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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국제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①

마르크스주의와 국제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백 승 욱 (중앙대 사회학과)

 

I.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어느 때보다 국제주의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개별 국가의 틀 속에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늘어가고, 국가들 자체가 문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각종 분할의 선들이 늘어나면서 단결과 통일을 향한 운동의 전환이 국제주의의 이름의 새로운 보편성의 요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런 요구와 일치하기보다는 오히려 배치되는 모습으로 나타나, 현 시기에 국제주의를 향한 집단적 움직임은 전혀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을 바꾸어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구호일 수밖에 없는데, 이 글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통해 국제주의의 쟁점이 어떻게 형성, 변화되어 왔으며, 현재 국제주의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본론에서 논의할 핵심적인 쟁점들을 사전에 정리해 두고 시작하기로 하자.
  우리가 국제주의를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더 큰 단결과 통일의 틀로 사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제주의를 ‘국가에 대한 반대로서 반(反)국가 일반’의 언사라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에 반대하고, 국가를 거부하는 사고가 그 자체로서 국제주의로 표상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국제주의의 쟁점은 사실 매우 복잡해지는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보자면, 국제주의가 쟁점이 되던 시기에 중요하게 부각된 바 있던 쟁점 중 하나는 아나키즘과에 대한 반대였고, 마르크스주의보다 훨씬 더 반국가의 입장에 선 아나키즘이 현실적으로는 더 국제주의적이었다고 할 수 없는 점도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문제가 이처럼 복잡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제주의는 국가라는 쟁점,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분할이라는 쟁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앞서 나가서 다시 말해 보자면,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국제주의, 좀 더 명확하게 말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자본의 분할에 대응한 ‘프롤레타리아’ 통일 경향을 향한 언사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분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그림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쟁점이다.
  우선 문제는 노동에 앞서 그보다 먼저 훨씬 더 ‘국제주의적’인 것은 자본이라는 점에서부터 나온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벌어지는 자본축적은 이미 장기16세기에 걸쳐 세계경제로서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등장하던 시절부터의 끝없는 자본축적의 특징이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자본의 국제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에 앞서 세계를 통일적으로 구성하고 지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 축적의 범위는 늘 초국경적이었다.
  그런데 역사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초국경적이라는 자본 축적의 일반적 특성은 구체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른 교차점을 만나 복잡해진다. 그것은 영토주의적 경향이 매개되면서 나타나는데, 영토주의적 경향의 매개 없이 자본은 진정한 초민족적 자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를 향한 자본들간의 경쟁 때문에, 대자본들은 세계경제에서 더 큰 몫을 향한 싸움을 벌이고, 이 싸움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자본들간의 경쟁은 더 강한 국가를 배경으로 한 정치․군사적 투쟁을 항상 수반하였다. 따라서 자본의 초국경적 팽창은 늘 영토주의적 논리와 자본주의적 논리의 변증법적 교직 속에서 진행되어 왔으며, 이것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독특성을 부여했다. 자본의 국제주의는 늘 자기 자신의 한계로 작용했는데, 특히 헤게모니 국가에 의해 새로운 자본축적과 국가간체계의 질서가 수립된 시기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초국경적 자본축적이 작동하지만, 그 헤게모니의 쇠퇴와 새로운 헤게모니를 둘러싼 경합이 벌어지는 시기에 들어서면 초국경적 자본주의의 논리는 개별국가들로 이루어진 국가간체계에 기반한 영토주의의 논리와 충돌하게 된다.
  그렇지만 자본축적의 전지구적 위기나 또는 자본축적의 지역적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정세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자동적으로 국제주의를 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의 국제주의가 자본의 본성상 출현하는 것이었다면,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달성해야할 목표로서만 표명되고, 그리고 그것이 달성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지양임을 표명하는 것임을 뜻하였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대칭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본과 노동은 거울상이 아니고, 자본의 직접적 부정이 노동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노동은 자본과 동일한 형태의 국제주의를 형상화해 낼 수는 없다. 이는 ‘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라는 비대칭성의 문제로 나타난다(이에 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대중들의 공포: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 도서출판b, 2007, 297쪽을 볼 것). 이 두 쌍은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 된다. 자본은 자본일반이라는 특징 속에서 추상화됨으로서만 등장한다. 그리고 자본축적의 조건이 재생산되는 것은 국가를 통해 그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이 통일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자본의 추상화와 통일성은 그 축적의 측면과 지배의 측면에서 모두 관찰된다. 이에 비해 그 반대 측면에서 노동은 분할됨으로써만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만든다. 노동의 통일은 자본의 지양이며, 자본축적은 분할된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이 분할됨으로써만 노동은 자본에 포섭될 수 있으며,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럼으로써 착취될 수 있다. 그 분할선은 성별, 인종, 지식, 국적에 따를 것이며(그리고 많이 인식되면서도 많이 경시되는 것으로서 중심-주변의 분할), 국가는 여기서 늘 한편에서 지배계급을 통일시키는 동시에 피지배계급을 분할하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그 작동은 특히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를 통한 분할된 ‘국민’이라는 허구적 동일성의 형성 속에서 잘 드러난다.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가 프롤레타리아 통일성의 경향을 지칭한다는 말은 이처럼 분할된 구체적 노동자들의 존재조건들을 넘어서는 통일적 경향의 수립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지배를 넘어서는 길임을 반복해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파악된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결국 새로운 보편성의 형성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국가 대 반국가라는 단순화한 구도로 형상화할 수 없다. 그것은 국가일반의 부정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전화’를 요구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이미 국가에 의해 재생산되는 분할된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이 국가를 거부함으로써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된 국제주의는 국가 ‘외부’에서 사고하는 논리라기보다는 국가의 ‘경계’에서 사고하는 논리로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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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운동 ③

