colorada / Carnavalito Del Duende/Pollerita

18. Cancion Con To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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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ssed off

브래스트 오프

 

    

Brassed off(1996)

 

Brassed off 는 우리말로 하면 열받는, 뚜껑 열린같은 속어이다.

무엇이 그들을 열받게 했을까?

 

1979년 보수당의 승리고 마거릿 대처수상이집권을 시작했다.

그녀는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요성에 입각해 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효율성이 나지 않는 탄광을 닫는 일.

 

작품의 가상의 탄광촌 주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힘든 일 속에서도 '그림리' 밴드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연주를 하던 탄광 주민들은

앞으로 닥칠 현실 때문에 자신들의 밴드에 열정을 잃게 된다.

 

하지만  남자들만 득실대던 밴드에 금발의 글로리아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역전된다.

하지만 밴드의 리더 대니의 진폐증으로 다시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대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밴드의 멤버들을 감동시키게 되고

결국 런던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출처] http://blog.naver.com/lcsj104/1003164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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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크 허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앤디 역) 타라 피츠제랄드 (글로리아 역)
음악 트레버 존스 (Trevor Jones)

줄거리 : 1992년 북부 요크셔의 작은 탄광촌, 보수당 정부가 전격적인 폐광 정책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 지방의 탄광 밴드는 다가오는 전국 대회를 위해 연습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밴드가 있고, 특히 밴드 리더인 대니(Danny: 피트 포슬쓰웨이트 분)의 밴드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대니에게 있어 음악이란 탄광이 정신을 구현해 주는 것이며 그 마을 사람들의 생명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폐광으로 인해 실업이 널리 확산됨에 따라 그의 동료들은 밴드에 대한 열정을 잃게 된다.

 그러던 중 금발의 글로리아(Gloria: 타라 피츠 제랄드 분)가 탄광촌에 도착, 밴드에 가담하자 그들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된다. 사실 그녀는 그 밴드의 전설적인 지휘자였던 아더 멀린즈의 아름다운 손녀이자 밴드의 전설적인 지휘자였던 아더 멀린즈의 아름다운 손녀이자 밴드 멤버 앤디(Andy: 이완 맥그리거 분)의 어린 시절 연인으로, 밴드가 아니라 직업 때문에 10년 만에 고향을 찾은 것이다. 글로리아의 재능과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순회 경연대회가 시작될 무렵 밴드에는 새로운 열정이 물결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열기는 글로리아가 영국 광산 협회가 경제성 조사를 위해 파견한 감정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격히 식어버리고, 앤디와 글로리아의 관계 역시 위태로와 진다.

 이런 긴장 속에서도 그림리 브라스 밴드는 전국 준결승전에서 우승을 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폐광이 결정된 충격으로 열패감에 쌀에 움츠러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평생을 탄광에서 일한 대니는 진폐증으로 쓰러져 건강이 위대롭게 되고, 1984년 광부들의 파업으로 수감됐던 그의 아들 필(Phil: 스티븐 톰킨슨 분)은 가족, 가정, 일, 살아겠다는 의지 등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나 진폐증으로 급격히 무너져 가는 대니를 바라보는 단원들은 그로인해 음악을 계속할 자극을 받게되고 반항정신을 회복한다. 게다가 뜻밖의 후원자의 도움을 얻게 된 광부들은 대니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런던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가하가로 하고 다시 모인다. 마
침내 그들은 마을을 대표하는 대서로서 자신들의 사정을 대외에 알릴 승리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Brassed Off - Rodrigo's Concierto de Aranjuez

 

 

William Tell Overture from "Brassed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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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아랑후에스

Joaquin Rodrigo (1901-1999)

Aranjuez Con Tu Amor(사랑의 아랑후에스)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호아킨 로드리고의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작품 개요 & 배경

