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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3 -- 고리오 영감

*고리오 영감
글쓴이 : 오노레 드 발자크
출판사 : 열린책들 / 초판 1쇄 20080810

 

*읽고나서
마지막 문장을 읽고 참 허무하다.
그렇게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위와 가식을 피부로 느끼고 나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나?
가서 복수를 한다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회창씨가 아들의 병역기피문제로
욕먹고 있을 때 한 말이 있다.
'참 곧은 분인데 정치라는 뻘밭에 들어와서....'
다음 말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노통 또한 그 뻘밭에서 허우적거리다 안타깝지만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소설 속 주인공 외젠 드 라스티냐크 또한 그 뻘밭에 갇히고 말 것이다.

(왜 이 상황에 프랑스 상류사회와 우리 정치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는 거지?) 
(그러나 글쓴이는 이후에 다른 소설에서 승승장구하는 외젠을 그린다.)

 

소설의 주무대 보케 하숙집
2층에는 보케 부인과 쿠퇴르 부인과 양녀인 티유페르가 거주하고
3층에는 푸아레와 보트랭이 살고
4층에는 미쇼노양과 고리오 영감과 외젠이 하숙한다.
그리고 하인 크리스토프, 식모 실비, 식사만 하는 비양숑등...
발자크는 이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사실감을 살려주고
인물들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김수현 작가가 쓴 '엄마가 뿔났다'의 대가족 집안처럼...

 

보트랭이라는 사람
이 사람은 묘한 인물로 그려지다가 결국 탈옥수라는 것이 드러나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보트랭은 상류사회와 돈이 가진 성질을 잘 파악했던 사람
세상을 달관한 듯 한 말로 훈계와 조롱을 한다. (작가의 분신)
그런 그도 경찰에 체포되고 소설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고리오 영감
막 태동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다.
하지만 이해 할 수 없는 부성애를 기반으로 딸들이 자기에게 가하는
고통까지도 사랑하여 비참한 생을 마감한다.

 

*글쓴이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소설가
90편의 소설로 구성된 '인간희극'
외제니 그랑데/시골의사/골짜기의 백합/잃어버린 환상/창녀들의 흥망성쇠

 

*옮긴이
임희근
전문번역가, 출판 기획 네트워크'사이에'대표
에밀졸라의 살림/디팩 초프라의 성공을 부르는 마음의 법칙 일곱가지/
베르나르 그랑제의 우울증 등 번역

 

*좋은 글
- 그녀(보케 부인)의 미움은 사랑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당한
자기 희망에 비례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애정의 고도를
높여가면서 안식을 찾는 법이지만, 미워하는 감정의 가파른 비탈위에서는
여간해서 멈출 줄을 모른다.

 

- 파리에서는 어떤 집을 찾아가지 전에 반드시 그 남편, 아내,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집안 지인으로부터 들어서 미리 알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외젠은 몰랐다.

 

-어떤 존재가 아무리 거칠다 할지라도 강하고 진실한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어떤 특별한 액체가 분비되는지, 얼굴 모습이 바뀌고, 몸짓에 활기가
돌고, 음성도 빛깔을 띠게 된다. 가장 멍청한 사람조차도 열정의 힘을 빌리면
실제론 눌변이어도 정신적으로 최고의 달변의 경지에 이르고, 온통 빛나는 듯
보이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랑이란 하나의 종교이며 사랑을 떠받드는 신봉행위는 그 어떤 종교의
신앙행위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 사랑은 금방 지나가 버리며, 불량배가 지나간
뒤처럼 주변에 온통 황폐한 자취만을 남긴다. 감정의 사치는 지붕 밑 방의 시(詩)인데,
이런 풍요로움이 없다면 다락방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파리 법전(法典)의 이 엄격한
법칙도 고독한 영혼에게는 예외가 된다.

 

- 웅웅거리는 벌집 같은 이곳에 그는 미리 꿀을 빨아내기라도 할 듯한 시선을 던지며
이 거창한 말을 던졌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첫 도전의 행동으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 소설의 맨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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