III. 사회주의와 당이라는 쟁점

 

1. 러시아혁명의 쟁점

 

1) 제2인터내셔널의 유산-- 러시아혁명의 배경 (특정한 방식--즉 카우츠키류--의 마르크스 독해의 공고화)


①경제주의적 마르크스 이해: ‘생산력주의’ (그 핵심으로서 ‘정세’ 개념의 소실, 계급분석과 괴리된 계급의 이해)
②계급과 민중의 변증법에 대한 몰이해
③조직형태로서 민족화한 정당들의 출현

 

2) 레닌의 이행기론 해석의 문제

 

- 이행기 레닌에게 중요한 세가지 글 중에서 "임박한 파국"에 강조점
  ①4월테제(소비에트) ②임박한 파국(이행의 물적 토대) ③("국가와 혁명" +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정치와 경제”(사회주의 하의 모순. 그리고 국유화/사회화)

- 4월테제와 그 이후 저작들 사이의 차이 (4월테제는 소비에트를 특권화하고, 이를 위해 당의 사업을 전환할 것을 요구): 그 이후의 저작은 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성장전화’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  (특히 소비에트 내 소수파로서 볼세비키 대 다수파인 멘세비키와 SR)
 *특이점: 테제 내용 ①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②당의 위상은 소수파. 소비에트 지지의 일관성 ③국유화의 부차성

- 「임박한 파국」 중심의 논지: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PDR의 시기를 명시화 (사실은 ‘4월테제’와 일정한 긴장관계 -- 우리에게 모호하게 남았던 것: 우리가 ‘전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 이중의 규정 속에서 ①현실 사회주의 비판 ②사회주의로 성장전화)
  --> t.t. 시기와 달라지는 것으로 이행강령이 제기됨. 특히 핵심은 (조건 붙은)‘국유화’ 강령 ①독점자본의 국유화가 사회주의 가는 물적토대 된다 ②민주주의적 요구들이 최소강령에서 이행강령으로 가게 되는 제국주의 시대의 규정들 ③그 결과 ‘성장전화’론

- [그럼에도 국독자론은 일국일공장체제의 기반이 됨. ①전국 경제통제 가능 ②모든 것을 국유화하지 않고, 핵심만 국유화하더라도]
①소비에트가 물러난다 ②‘청사진’이 중요해짐(특히 국유화) ③과정 관리자로서 당의 역할 중요

 

3) 네프시기 레닌의 반성과 한계

 

- 핵심은 ①계급동맹 ②국유화/사회화(여기서 국유화건 국독자건 소유제 개조가 문제가 아니다) ③문화혁명(국가장치의 문제) --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국가자본주의’라는 규정

- ‘사회주의(이행기)의 계급투쟁’: 그 대상과 조직은?(소비에트가 복권되지는 않는다)

- 혁명에 의해 강요된 자기제약이었다(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장악한 국가권력 유지의 강박): 그러나 ‘4월테제’가 부활하지는 않고, ①당내 ‘정풍’과 ②대중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여기에는 핵심적으로 ①관료제의 문제는 모호하게 남고 ②상대적 잉여가치 질적구조 문제, 또는 달리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기술의 지적차이의 문제에 대한 고려가 없다) --> 소비에트 우위가 당이 지도하는 대중의 재교육 차원으로 정리됨 [사회화 쟁점이 약함. 그리고 그 복잡성 보지 못함. 즉 자본-국가에 의한 재생산 보지 못함 --> 이론의 난점과 동시에 정치의 난점]
  ‘당’, ‘소비에트’, ‘노조’ 셋 사이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나, 당의 우위 하에 다른 두 가지 조직의 문제제기가 봉쇄되는 결과를 낳음


2. 중국 문화대혁명이 남긴 것-- 현존 사회주의에 대해 제기하는 광범한 쟁점

 

①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 민족적 공산주의/ 대중노선/ 정치우위라는 세 가지 상이한 흐름의 절합과 교착이 낳은 독특한 정세

 

② 당형태
- 대중노선, 그러나 대중 이니셔티브를 인정하지 않는 당에 의한 계급 대립의 독점을 넘어서서 당의 파괴로, 그러나 그 딜레마로
- 중국에 부재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그 1927년의 계기). 그러나 문혁의 딜레마는 그것을 일관되게 표상하는 ‘조직’은 있었는가?(당이 아니라면, 홍위병? 조반파? 어떤 안정된 조직형태도 지속되지 못했다)

 

③ 생산관계의 전화로서 정치우위와 교육혁명(새로운 산업혁명을 위한 지적차이의 극복이라는 쟁점)
- 대중정치의 이니셔티브가 억제된 상태에서 다소 위로부터 진행된 역설도 있었음
  모델의 경험과 그것을 넘어서는 역사적 계기라는 차이점

 