1939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썼다.
이 곡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 중 하나가 됐다.
로드리고가 기타협주곡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친구인 에스파냐의 거장급 기타리스트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1897-1982) 때문이다.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협주곡>은 사인스 데 라 마사의 기타 독주로 1940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됐다.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연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처음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청중과 비평가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 남방 72km 정도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이다.
그 궁전은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마하스(젊은 여인들)와 투우사, 그리고 중남미의 선율로 특징지을 수 있는', 나폴레옹 이전의 마지막 두 왕들이 살던 시대를 '아랑후에스'의 생명 속에 다시 불러들이고자 한 것이 이 곡의 의도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이 지닌 최대 강점은 에스파냐라는 나라와 에스파냐의 민족유산을 음악으로 멋지게 그려냈다는데 있다.
에스파니아 민속악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를 사용해 지중해 생활의 색깔, 분위기, 멜로디, 그리고 발랄함이 커다란 슬픔으로 돌변하는 역설을 용케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드리고의 기타 협주곡 "아랑훼즈"를 작곡자 자신이 하프 협주곡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로드리고는 작곡을 하면서 꿈 속에서 하프를 날개로 달고 피아노를 꼬리로 하며 기타를 혼으로 간직한 환상적인 악기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친구인 명 하프 연주자인 자바레타를 위하여 편곡한 이 곡이 바로 이 환상적인 악기의 날개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작품해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트럼펫과 호른)를 위한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매우 아름답다.

제1악장 :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Allegro con spirito
소나타의 전통적인 형식을 갖춘 이 악장은 중부 에스파냐의 명랑한 구애의 민속춤 판당고를
연상시킨다. 제1악장은 기타가 잔잔한 저음을 배경으로 깔면서 시작된다.
첫 악절에서는 그 악장 전체를 흐르는 리듬을 제시한다.
6개의 8분음표가 3박 2개(이 악장의 기본 박자인 6/8박자)나 2박 3개(아래 두번째 마디에서 보이듯이 3/4박자)로 나뉜다
.

 

 



제2악장 : 아다지오Adagio
작곡가의 아내인 카르미는 이를 가리켜 ‘허니문의 행복을 담은 사랑의 노래’라고 했으며,
로드리고 자신은 ‘기타와 잉글리시 호른이 나누는 애수의 대화’라고 칭했다.
잉글리시 호른의 애잔한 선율이 그리움과 우수로 가득찬 향수를 자아낸다.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사랑의 아랑후에스 (Aranjuez Mon Amour)' 등이 유명하다.

제3악장 : 알레그로 젠틸레 Allegro gentile
마지막 이 악장에는 궁정의 우아한 분위기가 흐른다.
B장조로 시작되는 기타독주가 힘찬 2부 대위법으로 즉각 론도주제를 제시한다.
이어 2/4박자와 3/4박자의 마디들이 불규칙하게 번갈아 나오면서 세기와 박자를 변형시켜,
제1악장의 당김음 리듬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오케스트라가 이 주제를 신속히 재현하는데 이때는 D장조를 취한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의 남쪽 72km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인데,
고원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스페인 굴지의 유명한 정원으로 알려진 곳으로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1938년 로드리고가 아랑후에스의 별궁을 방문했을 때 부근에 거주하는 집시들의
생활 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현악기와 목관악기, 금관악기(트럼펫·호른)를 위해 만든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전체적으로 흐르는 선율이 무척 아름답다. 1940년 말에 완성되었고,
그 해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되었다.

오케스트라와 기타를 협연하는 데 문제가 따를 것으로 우려되어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크게 성공하여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이 되었다.
또한 음량이 작아 소품연주에만 쓰이던 기타의 영역을 넓혀 주요 협주악기의 하나로 자리잡게
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되었다.

전 3악장(1악장:알레그로 콘 스피리토,2악장:아다지오, 3악장:알레그로 젠틸레)으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기타를사용하여 지중해 생활의 색깔·분위기·멜로디를 멋들어지게
그려냈고, 4대의 기타를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 Concierto andaluz》과 함께 로드리고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전체적으로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을 잘 살려 스페인 무곡적인 리듬의 기타독주가 오케스트라의
여린 지속음에 받쳐져, 유명한 아랑후에스 별궁의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특히 잉글리시호른의 애수 띤 향수에 젖은 테마가나타나는 제2악장은 유명하여
단독으로 자주 연주되며, 또《사랑의 아랑후에스》라는 제목의 팝 음악으로도 편곡되었다 .


