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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 삶과 죽음

한창 일하고 있는데 손전화 문자가 왔다.
[ YTN 속보 - 위암 투병 영화배우 장진영 오늘 오후 사망]
(달마다 천 몇 백 원을 내면 YTN에서 속보를 보내준다.)
장진영이라면 왕의 남자에 나온 남자 배우 아닌가?
최근 전여옥 의원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라는 공개 편지를
써서 속을 시원하게 해줬던 그 배우 아닌가!

놀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가 아는 사람은 남자배우
정진영이였고 죽은 사람은 여자배우 장진영이였다.
그녀는 위암 투병을 하다가 남자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근데 나는 잘 모르는 배우다. 출연작을 보니 눈에 익은 제목의
영화들이 많다. 그녀의 삶이 그녀가 출연한 ‘국화꽃 향기’의
내용과 비슷해 애절한 마음이 든다.

이런 저런 기사를 뒤져보다가 화장실을 갔다.
가는 길에 전산팀 직원을 만났다.
그 직원이 대뜸 내게 물어본다.
“설○○주임 죽은 거 아세요?”
“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직원과 이야기 하면서 설주임을 생각해 본다.

설주임은 2년 전 쯤에 전산팀에 근무했던 직원이다.
왜소한 체격 이였지만 뭐든 말하면 다 들어줄 사람처럼
늘 웃으면서 일처리를 했다.
그러다가 그이가 다른 부서로 가고 나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 그이의 소식을 들은 건 올해 봄쯤에 위가 아파서
휴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크게 걱정은 안 했다.
내 또래 사람이니 병원에서 치료받고 음식조절 잘하면
곧 출근하리라 믿었다.

그랬던 설주임이 장진영과 비슷한 시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술, 담배도 안한 사람인데...’
‘술, 담배에 찌든 난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여배우가 죽었을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허무함이 밀려온다.
병문안도 안 간 게 마음에 걸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살려고 발버둥쳤다고 한다. 병원에서 개복을
했다가 손도 못 대고 다시 그대로 덮어두었지만 설주임은 좋은 약은
힘닿는 대로 구해보고 먹으려 했다.
뒤늦게 종교도 가져서 기도원도 다녔고 자연요법으로
치료한다고 야채로만 식사하기도 했단다.

항암치료가 머리카락이 빠지고 고통이 크다고 하는데 어찌 견디고 있었을까?...
자식 둘이 있는데 직장에서 들어준 보험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하기야 늘 죽고 있는데 내 또래 가까운
사람이 죽고 나니까 죽음이란 것을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무엇일까?
스코트 니어링이란 사람은 백 살이 다될 무렵 먹기를 그치고
물만 먹으며 조용히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어떤 의료 행위도
받지 않았고 숲속의 오두막에서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내가 스코트 니어링처럼 살거나 죽을 용기는 없다. 하지만 흔한
사람들처럼 악다구니 하며 살거나 죽음의 문턱에서 문고리를 잡고
늘어지듯 발버둥 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자연이 내게 주는 만큼 욕심 버리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죽고 싶다.
내 인연과 세상이 허락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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