④ 이데올로기혁명과 국가장치. 대중적 주도성
- 이데올로기 혁명으로서 문화대혁명
- 프랑스 혁명 논쟁과 마찬가지로 중국혁명 또한 세계혁명으로서 이데올로기 혁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회주의에 대한 마오의 재해석에 기반하여야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⑤ 대중의 공포와 폭력이라는 문제.
- 이 또한 프랑스 혁명과 연관되는 주제: 정치의 자율성과 변혁이 대중 자신의 자율성을 얽매는 것으로, 대중 자신에 대한 공포로 귀결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한편에서 문혁 과정의 이론화의 부재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론 내의 문제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다시 이론의 이데올로기화에 작동하는 또 다른 계기, 즉 대중들 사이의 윤리적 관계라는 쟁점은 여전히 남는다.
  문혁의 딜레마는 계급적대나 자본주의의 ‘구조’의 문제를 ‘주자파’로 의인화 하고, 그것의 동일성 형성을 통해서 적대를 표출한것. 리처드 크라우스를 받아 딜릭이 말한대로 ‘계급’이 투쟁의 지침이 아니라 투쟁의 장이 되어 버린 것에 있다.
  동일화와 탈동일화의 동시적 사고라는 시민인륜의 정치라는 강조점이 등장하는 이유


* 논의의 난점들

① 당은 국가의 포섭에서 벗어나 있는가? (더욱이 국가간체계의 동학)-- 아니다, 당은 국가권력 장악의 수단이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임 (국가 외부에 또 다른 당을 만드는 시도는 불가능 --> 그러나 그 국가의 경계가 문제되는 곳에서 당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운동 출현 가능도)

② 대중운동에 의해서 당의 쇄신이 가능한가? 그것이 당을 당 아닌 것으로 바꾸어 내더라도? 그럼 그 조직은 당과 같은 한계에 봉착하지 않는가? (그 지속성, 이데올로기적 혁신은 어떻게 가능? -- ‘변혁’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직은?)

③ 그럼 당은 불필요한가? 당을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은 국가에 대한 무시를 의미하는가? 아나키즘인가?  (집권에 대한 태도는, 목적은?)

④ 집권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운동을 유지시키는 방법은 가능한가? (사회운동적 정당은?)

⑤ 쟁점은 일국적이지 않다. 지역적으로 다른 쟁점에 처해 있음.


3. 유럽과 제도권 정당의 한계들
- 2인터내셔널의 쟁점들의 복귀/ 그리고 68년의 쟁점들

 

(1) 국가권력의 환상
- 권력장악과 사회개혁의 환상과 관료화

 

(2) 법률적 틀의 환상
- ‘제도개선’의 법적 틀의 안주
- 기술관료적 개선책들의 제시

 

(3) 대중우위의 포기
- 사회조합주의의 틀로의 귀결
- ‘생산관계’에 대한 사고, 그리고 ‘경제투쟁’에 뿌리박은 ‘정치운동’이라는 사고의 부재

 

(4)

 

(5) 계급투쟁의 장소들을 ‘정치’로 한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대중의 탈정치화로
- 이데올로기의 다차원적 공간을 사고하지 않음

 

(6) 소련과의 관계 또는 그와 연관된 민족국가적 한계의 난점
- 단적으로 평화문제와 식민지 독립의 문제에서

 

(7) 인종적 틀의 난점

 

 

IV. 대안세계화 운동

 

1. 논의의 쟁점들

- 새로운 이론적 논의로서/새로운 조직적 실천으로서/새로운 지정학적 효과로서: 서로 결합된 효과들


2. 새로움의 측면들


①세계화의 이론 분석
②전지구적 이행과정(국제주의) : 남과 북의 결합
③대중 창의성과 주도성 중심의 연합적 사고
④소유의 문제를 수단으로 파악
⑤집권의 문제를 전술적으로 파악
⑥대중 구성의 변화에 주목
⑦정파/현장을 넘어서는 연합적 조직틀
⑧경제/정치/사회 혁명의 구분의 지양
⑨공동체 한정성에서부터 공동체내 관계의 전환으로(‘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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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운동 ②

II. 국제주의라는 쟁점

 

1. 노동자운동의 질문들

(1) ‘노동운동’과 ‘노동자운동’이라는 말의 차이는 무엇인가?
- 통념적 이해의 문제

(2) 왜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에서 중심적이라고 하는가? (자동적으로? 환원되는? 점점 더 늘어나는?)
- 프롤레타리아 신화 아니라 생산관계가 곧 착취관계라는 쟁점

(3) ‘전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을 노동자계급으로 변화시키는가?

(4) 노동자계급과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는 무엇인가?
- 역사철학과 정세의 대립

(5) 노조-당이라는 조직적 틀은 꼭 필요한 것인가? 어떤 문제를 낳는가?

(6) 19세기와 20세기 노동운동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7) 노동자들은 왜 단결하지 못하는가?

(8) 중국 문화대혁명이 제기한 쟁점(①재생산 ②지식노동/육체노동 -- 자본주의 고유한 생산력 구조와 산업혁명)

 


2. 국제주의라는 쟁점 -- 먼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실의 운동을 통일시키는 경향으로서

 

1) 자본의 국제주의와 노동의 국제주의의 차이점

 

- 국가에 의한 지배계급의 통일과 그 이면에서 국가에 의한 노동계급의 분할이라는 경향
--> 자본은 전지구적으로 통일된 추상적 자본일반으로 작동하며, 국가는 지배계급사이의 분할을 통일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한다(이를 자본의 추상화라고 부른다). 반면 노동력을 분할함으로써만 자본의 통일은 수행된다(그것은 저임금 노동력의 착취를 위해서도, 노동자의 내적 단결을 봉쇄하는 것을 위해서도, 자본에 대한 공격을 노동자들 사이의 공격으로 돌리는 것으로도 작동)

- 자본의 국제주의는 자본축적의 확장에 따라 그 본성상 출현한다면, 노동의 국제주의는 달성되어야 할 목표로서만 제시된다.

