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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2 -- 77일

 

한 10년 카메라를 메고 다니다 보니 직장동료나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냐?” 고 물어 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한 것이,

10년 정도 배우고 익힌 것을 단 몇 분 만에 알려주는 일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여 나름 생각해낸 답변이 “일단 자기 주위의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찍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카메라 노출에 대하여 알려 줄 것으로 기대했던 상대방은 “뭔 소리

하냐?”는 표정을 짓는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좋은 기록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사진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파업을 다룬 사진집

“77일”을 보면서 처음 사진을 접하는 사람에게 좋은 교본이 됨 직하다.

 

사진집은 77일동안 파업농성을 한 노동자들 속에서, 혹은 밖에서 기록한 사진이다.

사진집에는 공장을 되찾으려는 사측 용역과 노동자들의 32시간의 긴 싸움과

대치 끝에 지게차 운전대에 엎드려 자는 고립된 노동자가 있고, 한 여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속에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빙과를 먹고 있는 20대의

전경도 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진은 슬리퍼 위에 “악성무좀”이라고 쓴 테이프를 붙이고 서있는

노동자의 발만 나온 사진이다. 여러 노동자가 신었을 법한 슬리퍼위에 무좀으로

상처입어서 어쩔 수 없이 1인용임을 알리고자 휘갈겨 쓴 듯한 글씨를 보면서 노동자의

고통과 사진가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사진집에서는 자본과 MB정권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노동자는

이 사회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쌍용자동차 사태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시대와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제2의 쌍용자동차는 또 발생할

것이다. 그때에는 우리 중에 누군가는 사진속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먼 훗날 세상이 변해 쌍용자동차의 사태가 역사의 한 부분이 될 때 이 사진집은 훌륭한

기록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비록 사진이 1초보다도 짧은 순간을 담는

다지만 영원으로 기록되는 건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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