      로드리고 - 사랑의 아랑후에스(En Aranjuez Con Tu Amor)
      Aranjuez, un lugar de ensueños y de amor Donde un rumor de fuentes de cristal En el jardin parece hablar En voz baja a las rosas Aranjuez, hoy las hojas secas sin color Que barre el viento Son recuerdos del romance que una vez Juntos empezamos tu y yo Y sin razón olvidamos Quizá ese amor escondido esté En un atardecer En la brisa o en la flor esperando tu regreso Aranjuez, hoy las hojas secas sin color Que barre el viento Son recuerdos del romance que una vez Juntos empezamos tu y yo Y sin razón olvidamos En Aranjuez, amor Tu y yo
    아랑후에즈, 사랑과 꿈의 장소 정원에서 놀고 있는 크리스털 분수가 장미에게 낮게 속삭이는 곳 아랑후에즈, 바싹 마르고 색 바랜 잎사귀들이 이제 바람에 휩쓸려 나간 그대와 내개 한때 시작한 후 아무 이유없이 잊혀진 로망스의 기억이다 아마도 그 사랑은 여명의 그늘에 산들 바람에 혹은 꽃 속에 그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숨어 있나보다 아랑후에즈, 바싹 마르고 색 바랜 잎사귀들이 아랑후에즈, 내사랑 그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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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후에스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아랑후에스
조락(凋落)의 정원
주말의 명화 시작을 알리던 그 선율 아랑후에스협주곡 庭園도시 휘감고…
마드리드 왕족의 휴식처였기에 아름답다기보다 예쁘게 꾸며진 정원
왕자의 정원 걷자니 꿈인지 생신지 협주곡서 풍경이 튀어나온 듯 황홀경

 

아기자기한 조각으로 장식된 아랑후에스의 한정워.

아랑후에스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인공적인 정원이 이어져 있다.

 

내 눈에 비친 아랑후에스는 정원의 도시였다. 왕궁에서 나와 여왕의 거리(카예 델라 레이나)를 끼고 걷자니 왼편으로 하염없이 정원이 이어졌다. 그것은 아랑후에스가 대단히 인공적인 도시라는 뜻이었다.

모든 도시는 인공의 소산이지만, 아랑후에스는 사람의 손길로 자연마저 인공화한 도시였다. 그러니까 아랑후에스는 그저 아름다운 도시라기보다 예쁜 도시였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중세 이전부터 이 지역에 도시 비슷한 취락 형태가 존재하긴 했으나, 아랑후에스가 본때 있는 도시로 출발한 것은 16세기에 왕궁과 정원이 들어서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의 국왕과 왕족들이 쉬고 즐기러 오는 곳이었고, 그래서 이 도시의 자연은 인공적으로 아름다워야 했다. 다시 말해 그저 아름다운 것을 넘어 예뻐야 했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주에 속해 있다. 수도 마드리드를 스쳐 남으로 흐르는 하라마강이 아랑후에스에서 타호강에 합류한다.

 

정원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으므로, 친구들과 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 거기서 출발하는 치키트렌을 타기로 했다. 관광객 티를 내기로 한 것이다. ‘치코’(꼬마, 작은)와 ‘트렌’(기차)을 합쳐서 만든 말일 치키트렌은 아랑후에스의 정원 대부분과 주택가 일부를 도는 꼬마기차다. 생김새는 놀이공원의 기차를 닮았으나, 철로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놀이공원의 기차보다도 더 자유분방하다.

 

우리는 그 자유분방한 기차를 타고 정원의 도시를 주마간산 격으로 훑었다. 숲속에는 가을이 한결 깊어져 있었다. 치키트렌이 아폴로의 샘(푸엔테 데 아폴로)에 이르렀을 때, 소풍 나온 듯한 초등학생 한 무리가 보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을 떠올렸다. 다녀오고 나면 허전하기만 했던 그 소풍이 그 시절엔 왜 그리 기다려졌던지 모르겠다. 서울이나 그 둘레에도 이리 예쁜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동구릉이나 서오릉은 문득 아름답긴 했으나 예쁘진 않았다. 아니 넉넉히 아름답지도 않았다. 내 발길이 닿은 조국의 풍경은 충분히 자연적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충분히 인공적이지도 않았다.