- 국가 일반의 부정 아니라 국가의 전화를 요구하는 사고임

 

2) 계기들


①프랑스 혁명과 보편적 권리: 권리의 경계로서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사고의 필요성
②‘프롤레타리아’의 동질화 경향과 현실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내적 분할(특히 인종/민족적 분할)
③당운동의 등장과 민족적 동일성에 기반한 운동의 문제
④사회주의 혁명에서 대중 주도성의 우위라는 쟁점

 


3. 국제주의 문제를 봉합하고, 노동자운동을 가로막은 쟁점들

 

1)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 우위


- 노동의 기술적 분할에 대한 노동의 사회적 분할의 우위. 그렇지만 후자는 전자를 통해서만 관철됨
(기술적 재배치를 통해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는 경제적/이데올로기적/정치적 투쟁의 중요성: 그 사회적 분할의 역사적 형태를 분석해야)

 

2)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관계

 

- 전자는 자생적, 후자는 목적의식적이라는 이분법이 가져오는 오해들

- 경제투쟁이 착취의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에 더 포섭되기 어렵다
(예: 프랑스혁명 후 부르주아적/프롤레타리아적 요구가 정치제도로 포섭되는 것은 수월했으나, 노동자 경제투쟁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었다. 1791년 르샤플리에법은 모든 결사를 금지시킴. 2백인 이하 노동자의 합법적 권리는 1968년에 달성)

- ‘이른바 정치적 계급투쟁은 경제적 계급투쟁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 알튀세르의 "재생산을 위하여" 에서 말하는 “지배계급이 두려워하는 단계들”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①노동자 정치조직들 사이의 정치적 통일(경계태세)
②노동조합 사이의 조합적 통일(긴급태세)
③이 두 단위 사이의 통일(계엄령)
  --> 노조의 분할과 짝을 이루는 노동자 정치조직의 분할들은 부르주아지의 변함없는 전술들이다

 

3) 법률적 형식의 환상

 

- 생산관계는 법률적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법률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생산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 사회주의의 시기가 소유제의 변화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 공공성의 예도(네가지 측면 이상 ①민영화반대 ②비정규직 문제 ③서비스의 테일러주의적 통제 ④사회조합주의적 틀의 사회정책)

 

4) 지배의 다차원성에 대한 고려

 

- 억압적 장치와 별도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강력한 존재

- 투쟁에 의해 그 외부에 있던 것들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내부로 들어오겠지만, 그것은 그럼으로써 그 통제 하에서 작동하게 됨을 무시할 수 없다

 

5) 당의 물신화


- 노조/당의 이분법. 대중운동이 당에 종속되지 않는 경험들

 

6) 공동체의 정체성의 몰입과 그것을 넘어서기- 새로운 공동체 만들기와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성 만들기라는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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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 ①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

  - 국제주의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
백 승 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I. 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조건

 

1. 87년 정세의 자유주의적 봉합과 그 균열

1) 대중적 주체의 탄생

- 다시 광주로: 광주/ 87년 6월/ 7-9월의 공통점
  --> 소극적으로는 억압에 대한 저항을 말할지도 적극적으로는 대중적 주체의 등장 (남이 나를 대신해 나를 해방시킬 수는 없다. 해방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 프랑스 혁명 이후의 쟁점)
  ==> ‘해방’

- 그러나 그 이후 과정:
 ①제도화(대리) -- 조직하지 않고, 학습하지 않고, 연대하지 않는다
 ②그 다른 표현으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균열 (정부와 함께하는 신자유주의 NGO운동/ 경제적 이익 집착하는 조합주의 운동)

 

2) 운동과 이론의 결합: ‘변혁’이라는 사고

* 여기서 다른 한 쟁점: ‘전태일’ 이후의 쟁점 -- 한국자본주의 그 모순의 근원은?

- 구조적 변화 없이 모순의 해결 어렵다

- 무엇이 어떻게 변화중이며,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80년대 사회성격논쟁 (어떤 사회/어떤 자본주의 ->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변혁’
[자본주의가 어떻게 문제인가? --> 세계화 왜 문제인가?
도식적으로 ①정치에서 ‘개량화’ 문제 ②경제에서 3저호황에서 97년 위기로 ③군사세계화 ④이른바 파편화한 주체들과 연대의 파괴]


2. 자유주의의 위기와 대응

 

1) 위기 속의 자유주의

 

-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 아님 -- 자유주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보수주의/시장 자유주의의 대응

- 코포라티즘이라 부르는 제도적 포섭의 틀 사라짐

- 거기에 제도적 저항 또한 약화됨: 양보의 필요성 적어짐
  -- 경계의 확산(여성/이주노동자/비정규직)
①분할 통치(소수의 제도적 편입)
②이미지 선동형 포퓰리즘(감정호소형 정치: 적대적 타겟의 인위적 창출)
③정치의 소외: 해방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복지 수혜의 객체화(통치의 대상이 됨 -- 정치의 실종의 자리를 NGO가 대체)

 

2) 다시 87년으로


① 대중 운동의 복원 -- ‘해방’
② 사회성격 논쟁의 재활성화: 어떤 자본주의인가(세계 + 역사로서) -- ‘변혁’
==>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가는 역사의 해석 필요(적어도 기층에서 ①학습과 조직의 결합--그 상징으로서 노조 이외의 노동운동 단체의 결합 ②지노협의 경험이 적절하게 전달되었는가?)
③ 어떻게 자율적 주체간의 관계 가능한가 (올바르다는 것, 타인의 관계, 이성의 관계, 외국인에 대한 관계를 어디서 배우는가?)
  어떻게 관계 맺고, 연대가 가능한가? (만인의 평등-자유가 자신의 조건인)
==> 대중의 역능의 형성이 ‘민중’이라면(해방과 변혁의 결합), 대중 사이의 윤리적 관계맺음이 ‘시민’(시민성, 시빌리테)이라고 볼 수 있음(왜 시민운동에 시민이 없는지)
-> 민중도, 시민도, 형성되어야 할 것이며, 두 개의 다른 것이 아니다
- 87년 체제의 상속이 아니라, 87년 정세에서 열어젖힌 것을 발전시켜야

* 당운동이 문제이더라도 그것을 좁은 정치 영역에 한정하는 방식으로는 전진 불가능
* 위기가 3중의 위기인 이유: 민노동-민주노총-민중연대 모두에서
 : 대중역량 강화 아니라 제도권 역량강화에 초점 맞춘 위기

- 87년 정세의 제도화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그 정세 하의 가능성을 대중의 자기변화를 통한 사회변혁 속에서 달성하는가?


3. 당이라는 쟁점

- 당관념이 상정하는 것들: ①지도-피지도 집중성 ②강령과 일관성 ③당원/조직

- 당이 문제가 되는 이유: ①이론적 단일 중심성 ②조직적 중심성(당내: 이것은 첫 번째와도 연관되는 ‘분파형성권’이라는 쟁점) ③타운동에 대한 지도성과 중심성  [그리고 그것이 종합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국가권력 획득’이라는 전략 속에서 나타나는 당의 국가화의 분명한 표현임. 권력장악 이전에도 국가장치가 아닌가의 쟁점은 존속, 그것이 더 분명해지는 계기가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측면] -- 그 과정이 선거를 통한 평화적 이행이건, 아니면 무력적 봉기에 의한 것이건 큰 차이는 없다는

* 사회주의 역사: 당과 혁명의 관련으로 해석되어 온(프랑스혁명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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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조 이기주의' 왜 생겼나 했더니…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 왜 생겼나 했더니…

정규직도 53%가 "고용 불안 느낀다"…2년 만에 8%p나 ↑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노사갈등의 대부분이 임금 등 정규직 조합원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현대차 아산공장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도 '우리 공장의 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넘겨줄 수 없다'는 압력 행사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기업 노동자들은 왜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이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 밥 그릇' 지키는 일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추론케하는 설문조사 결과가 23일 나왔다. 정규직 2명 가운데 1명이 자신의 고용상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고용 자체가 원초적으로 불안정한 비정규직 뿐 아니라 정규직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한 나날 속에 놓여있다 보니 '챙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챙겨야 한다'는 심리가 성과급을 위해 소화기를 뿌리고, 같은 기업 안에서도 우리 공장 물량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40대는 63.7%가 '언제 잘릴지 불안하다'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 잡코리아는 직장인 지식포털 비즈몬과 함께 '2008 직장인 고용안정성 만족도' 조사를 벌인 결과, 조사대상 1289명 가운데 53.2%, 686명이 '현재 고용상태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불안하지 않다'는 응답자는 26.8%, 보통이라는 대답은 19.9%였다.
  
  가장 불안감을 심하게 느끼는 연령대는 40대였다. 40대 직장인 가운데 '고용불안'을 호소한 응답자는 63.7%에 달했다. 30대(61.3%)와 50대(51.9%), 20대(41.8%)의 순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과 여성 가운데는 여성이 55.4%가 '불안하다'고 대답해 남성(51.7%)에 비해 다소 더 높게 나왔다.
  
  업종별로는 유통·서비스 업종이 가장 높았다. 유통·서비스업종 정규직 가운데 70.7%가 '고용이 불안하다'고 대답했고, 금융업이 66.5%, 식품·의료업이 63.2%, 전기전자가 51.3%로 그 뒤를 이었다. 이 조사는 지난 10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됐다.
  
  특히 이번 조사를 통해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음이 확인됐다. 처음으로 조사가 실시됐던 지난 2006년에는 응답자 1556명 가운데 704명, 45.2%가 고용이 불안하다고 대답했었다. 2007년에는 같은 대답이 51.3%로 전해에 비해 6.1%p 증가했고, 올해는 53%로 나타나 2년 만에 8%p나 늘어났다.
  
  "'주관적 고용불안' OECD 국가 중 한국이 1위"
  
  이 같은 조사결과는 외환위기 이후 개별 기업들에서 상시 구조조정과 조기퇴직 관행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대기업일수록 뚜렷하게 통계로 드러나고 있다.
  