 

“결혼식을 이 정원에서 올려야겠어.” 독신 친구 하나가 실없는 소리를 농했다. 그저, 이 정원의 예쁨에 대한 찬사였으리라. “언제 할 건데?” 늘 진지한 기혼 친구가 거기 대꾸해 주었다. “예순 살이 되면.” 그러고 나서 그 둘은 그 혼례에 초청할 하객의 이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결정되지 않은 것은 예비 배우자뿐이었다.

 

다른 독신 친구가 <아랑후에스협주곡>을 흥얼거렸다. 나도 따라 읊조렸다. 그라나다에서 아랑후에스로 차를 몰면서도 우리는 리플레이 상태로 이 곡을 계속 틀어놓았었다.

 

그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었으나, 아랑후에스라는 도시로 들어가는 하나의 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아랑후에스에 들르기로 결정한 것도, <알람브라궁전의 추억>과 한 시디에 실린 <아랑후에스협주곡>에 촉발돼서였다. 농부의 집(카사 델 라브라도르) 앞에서 치키트렌이 잠시 쉬었다.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산책을 권유했다.

 

농부의 집에서 여왕의 거리 쪽으로 펼쳐진 왕자의 정원(하르딘 델 프린시페)을 걷자니 눈앞 풍경의 현실성이 흐릿해졌다. “꿈결일까?” <아랑후에스협주곡>을 계속 흥얼거리는 친구에게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현실이야.” 그가 흥얼거림을 멈추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렸다. 초목의 조락 속에서도 아랑후에스의 정원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이 이 풍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풍경이 그 음악 속에서 튀어나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피겨스케이터들이 배경음악으로 가장 선호하는 선율 가운데 하나다. 미국인 여성 피겨 스케이터 미셸 콴은 2003년 워싱턴 세계피겨스케이팅대회에서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川井郁子)의 연주에 맞춰 펼친 연기로 생애 다섯 번째 세계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마키무라 사토루라는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 <사랑의 아랑후에스>도 얼음판 위에서 이 협주곡을 몸으로 재현하는 것이 소원인 여성 피겨스케이터 얘기를 그리고 있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본디 클래식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호아킨 로드리고가 1939년 파리에서 썼고, 이듬해 11월9일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음악궁에서 초연됐다. 이 곡은 세 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에서 시작해 아다지오를 거쳐 알레그로 젠틸레로 끝난다. 그 가운데 사람들 귀에 가장 익숙한 것은 기타가 잉글리시호른(이나 다른 솔로 악기)과 버무려지는 제2악장 아다지오다. 기 본템펠리가 거기 가사를 붙여 샹송으로 유명해진 <내 사랑 아랑후에스(아랑후에스, 모나무르)> 덕도 있을 게고, 영화나 광고에 흔히 삽입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제2악장인 덕도 있을 게다.

 

B-마이너를 주조로 삼은 이 악장은 친구들과 내가 아랑후에스에서 걷고 있는 이 조락의 정원과도 꼭 어울린다. 신록의 정원이나 무성(茂盛)의 정원도 그것대로 맛은 있겠으나, 그것들은 아다지오의 정원이 아니다.

재즈의 전설로 불리는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에서 시작해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 클라리네티스트 장-크리스티앙 미셸, 재즈 키보디스트 칙 코리어, 기타리스트 버킷헤드 등 다양한 지역적 배경의 특급 연주자들이 갖가지 악기와 분위기로 <아랑후에스협주곡>을 거듭 해석했다. 그 덕분에 <아랑후에스협주곡>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선율 가운데 하나가 됐다.

 

파리에서 쓰긴 했지만, 작곡자가 <아랑훼스협주곡>에 불어넣은 분위기는 그 제목이 드러내듯 아랑후에스 왕궁과 그 둘레 정원의 것이다. 16세기 펠리페2세 시절에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와 후안 데 에레라의 설계로 세워진 이 왕궁은 그 뒤 몇 차례의 화재로 흉한 모습을 보였다가 페르난도6세 때인 1778년 오늘날 형태로 완공됐다.

 

아랑후에스 궁전은 전통적으로 스페인 국왕이 봄에 머무르는 별궁 노릇을 했다. 거기 딸린 널찍하고 미려한 정원들은 합스부르크왕조 시대 스페인 문화의 아치(雅致)를 한껏 뽐낸다.