  통계청의 사업체기초통계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종업원 수는 1996년부터 2006년의 10년 사이 무려 30.8%가 감소했다. 1000인 이상 대기업은 같은 기간 인력의 39.9%가 줄어들었다. 반면 300인 미만 기업은 같은 기간 종업원수가 늘어나 '괜찮은 일자리'일수록 '잘릴 위험이 높은' 일자리가 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기업들도 정규직을 자르고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형태의 노동유연성을 추구하는 곳이 많다. 지난 2003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체패널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3.3%가 정규직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활용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답했다. 비정규직은 쓰지 않고 정규직 구조조정만으로 유연성을 추구한다는 기업도 25.5%였다. 이런 사정은 최근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론이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006년 OECD조사 결과에서도 주관적 고용불안 정도가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한국이 1위였다"며 "언제 나에게 닥칠 지 모르는 구조조정의 불안감과 미흡한 사회안전망으로 '자리가 있을 때 돈이라도 벌어놓자'는 심리가 당장 눈 앞의 실리만을 추구하는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로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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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

 

푸하하! 엄마의 재롱을 보고 ;;

 

 

 

산책 나와서. 누구를 찍을까? 선거 공보물을 꼼꼼이 살펴보고 있는 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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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 앉아요

 

혼자서도 잘 앉아요!

 

 

엄마가 짜 준 모자를 쓰고 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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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 인생사

 

태어난 지 4일째!

 

 

아빠 배위에서 쿨쿨

 

 

아~ 세상 살기 힘들다!

 

 

헤헤~

 

 

찹쌀모찌를 닮은 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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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이식한 한옥의 유전자

아파트에 이식한 한옥의 유전자

 

짚풀 섞은 황토벽에 우물마루 바닥
베란다는 약간 높여 간이 툇마루로
“천연재료 속성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쪽 마루는 높이를 달리해 일종의 ‘툇마루’를 뒀다. 한옥에서 실내와 실외를 이어주는 툇마루의 원래 기능은 못하지만 한옥의 느낌과 정신을 보여주는 의미로 뒀다.

‘언젠가는 한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옥의 운치와 친환경적인 참살이의 장점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좁고 비싼 도시에서 한옥을 짓고 살기란 쉽지 않다. 현대인의 삶에 편리한 아파트의 장점도 버리기 힘들다. 그러면 아파트를 한옥으로 바꾸면 어떨까?

평소 한옥을 동경해 온 이경진씨가 이 실험에 도전했다. 한옥문화원(원장 신영훈)과 함께 자신의 서울 중계동 85㎡(전용면적)대 아파트를 한옥 건축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 고친 것이다. 아파트 일부를 한옥 분위기가 나도록 꾸미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아파트 내부 전체를 한옥 짓는 법으로 고친 것은 유례가 없었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 한옥’ 개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쫓아봤다.

 

 

 

한옥문화원이 개조한 중계동 이경진씨네

황토-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간 건강 소재=평소 전통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는 한옥문화원에 개조를 맡겼다. 5년 넘게 ‘아파트를 한옥처럼’이라는 강좌를 이어왔던 한옥문화원은 실제 시공 사례가 필요하던 터였기에 이씨의 집을 본보기집으로 삼기로 하고 실험에 나섰다.

개조의 뼈대는 건강친화적 시공을 최우선으로 하자는 이씨의 요구에 따라 벽면 전체에 황토를 바르고, 바닥에 나무 마루를 깔기로 했다. 원래는 벽만 황토로 하기로 했다가 바닥까지 황토칠을 하는 것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공사는 지난해 11월27일 철거와 함께 시작됐다. 가장자리 벽면은 8㎝ 두께의 단열재를 모두 뜯어내고 짚풀 섞은 황토를 가는 나무 살대를 엮어 넣어 5㎝ 두께로 발랐고, 세 방 벽은 2~3㎝ 두께로 황토를 입혔다. 마루와 방바닥은 황토와 접착반죽인 퍼티를 섞어 칠했다. 천장을 뺀 집안 전체를 황토로 바른 것이다.

 

 
» 벽과 바닥에 황토를 바르기 위해 아파트 내부를 모두 뜯어냈다.
 

 
» 황토와 짚풀을 개는 장면. (한옥문화원 제공)
 

 
» 단열재를 뜯어낸 가장자리 벽에 황토를 5㎝ 두께로 바르기 위해 나무 살대를 엮었다. (한옥문화원 제공)
 

 

 

마루와 문-보이는 곳을 좌우하는 매력 포인트=아파트의 층고가 낮은 편이어서 마루는 최대한 얇게 1.2㎝ 두께로 짰다. 마루는 일반적이고 모양도 단순한 ‘장마루’ 대신 우리 한옥만의 고유한 마루이자 더 고급인 ‘우물마루’로 정했다. 안방을 뺀 방 2개도 모두 나무마루를 깔았다. 마루 널조각인 청판은 이후 나무가 마르며 비틀어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뒷면에 홈을 파서 덜 휘게 했다. 또 베란다까지 바닥을 트고, 마루보다 높게 올린 일종의 간이 툇마루를 만들었다. 실내 툇마루여서 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원래 툇마루의 기능은 없지만 한옥의 분위기와 멋을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설치했다.

문과 창 등은 1급 목수들에게 중상급 재료로 맞췄다. 방문과 창틀은 모두 창살 모양을 달리해 마루창은 용(用)자 살, 작은 방 미닫이 문은 아(亞)자 살, 화장실 문은 세(細)살로 변화를 줬다. 철제 현관문도 전체 분위기에 맞게 문의 집안 쪽 면을 나무로 덮어 꾸몄고, 신발장도 전통가구풍으로 맞췄다.

 

 
» 황토마감이 마무리된 모습.
 

 
» 우물마루 공사 초기.
 

 

차분한 분위기와 친환경 소재에 만족=집주인 이씨는 10일 “선례가 없는 시도여서 걱정이 많았는데 의도한 대로 공사가 되어 만족스럽다”며, “실내에 페인트 같은 화학재료나 철 같은 소재가 없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게 가장 좋아진 점”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부인은 “초등학생 아이들이 여느 집과 다른 집안 모습에 자부심을 갖는 것 같다”며 “나무와 한지로 실내 분위기가 부드럽고 따듯해지면서 아이들이 차분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살림 측면에서 꼽은 어려움은 마루 관리.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면 움푹 파이게 되고, 음식물 등을 흘렸을 때 빨리 닦아주지 않으면 나무 속으로 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원목으로 덧댄 현관문과 원목 신발장.
 
성과와 과제는?=공사 전 과정을 기획한 한옥문화원 장명희 부원장은 “황토벽 마감 등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아파트 구조가 정해져 있어 다양한 공간 디자인 시도를 할 여지가 적었던 점은 아쉬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시도가 늘어나면 아파트에 쓸 수 있는 다양한 자재와 디자인이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의미를 짚었다.

장 부원장은 또 “원목이나 흙 같은 천연재료들은 아무리 최고로 시공해도 일정 부분 변형이 생기기 마련이며, 재료 준비 역시 개별 집들에 맞게 따로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고 시공에도 숙련된 작업이 필요하다”며 “따라서 집을 한옥처럼 꾸미려면 천연 재료의 불가피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시공을 충분히 준비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재준비 3달 · 공사 1달…85㎡형 3800만원 들어

 

 

공사 완료까지 걸린 기간은 꼭 한 달. 황토벽이 마르는 데 보통 1주일 정도 걸리는데 한 겨울에 시공해 보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겨울 이외의 계절에는 25일 정도면 가능하다. 다만 기성 모듈화된 건축자재를 쓰는 것과 달리 나무 재료 등을 미리 맞춰 준비하는 기간을 최소 3개월 정도는 잡아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모두 4개월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 집주인은 개조 완료 이후 세밀한 부분의 집안 꾸미기 등을 마무리하고 지난 4일 집을 공개했다.

 

전체 개조비 가운데 철거, 조명과 전기, 주방 등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빼고 한옥 방식으로 개조하는 부분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3800만원. 황토 시공에 1000만원, 문과 창 등에 1500만원, 마루와 가구 등 목공사 전반에 1300만원이 들었다. 나무는 중상급 재료로 썼다. 마루는 국산 소나무인 육송을, 문과 창은 홍송으로 했다. 문과 창살은 세공이 힘들고 나무가 비싸 고급으로 하면 이보다 비용이 더 들게 된다. 일반 아파트의 리노베이션 비용은 대략 평당 100만원 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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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벼룩시장은 시간과 보물창고

 

황학동 벼룩시장은 시간과 보물창고

마음 먹으면 우주선도 만든다. 세상에 있는 건 다 있는 서울의 보물창고가 황학동 벼룩시장이다. 단돈 천원만 들고 가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그 무엇을 건질 수 있는 곳.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단 하나 뿐인 1억짜리 오디오를 만들 수도 있는 곳.

황학동은 살아있다.

풍경을 듣다

그 옛날도 아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란색 삼일아파트가 있던 자리에는 높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주위 청계천 방향으로는 새로운 건물들이 하나하나 생기고 있다. 아파트 옆길로 들어서면 바로 황학동 벼룩시장 입구다.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허름한 복장의 남자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거, 아무래도 가게 하나 사두는 게 좋지 않겠어?’

‘아, 뭣땀시 가게는 또 산댜?’

‘아, 롯데캐슬 지하에 대형 마트가 들어온다는데, 아무래도 값이 좀 오르지 않을까?’

‘조금은 그렇겠지 뭐.’

‘재개발도 제대로 될 것이고’

‘아이, 참 나, 닝기리…개발이고 나발이고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구만. 그냥 이렇게 살다 가게…’

골목 안은 조그만 철공소들이 즐비하다.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업장들이다. 이 철공소들은 못 만드는 게 없는 곳이다. 설계도만 가져가면 무엇이든 다 만들어 낸다. 오프로드 마니아가 자동차 끌고 가서 극단적 광폭 타이어를 받혀 줄만한 축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뚝딱뚝딱 제대로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지금은 불법이라서 그런 작업은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대포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철공소 사람들은 완전 마니아들이다. 그들의 손재주는 일급 엔지니어 뺨 칠 정도로 정밀하다. 그들은 대기업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공작이 좋아서 이 골목에 처박혀 수십 년을 철밥 먹고 사는 것이다. 이들이 만일 공작공화국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벌써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어있을 것이다.

무질서 속의 원칙

골목을 조금 더 들어가 본다. 오래된 가구…가구? 그렇다 가구라기 보다는 우리의 생활 도구들, 절구, 맷돌, 나무 문짝, 농, 의자, 뒤주 등을 파는 고가구점이 뜨문뜨문 나온다. 그들은 고물 마니아들이다. 충청북도 제천의 어느 농가가 헐린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새벽바람 맞으며 전속력으로 달려가 이른바 ‘아도’를 찍어온다. 재수 좋을 땐 그냥 가져오기도 하는데, 불편해 보이던 고가의 문짝도 황학동 골목으로 들어오면 문화재가 된다. 그렇다고 비싼 가격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 보아가면서 문화적 가치를 내세워 엄청 비싸게 받기도 하고, 오래된 고물을 이유로 헐값에 주기도 한다.