 

한 때 아랑후에스는 국왕의 친척들이 주로 사는 왕족의 도시였다. 그 점에서 프랑스의 베르사유를 설핏 닮았는데, 아닌게아니라 왕자의 정원 끝머리에 들어선 또 다른 별궁 ‘농부의 집’은 전형적인 베르사유 풍이다. 이 궁전이 농부의 집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본디 이 터가 아랑후에스의 돈 많은 농부 소유였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파리에서 <아랑후에스협주곡>을 쓰기 한 해 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만든 선율은 그 짧은 체류에서 잉태됐다. 작곡자 자신이 이 협주곡의 제재로 아랑후에스궁 정원의 목련 향기와 새들의 지저귐, 분수 소리 따위를 거론한 바 있다.

 

로드리고는 자신이 아랑후에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는 세 살 때 디프테리아를 앓고선 시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작품이 너무 유명해지면, 그 주제와 제재를 놓고 온갖 해석이 뒤따르는 법이다. <아랑후에스협주곡>도 그랬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제2악장 아다지오를 두고는, 이 선율이 만들어지기 두 해 전 독일 공군이 자행한 게르니카 폭격과의 연관을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로드리고는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디난도 카룰리와 더불어 클래식기타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의 기타 솜씨는 볼품없었다 한다. 그 대신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룰 줄 알았고, 특히 피아니스트로서는 거장이라 이를 만했다. 터키 출신의 아내 빅토리아도 피아니스트였다.

 

1991년, 로드리고는 후안 카를로스 국왕으로부터 ‘아랑후에스 정원 후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말할 나위 없이, 그가 <아랑후에스협주곡>의 작곡자라는 사실과 관련 있는 작위다.

 

로드리고는 1999년 마드리드에서 작고했다. 1901년 생이니, 그의 삶은 20세기와 거의 고스란히 포개진 셈이다. 로드리고와 아내는 아랑후에스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아랑후에스는 로드리고가 태어난 곳도 죽은 곳도 아니고(그는 발렌시아주 사군토 출신이다), 오래 머문 곳도 아니었지만, 그가 이 도시에 묻히는 것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처럼, 아랑후에스에도 카페마다 (일종의) 슬롯머신이 있었다. 철학자는 도박에 다소의 취향과 재능이 있는 친구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저 유명한 도박 중독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취가 남아있는 바덴바덴에까지 진출해 제 운을 시험해 보았다 한다.

 

그의 꿈 하나는 바덴바덴에 다시 가서 돈 걱정 없이 질릴 때까지 도박을 해보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철학자는 우리가 카페에 들를 때마다 슬롯머신 앞에 앉아 제 재능과 운을 시험했다.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우리 찻값 정도는 버는 게 예사였다. 아랑후에스의 한 카페(아일랜드식 커피와 맥주를 파는 ‘더블리너’라는 곳이었다)에서도 그는 슬롯머신 앞에 앉았는데, 이번엔 딴 돈이 우리 주전부릿값을 사뭇 웃돌았다. 그 집을 나오면서, 마치 무전취식이라도 한 듯해 좀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라나 베르데’라는 식당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했다. 레스토랑 이름은 ‘녹색 개구리’라는 뜻이었지만, 우리가 거기서 개구리를 먹은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경멸의 뜻을 담아 프랑스인들을 ‘개구리 포식자(frogeater)’라 부른다고 하는데, 스페인 사람들도 개구리를 먹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녹색 개구리’에서 연어와 안심을 먹었다. ‘녹색 개구리’ 식당의 창 밖으로 타호강이 내려다보였다. 아랑후에스는 타호강의 발원지에서 멀지 않다. 이 강은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흘러 거기서 대서양과 만난다. 리스본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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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4만 5125명(2004)이다. 라만차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타호강() 좌안의 비옥한 평야지대에 있다. 아랑후에스 근처에서 타호강과 하라마강()이 합류한다. 로마시대에는 아라요비스라고 불렸으며,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산티아고 기사단의 본거지였다. 16세기 펠리프 2세 시대부터 왕령지가 되었으며 그곳에 J.B.톨레도와 J.에레라가 별궁을 건축했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손실을 입은 뒤, 1778년 완공되었다. 왕궁에는 진귀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왕실의 사냥터 별장이 있으며, 왕족들의 여름철 거주지였는데, 현재는 마드리드 거주자들에게 인기있는 휴양지가 되었다. 1808년 카를로스 4세가 세운 라브라도르성()은 프랑스베르사유 궁전과 매우 비슷하다. 1808년 이곳에 연금되었던 페르난도 왕자(후에 페르난도 7세)가 아랑후에스 민중의 반()고도이 봉기에 의해 국왕에 옹립되었고, 그의 부친 카를로스 4세는 스스로 퇴위하였다.