황학동 벼룩시장의 메인 골목을 들어선다. 흑백테레비, 보쉬전동드릴, 야마하 7번 아이언, 소니릴테이프재생기, 진공관전축, LP플레이어, 포르쉐미니카, 빅타 엠프, 삼성모니터, 금성라디오, 팬탁스카메라 등등 전자제품 위주의 골목이다. 사진을 찍어도 아무 말 안한다. 얼굴에 들이대지만 않으면 아무 상관 안한다. 상점에 나와있는 물건들을 보면 저기에서 소리가 제대로 나올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걱정이다. 이곳의 오디오 가게에 들어가면 세계 최고의 오디오를 만날 수도 있으며, 잠바떼기 걸치고 낮술 한 잔 한 얼굴의 사장님과 상의하면 세 마디도 못 가서 말발이 무너진다. 그들은 음향의 박사들이다. 그들은 뱅앤올룹슨이 부럽지 않다. 1억원 짜리 오디오 제대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정직하게 1억원 짜리 오디오를 조립해낼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오호라! 가끔씩 보이는 성인 전용 비디오테이프 가게가 사람 발길을 후끈 잡는다.

곧세우마금순아/내여자친구는소,개입니다/꼴리는밤이오면/반지하제왕/살흰애추억/침대에서쉬리/입으로하는여자/오양의침묵/황홀해서새벽까지/구멍가게습격사건/박아사탕/공동경비구멍/인정상사정할수없다/나도처제가해줬으면좋겠다/샛방새댁의혀놀림/번지점프중에하다/귀신이싼다/털밑썸씽/마님은왜돌쇠에게쌀밥을먹이능가/감자캐러갔다가등에흙은왜묻혀/지금만지러갑니다/그놈은뭣이섯다…

제목 읽다가 숨 넘어가는 골목이다 ^^

성동기계공고 건너편 조그만 가게 앞 지하철 환풍구 위에 오디오 세트가 얌전히 앉아있다. 다가가 보니 마란츠다. 엠프, 카세트플레이어, 튜너, CD플레이어 등 일단 구색은 제대로다. 그 옆에는 JBL스피커가 떡허니 버티고 서 있다. 주인과 객은 흥정 중이다. 마란츠 오디오 세트가 15만원, JBL 스피커가 35만원이다. 손님은 마란츠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JBL스피커의 앞면을 열어본다. 찢어진 곳이 없는 것이 확인되자 바로 구입한다. 스피커는 승용차도 아닌, 용달차도 아닌, 리어커로 운반된다. 손님은 오디오 조립 전문가였다. 그의 작업장도 황학동이다.

힘내라 힘!

성동기계공고 앞길에는 주방도구 판매하는 곳이 즐비하다. 조그만 식당 하나 차릴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간다. 망한 집 주방 싸게 사서 물청소 배관청소 배선작업 모두 새로 해서 또 다시 싸게, 패키지로 판매하는 것이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다. 새로운 사업을 생각하고 있으면서 어째서 울상일까? 대답은 뻔하다. 퇴직금 털어 분식집 차리는데, 이거 날리면 끝장인데…뭐 이런 근심이 가득한 것이다. 판매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니다. 그래도 힘 내라 힘! 돈 주고 물건 받을 때만이라도 서로를 격려한다.

다시 롯데캐슬앞 황학동벼룩시장 입구의 영도교를 건너간다. 동묘 가는 길이다. 이곳에는 노점이 즐비하다. 박정희대통령화보집이 길바닥에 누워있다. 트롯트가수 김연자의 LP판 김연자 노래꽃다발, 베르디 아이다, 사교를 위한 폴카 총선집, 기타와 전자올갠…1970년대와 80년대에 서라벌레코드에서 찍은 앨범들이다. 한 장에 천원.

골동품들의 가격을 물어본다. 보통 5천원에서 2만원이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동네 건달로 보이는 중년 세 사람이 참견을 한다.

구둣발로 도자기를 가리키며, 이 도자기는 얼마예요? 사장님~~~하더니, 얀마, 넌 저런 거 5백원에 사다 만원 받냐? 이, 순, 날…주인과는 오랜 친구인 듯 보인다. 영화 원스어폰어타임인아메리카의 앞 장면이 잠깐 오버랩 되는데, 장사를 방해하는 친구들에게 주인이 말한다. 너희들한테는 안 파니까 절루 꺼져라! 서로 놀리며 걀걀 웃는다. 주인도 웃고 친구들도 웃고 손님도 웃는다 ㅋㅋㅋ.

버룩시장은 동묘 담장까지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동대문 밖이다. 조선 시대부터 성문 밖에서 열린 난전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풍경이요 누구도 거둘 수 없는 삶의 현장이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예전에 비해 많이 위축된 게 사실이다. 많은 노점이 사라졌고 사라진 노점상들의 낡은 가방 속에 있던 시대의 보물들도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까지 동대문운동장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옛 숭인여중 자리로 옮기면서 벼룩시장은 다시 예전의 풍경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먹고살기 힘들다 칭얼거리지 말고, 문화의 보고, 시간의 창고, 현물의 골목 황학동에서 당신의 좋았던 시절을 되새김해봄은 어떨까?

[글 사진 = 이영근 프리랜서 에디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24호(08.04.21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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