마드리드-알리칸테 철도와 마드리드-안달루시아 철도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 산업이 발전하여, 화학제품·금속제품·직물 등의 제조업과 과일 저장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작물로는 아스파라거스와 딸기가 주로 재배되고, 말이 사육된다. 도시는 격자형으로 곧고 넓은 도로가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북쪽 45㎞ 지점에 있는 마드리드로의 통근도 가능하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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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누군가의 구두발이 저렁이 한 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발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들만의 단란한 식탁에서 환히 웃고 있으리라

 

지렁이 한 마리가 포도에서 으깨어진 머리를 들어

 

간신히 집 쪽을 바라보는 동안

 

 

 

          - 이시영, [귀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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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씻기는 일

밥먹이는  거, 목욕시키는 거, 놀아주는 거, 재우는 거,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그러나 매일 씻겨줘야 하는 아이를 생각할 때, 매일 하루에 한차례씩 해야 하는

목욕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뭘 모를 때였서 그랬는지 별 어려움이 없었다.

목욕통에 앉히면 앉히는 대로, 씻기면 씻기는 대로 몸을 맡겼다. 특별히 힘들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물통에 앉아 있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울고 불고, 난리에 난리를 치는 통에 자기 직전에 하는 씻는 일이 전쟁이었다.

하루에 쏟는 눈물의 대부분을 목욕을 하면서 쏟았다.

 

그래서 작전을 하나 썼는데 대성공이었다.

 

물 속에서 가지고 놀 장난감을 준비하고,

한명은 딴 데 신경을 쓸 여지가 없도록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또 한명은 애가 딴 데 신경을 쓰는 동안 목욕을 시켰다.

두어 번 그렇게 했더니 자연스러워졌다.

아니, 요즈음은 오히려 장난치며 목욕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손으로 물장난을 치며 연신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특히, 목욕탕에 같이 들어가 씻는 일은 엄마 아빠의 경쟁이 치열하다. 

 

 

 

 

광주 외가에서.

 

 

아빠와 함께!

 

 

엄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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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파업' 비정규직 &quot;차라리 노숙인이라면…&quot;

'장기파업' 비정규직 "차라리 노숙인이라면…"

 

이랜드·코스콤·KTX 조합원의 35.9%가 "죽고 싶다"

 

 

어쩌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래서 누구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일반인보다 무려 8배나 정신질환 의심자의 비율이 높고, 외환위기 직후 크나큰 충격과 실의에 거리로 나온 서울역 노숙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정신 건강 상태를 갖고 있다"는 새삼스런 진실은 '그렇구나' 고개 끄덕이고 넘어갈 만큼 사소한 일은 아니었다.
  
  바로 이랜드, 코스콤, KTX·새마을호 승무원의 얘기다. 이들은 모두 짧게는 300일에서 길게는 900일 가까이 오랜 시간,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업장의 울타리에 관계없이, 남녀에 관계없이, 그 나이에 관계없이 이들은 모두 "자주 우울하거나",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샤워를 하다가도 울컥 눈물이 난다"고 했다.
  
  노동건강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5일 발표한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참담했다."
  
  치료 필요한 '질환의심군' 18.3%…주의 필요한 '관리대상군' 35%
  

▲ 조사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관리대상군'의 비율은 무려 35%에 달했다. 일반인에 비해 2.2배가 높았다. ⓒ프레시안

  노동건강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이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이랜드일반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 KTX·새마을호 승무원 등 파업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대로 한 정신건강 상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120명, 조사 기간은 지난 7월 21일부터 25일까지였다.
  
  장기 파업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에는 당초 파업 1000일을 넘긴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도 대상에 포함시키려했으나, 조사 기간 중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단식을 벌이고 있어 불가피하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사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관리대상군'의 비율은 35%에 달했다. 일반인에 비해 2.2배가 높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질환의심군' 비율은 18.3%로 일반인보다 무려 7.3배가 많았다.
  
  이는 이들 단체가 지난 1999년 외환위기 직후 명예퇴직 등으로 거리로 쫓겨 나온 서울역 노숙인을 상대로 한 정신건강 조사보다 심각한 결과였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산업의학 전문의)은 "현재의 장애 수준 혹은 심도를 나타내는 지수인 GSI(Global Severity Index, 전체심도지수)를 보면 조사 대상자 평균은 55.8로 서울역 노숙인 평균인 54.7보다 높았다"며 "사회적 배제와 차별 속에 심각한 소외감을 느꼈던 노숙인보다 장기 파업 비정규직의 정신건강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노동조합별로는 가장 오래 파업을 벌인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이 제일 심각했다. 전체의 21.9%가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코스콤 비정규직(19.5%), 이랜드 비정규직(14.9%)도 응답한 조합원의 15~20%가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죽고 싶다" 전체의 35.9%…일반인의 2배
  
  구체적으로는 우울증, 강박증, 적대감, 신체화 증상이 일반인에 비해 유독 높았다. 응답자의 96.6%가 "매사에 걱정이 많다"고 대답했고,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막히는 기분"이라는 사람도 93.1%나 됐다. KTX열차승무지부 오미선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파업이 길어지면 사업장은 달라도 하는 일은 다 비슷하다. 점거, 단식 아니면 어디에 올라가고…. 몇 일을 굶느냐, 어디를 점거하느냐만 다를 뿐이다. 3년간 몇 차례나 다 해 봤던 일이다. 그런데 안 됐다. 또 하자고 하면 조합원들 반응은 '그거 해서 정말 되는 거야? 안 되면?'이다. 울고 싶어도 마땅히 울 공간도 없다. 화내고 싶어도 화 낼 사람이 없다. 자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면 울고, 샤워하다가도 눈물이 난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응답한 이들도 전체의 35.9%나 됐다. 이상윤 사무국장은 "일반인의 자살충동 평균치가 19%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인보다 2배 가량 높은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는" 적대감 증상도 전체의 95.8%에서 나타났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가는 신체화 증상도 도드라졌다. 응답자 대부분이 머리가 아프거나(85.6%), 근육통 또는 신경통에 시달렸고(82.5%), 허리가 아프다고 느꼈으며(82.3%), 어지럽거나 현기증을 호소하는 사람(77.6%)도 많았다.
  
  특히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에서는 신체화와 대인예민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이날로 파업 329일 째인 이들이 그 시간 내내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상윤 국장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여의도 한 복판에서 장기간 노숙 생활로 인해 주위의 시선에 신경을 쓰게 되거나 몸이 아프고, 분노, 공격성, 울분 등이 쌓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느 날, 돌아보니 6살 아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내가 있었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프레시안

  이날 사례 증언을 위해 나온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의 말은 이들이 겪고 있는 내부의 고통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우울증 진단을 받고 현재 3주째 치료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우울증인 것 같다"고 얘기하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부터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주위에서 치료를 권할 때마다 '내가 냉정함을 유지하고 통제하고 있는데 왜'라며 한 귀로 듣고 흘렸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에게도 '자각 증상'이 나타났다.
  
  "어느 날, 아파서 하루 연락 없이 못 나온 노조 간부에게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떠나라'며 화를 내는 나를 봤다. 촛불시위에서 노조 재정 사업을 위해 생수를 파는데 '너무 힘들다'며 오늘은 그만하자는 한 조합원에게 '내가 다 할 테니 집에 가라'며 신경질을 낸 적도 있었다."
  
  일상적인 일에서 거칠게 화를 표출하는 것 외에도 집안 가구 배치를 수시로 바꾸는 증상도 나타났다.
  
  "작은 원룸에 살고 있는데 3일에 한 번씩 온 집을 뒤집어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곤 한다. 작은 물건들도 완벽하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다 문득 돌아보면 온 집안이 난장판이 돼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6살 난 아들에게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시킨 일이었다. 김 위원장은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폭발장애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투쟁의 전망은 날이 갈수록 불확실한 듯 보이고, 수십 명이 해고되고, 수십 명이 수배를 당하거나 체포되고 수백억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걸려 있었다"며 "아내까지 이혼을 얘기하며 가족마저도 안 도와준다 싶으니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고 증언했다.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과 '결과에 대한 불안감'
  

▲ 이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은 노동조합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41.7%가 본인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로 경제난을 꼽았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300일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프레시안

  이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은 노동조합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41.7%가 본인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로 경제난을 꼽았다.
  
  조합원의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으로 한 가정의 가장도 상당수인 코스콤 비정규직과 40~50대 여성이 대다수인 이랜드 비정규직은 특히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통 호소가 눈에 띄게 높았다. 각각 39%와 66% 수준이었다.
  
  "조합원들 가운데 경제적 문제로 인해 이혼을 당하거나 아내가 갑자기 집을 나간 사람도 많다. 애초에 비정규직이었으니 저축해 놓은 돈도 별로 없었지만,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20평 아파트를 10평 남짓으로 줄여가면서 울었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이렇게 말하며 코스콤비정규직지부 정인열 부지부장은 울컥 쏟아지는 눈물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영역 2위는 파업의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27.1%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파업의 끝이 과연 장밋빛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이들을 지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3년이 됐든, 5년이 됐든 이길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이라는 정인열 부지부장의 말은 그런 고통에 대한 토로였다.
  
  3위로 나타난 것도 비슷했다. 그것이 복직이든, 포기이든 파업이 종료된 뒤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전체 응답자의 16.2%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KTX 승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뎌 2년 반을 일하고 3년 파업 중인" KTX 승무원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불안감이 43.8%로 가장 컸다.
  
  주위의 시선도 이들이 털어놓은 고통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서울역에서 농성 중인 오미선 KTX승무지부 지부장은 "농성장 부근에서 혹여 대학 동기나 친구를 만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혹 아는 사람을 만나면 수치스러워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말했다.
  
  "개인적 원인 아닌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질병…해법도 그로부터"
  
▲ 물론 당장 나타나는 증상의 치료도 시급하지만, 그보다 이들의 '마음의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때문에 "사회적 해법의 모색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사진은 서울역에서 다시 농성을 벌이고 있는 KTX 승무원의 모습. ⓒ프레시안

  이 두 단체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해당 비정규직에게 정신과 전문의의 면담 및 상담, 치료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당장 나타나는 증상의 치료도 시급하지만, 그보다 이들의 '마음의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때문에 "사회적 해법의 모색"이 강조됐다.
  
  또 이날 드러난 결과는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1년 이상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소위 '장기 투쟁 사업장'은 60여 곳에 이른다. 더욱이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이미 850만 명 시대다.
  
  이들 가운데 또 다른 누군가가 대규모 계약해지와 외주화 등에 맞서 또 다른 곳에서 파업을 시작하고, 장기간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또 마음의 병을 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역시 이상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해선 안 된다"
  
  
이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상윤 사무국장은 조심스러워했다.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하면 곧 "미쳤다"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 때문이었다.
  
  혹여 이번 조사 결과가 "저 사람들은 역시 이상한 사람들이라서 저렇게 오랫동안 파업하는 거였구나"라는 시선이 돌아올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국장은 "그것은 원인과 결과가 오도되는 반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처음부터 '병자'였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극한 상황에 처하면 나타나는 변화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3곳의 사업장은 이 국장의 말대로 "그나마 상대적으로 여론에 많이 알려진 곳"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들의 '행위' 내면에 숨겨진 날 것의 '삶 자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돌이켜보고 공감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번 조사의 목적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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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품이 거기 있었다

어떤 삶이 가난 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그것이 위험한 것은 그 고통의 결과가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야 마땅할 위엄과 품위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 있다. 경제적 궁핍이 가하는 물질적 고통으로 인한 삶의 형해화는 이처럼 그것이 다만 배고픔의 상태를 가중시킨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람됨의 근거로서의 존엄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점에 그 문제성이 있는 것이다.

 

-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하야우중(夏夜雨中) : 슬픔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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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폭(?)한 스타일의 웃음

밥을 먹다 터트린 광폭(?)한 스타일의 웃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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